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 see 先
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 see 先
  • 정주엽 기자, 우지훈 수습기자
  • 승인 2018.11.05
  • 호수 1484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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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통해 일상을 엿보다, 전시회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외부 전시 모습이다.
▲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외부 전시 모습이다.

현대인들에게 ‘노동’이란 삶에서 분리할 수 없는 필수 불가결한 행위다. 그러나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예술 작품 속에서도 노동이라는 테마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2014년에 세상을 떠난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영상 예술가인 하룬 파로키는 노동을 기꺼이 자신의 작품 세계 안으로 포용한다. 전시회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일상 속 노동의 모습을 들여다보자.

하룬 파로키는 인간이 결코 벗어던질 수 없는 노동이라는 굴레를 관람객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특히 ‘노동의 싱글 숏’은 1-2분 길이의 싱글 숏으로 된 비디오를 통해 세계 17개 도시에서 이뤄지고 있는 노동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카펫을 만드는 사람부터 축사에서 일하는 사람,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사람까지 일상 속 숨겨진 노동의 장면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우리에게 노동의 의미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그의 일상 속 노동에 대한 통찰은 다양한 범주로 확장해나간다. 먼저, 최초의 영화로 평가받는 뤼미에르 형제의 작품을 새롭게 변주한 ‘리메이크-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에서 그는 공장에서 나와 흩어지는 노동자들의 순간을 포착해낸다. 이를 통해 그는 노동자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아내는 동시에 노동자가 공동체와 개인으로서의 모습을 모두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작품 ‘비교’에서 아프리카와 인도의 노동자들과 유럽의 공장의 이미지를 병렬시키며 노동자와 생산체제가 결합하는 과정을 구축한다. 

이렇듯 그는 노동의 짧은 순간들을 영화라는 영상매체에 기록하며 ‘노동’의 이미지와 이것이 가진 정치·사회적 맥락을 함께 분석한다. 오는 14일부터는 전시장 옆에서 그의 전작 중 48편을 선별해 상영하는 회고전이 열린다. 회고전을 통해 노동, 전쟁, 테크놀로지 등 사회 현상의 중요한 요소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그의 작품을 직접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하룬 파로키’전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내년 4월 9일까지 진행되며 대학생이면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하룬 파로키의 영상 세계를 체험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전환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 정주엽 기자 jooyup100@hanyang.ac.kr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된다, 영화 「프리다의 그해 여름」

영화 「프리다의 그해 여름」의 한 장면이다.
▲ 영화 「프리다의 그해 여름」의 한 장면이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흔히 핏줄로 이어진 관계가 곧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가족이 되기 위해선 이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서로를 생각하는 배려의 시간들이다. 영화 「프리다의 그해 여름」은 주인공 프리다가 외삼촌 가정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전달한다.

영화는 어린 프리다의 시선을 통해 부모의 죽음과 낯선 환경에서 느끼는 여섯 살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섬세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려낸다. 어머니를 잃고 외삼촌의 가정으로 입양된 프리다는 외삼촌네 딸 ‘아나’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영악하게 행동하는 미운 여섯 살이다. 하지만 그녀는 매일 밤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남몰래 기도하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영화는 서툰 화장을 하고 자신이 경험했던 어머니의 무관심한 모습들을 흉내 내는 프리다의 모습을 통해 어린 소녀가 느껴온 사랑의 결핍을 표현한다. 외삼촌 부부는 처음엔 불안한 감정을 안고 있는 프리다를 어려워하지만 그녀 스스로 가족의 일원이 됐다고 느낄 때까지 배려하고 기다려준다. 

이들의 배려 속에서 프리다는 이별과 새로운 만남의 과정을 함께 배워간다. 마침내 프리다는 어머니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정에 정착한다. 영화의 끝에서 외삼촌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사랑의 갈망이 해소됐을 때 프리다는 비로소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린다. 관객들에게 이 울음은 그녀에게도 드디어 자신의 온전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가족이 생겼다는 기쁨의 눈물로 다가온다. 여기서 영화는 단지 혈연이 아니라 ‘서로를 생각하는 시간의 깊이’가 가족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카를라 시몬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문장 “나의 엄마에게”는 관객들의 마음을 오롯이 적셔온다. 영화관에서 나올 때쯤,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된 프리다를 떠올리며 가족과의 한순간을 추억하게 된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요즘,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프리다의 여름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정주엽 기자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과연 누가 미친걸까? 뮤지컬 「루나틱」

뮤지컬 「루나틱」의 한 장면이다.
▲ 뮤지컬 「루나틱」의 한 장면이다.

사랑, 돈, 성공에 울고 웃는 환자들이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한 무대에 모였다. 뮤지컬 「루나틱」은 정상과 비정상, 옳고 그름과 같이 양극단으로 판단해버리는 사회에서 고통받는 현대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나제비’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됐지만 그 사랑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더 이상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됐다. ‘고독해’는 가족 모두를 잃고 혼자서 성실히 시어머니를 병간호한다. 하지만 그녀는 유산을 탐낸 적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시어머니가 죽은 뒤 편집증적 죄책감에 빠져 산다. ‘무대포’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사업을 이루기 위해 유괴와 살인을 서슴지 않고 오히려 순수한 의도였다며 이를 정당화한다. 

이러한 ‘환자’의 사연들은 비단 무대 위 배우들만의 특수한 서사가 아니다. 우리도 「루나틱」 속 주인공처럼 종종 미친 짓을 하곤 한다. 때론 나제비처럼 사랑에 미치고, 때론 고독해처럼 돈에 미치고, 때론 무대포처럼 성공에 미친다. 관객들은 「루나틱」 속 환자들에 비춰 자신을 바라보며 그들과 닮은 나를 발견한다.

‘루나틱’ 병동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 ‘굿닥터’는 약을 처방하는 대신 환자 스스로 상처의 경험과 비정상적인 행동을 연기하도록 만든다. 환자는 극장 안 모두에게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상처를 담담히 받아들이게 된다. 그들의 고백에 관객은 자연스레 그들을 향한 비정상의 낙인을 떼어낸다. 그리고 서로를 구분 짓던 경계를 지우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정상인’이 되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학대하고 있진 않은가. 또 누군가를 너무나도 쉽게 ‘비정상’이라며 손가락질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상과 비정상 중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전에 조금 더 가까이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말하기 어려운 상처가 있다면 나제비, 고독해, 무대포의 목소리를 빌려 아픔을 덜어내 보는 건 어떨까. 당신도, 그들도 생각과 달리 ‘정상’일지 모른다. 뮤지컬 「루나틱」은 대학로 문씨어터에서 무기한으로 공연한다.

우지훈 수습기자 1jihoonwoo@hanyang.ac.kr
사진 출처: 뮤지컬 「루나틱」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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