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또 게임이 원인입니까?
[장산곶매] 또 게임이 원인입니까?
  • 김도렬 편집국장
  • 승인 2018.11.05
  • 호수 1484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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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렬<사진·미디어부> 부장
▲ 김도렬<편집국장>

지난달 14일 발생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가해자인 김성수 씨의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 청원이 사상 최초로 100만 명이 넘는 인원의 동의를 얻었다. 김 씨가 워낙 잔인한 수법으로 범죄를 저지르자, 그가 살인자가 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분석이 나왔다.

지난달 30일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에 대한 이야기 나왔다. 윤종필<자유한국당> 의원은 김 씨가 평소 해당 PC방에서 게임을 즐겨했다는 증언을 토대로 그가 게임 중독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면서 윤 의원은 통계청 자료를 인용해 “초등학생 고학년의 91.1%, 중학생 82.5%, 고등학생 64.2%가 게임을 하고 있다”며 “게임중독자의 뇌는 마약중독자의 뇌와 대동소이할 정도로 게임의 중독성은 매우 강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발언은 현재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기본적으로 김 씨가 아직 게임 중독이라고 말하기엔 매일 PC방에서 게임을 했다는 증언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밝혀진 게 없다. 설령 김 씨가 윤 의원의 주장대로 김 씨가 게임 중독인 상황이라고 치더라도 이것이 직접적인 범죄의 원인이라 단정짓기 힘들다.

게임에 대한 과몰입은 꾸준히 사회적 문제로 제기돼 왔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게임의 과몰입이 중독이 될 우려가 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 진단 기준이 모호해 옥스포드대, 존스홉킨스대, 스톡홀름대 등의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이러한 WHO의 행보에 반대한다는 논문을 내기도 했다.

게임과 살인 사건이 그 어떤 명확한 인과 관계도 없는 상황에서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게임 중독을 살인의 원인이라 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발언이다.

사실 게임이 모든 일의 원흉인 듯 책임을 돌리는 세태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군내 총기 난사 사건이 있다. 2014년, 2015년에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때도 언론 매체와 전문가들은 가해자가 폭력적인 게임을 즐겼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게임 중독자이며 그것이 범죄의 원인인 듯 주장했다. 부대 내 부조리나 병영 문화, 가해자들의 개인 문제 등 보다 크고 직접적인 이유들이 존재함에도, 게임이 이러한 사건 사고들의 희생양이 됐다.

이외에도 폭행 및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게임 중독은 매번 단골손님으로 언론 매체에 주요 원인으로 소개됐다. 이번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도 과거의 이런 사건과 다르지 않다. 유독 게임은 다른 콘텐츠 산업에 비해 엄격하고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경향도 존재한다. 영화, 음악, TV프로그램에서도 게임만큼이나 폭력적이고 부적절한 표현이 무분별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그 누구도 폭력적인 음악과 영화를 많이 접해 가해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무의미한 게임 마녀사냥을 그만둬야 한다. 게임 자체의 폭력성보다는 이번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과 같이 강력범죄자와 게임을 엮는 구시대적인 프레임이 게임의 이미지를 좀먹고 있다. 애꿎은 게임에 범죄의 책임을 묻고 화풀이를 하는 것은 공허할 뿐이다. 게임에서 총과 주먹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고 이를 범죄와 1차원적인 수준으로 끼워 맞추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그것보단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 이를 해결하는 것이 더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게임을 바탕으로 한 E-sports는 2022년이 되면 그 시장 규모가 3조 원에 달할 거라는 예측이 있을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지난 9월 폐막한 ‘2018 자카르타-팔람벵 아시안게임’에서 E-sports가 시범종목으로 운영되며 그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우리나라 역시 경쟁력 있는 게임 회사들이 있고, E-sports의 경우 종주국이라 불리울 정도로 뛰어난 수준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무분별하게 게임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에서 발전은커녕 퇴보만이 있을 것이다.

게임계를 위해,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라도 범죄의 원인을 게임에 전가하는 모습이 사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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