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음주운전 문제, 솜방망이 처벌은 정의가 아니다
[장산곶매] 음주운전 문제, 솜방망이 처벌은 정의가 아니다
  • 김도렬 편집국장
  • 승인 2018.10.15
  • 호수 1483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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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렬<사진·미디어부> 부장
▲ 김도렬<편집국장>

초등학교 3학년 때다. 늘 그렇듯 어머니가 깎아주신 사과를 안방에서 먹고 있었다. 평소처럼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자정이 다가와 잠이 솔솔 올 때쯤 부모님께서 갑작스레 병원에 다녀온다고 하셨다. 부모님은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말씀하셨다. 평소에 건강하시기만 하던 할아버지가 편찮으시다고 하시니 내심 의아했지만, 불과 10살짜리 아이가 얼마나 더 유추할 수 있었을까. 필자는 새벽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사인(死因)은 교통사고였다. 새벽에 길을 건너시던 할아버지는 당신을 미처 보지 못한 차에 치여 변을 당하셨다. 평소 몸에 좋은 음식만 챙겨 드시고 실제로도 정정하시던 할아버지께서 단 한순간에 우리 가족 곁을 떠나셨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너무나 낯설었다. 당시 너무 어린 탓에 죽음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할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나 급작스럽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몇 가지 지병을 가지고 계셨지만, 늘 건강한 모습을 보여준 할아버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중 누구도 할아버지의 죽음을 대비하고 있지 않았다. 아버지도 슬퍼할 새 없이 묫자리를 알아보시고 장례 준비를 하시느라 바쁘셨다. 필자는 이때부터 교통사고의 무서움을 알게 됐다. 교통사고는 급작스러운 죽음을 불러오고, 급작스러운 죽음은 주변인들에게 슬퍼할 겨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부산에서 발생한 사고는 많은 이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 운전자는 면허 취소 수준인 0.181% 의 음주 수치가 나올 정도로 과음을 하고도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곤 행인들이 다니고 있는 인도로 돌진했다. 결국 운전자의 이런 안일한 생각이 한 청년의 삶을 빼앗아갔다. 22살의 윤창호 씨는 그날 이후로 약 20일간 의식불명 상태다. 의료진은 윤 씨에게 남은 날이 이제 얼마 없다고 한다. 그가 카투사에서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대중은 더욱 안타까움을 느꼈다. 심지어 가해자 측은 사고 이후 별다른 사과도 없다가 언론 보도 이후 잠시 병원에 다녀갔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일로 인해 피해자와 그의 지인들이 겪고 있는 끔찍한 고통의 순간들을 겪고 있지만, 그에겐 어떠한 죄책감도 주지 못하나 보다.

윤 씨의 친구들은 어이없고 억울한 친구의 상황에 분개해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음주운전에 대한 이야기를 게재했고, 지난 15일까지 약 28만 명의 국민이 청원에 동의했다. 사실 음주운전이 사회 문제가 된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음주운전으로 인해 부상을 입은 피해자의 수는 무려 3만3천364명이다. 사망자 역시 439명이나 된다. 물론 낮은 처벌 수위와 재범률이 절대적인 상관관계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법체계는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가?’ 하는 고민에 들게 한다. 교통사고 치사의 경우 기본적으로 징역 8개월에서 2년 사이의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72% 이상의 범죄자들은 면허 취소와 집행유예로 판결이 난다. 지난해 음주운전 범죄자의 재범률은 40%를 웃돌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법이 음주운전 범죄자들의 ‘교화’에 실패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서 법의 역할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적어도 현재 음주운전 관련 처벌조항의 강도는 피해자가 겪는 고통에 비해 너무나 미약하다. 해외 여러 국가의 음주운전에 관한 처벌 수위와 비교하면 더 초라하기만 하다. 강력한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곤 하지만, 지금의 법 역시 최선은 아닌 것 같다.

윤 씨의 친구들은 하태경<바른미래당> 의원과 함께 음주운전자에 관한 처벌기준을 강화하고 음주운전 치사를 살인죄로 처벌하는 내용이 담긴 ‘윤창호법’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하 의원은 동료 의원 1백명을 모아 공동발의를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윤 씨의 아버지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아들의 죽음이 개죽음이 아닌 의로운 죽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시는 음주운전으로 인해 불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정의롭지 못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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