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북한을 풀어내다
디자인으로 북한을 풀어내다
  • 한대신문
  • 승인 2018.09.03
  • 호수 1480
  •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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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이에 따라 북한 사회와 문화 전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최근 새롭게 조명 받는 북한의 문화가 있다. 바로 북한의 ‘디자인’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엄격하고 전체주의적인 정치 체제, 핵실험과 같은 정치적인 상징들로 평가됐다. 하지만 최근 해외 디자인 시장에서는 북한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디자인을 주제로 한 낯설고 의외인 전시, 책, 사진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BBC,CNN 등의 해외 언론에서도 보도됐다. 올해 영국 런던에서는 북한의 그래픽 디자인을 소개하는「Everyday Graphics inDPRK」전이 개최되기도 했다.

우리가 북한의 디자인에 주목하는 또다른 이유는 디자인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관념을 가장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최희선<중앙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북한 디자이너들은 △공공건물 △도시의 거리 △일상품 △차량 등 북한의 거의 모든 것을 디자인한다”며 “따라서 이러한 디자인을 파악한다면 북한 주민들의 삶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의 건축과 인테리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축은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 한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도시와 건축은 꾸준히 축적돼서 발전하며, 역사적 관점에서 건축을 바라보면 그 사회의 변화와 흐름까지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건축 - 체제 우월성 과시하기
1945년 대한민국 해방 이후, 북한 지역은 당시 한반도 38선 북쪽을 점령한 소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북한은 부족한 국가 재정으로 인해 소련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건축물을 건립했다. 이런 소련의 막대한 영향력은 당시 북한의 건축 양식에서도 드러난다. 이왕기<목원대 건축학부> 교수는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의 경우 건축을 사회 개조의 유용한 수단으로 파악했다”며 “북한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건축에서도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결합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1950년대 한국전쟁 휴전 이후 북한에서는 새로운 건축양식이 등장했다. 바로 민족건축양식이다. 민족건축양식이란 과거부터 한반도에서 이어져 내려오던 전통적 건축 양식을 뜻한다.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지도층은 전후 복구기에 새로운 건축 예술을 현대적 미감에 맞도록 재현하고자 했다. 이 시기 북한 건축 양식에 전통론이 대두한 것에 대해 이 교수는 “이질적인 외래문화에 대해 반발감과 동시에 전후 시기 경제적, 문화적 자주성을 지키려는 자아의식이 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민족건축양식이 성행하던 1960년대와 달리, 북한의 건축양식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통요소를 현대화시키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특히 1970년대 북한의 지도층은 건축가들에게 다른
건물형식을 따라하지 말라는 요구를 했다. 그리고 이는 북한의 건축가들이 건축형태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추구하는 출발점이 됐다. 1970대 후반 사회주의 기본이념에 따라 거대한 건축물과 기념비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 교수는 이를 “김정일 자신이 권력을 이용해 유일사상을 고취하고 그의 행적을 전 인민에게 확고히 심어주기 위한 작업의 일환인 동시에 당시 대한민국과의 경쟁심리에서 체제우월을 외형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건축 디자인 - 체제의 반영물
그렇다면 최근 주목을 받는 북한의 건축 디자인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색깔’이다. 다소 과장된 느낌이 드는 겨자와 테라코타, 터키석 그리고 베이비 블루와 같이 인테리어에서 잘 쓰지 않는 파스텔색을 북한에서는 과감하게 건축물에 사용한다. 전체적으로 조화가 이루어진다면, 과감한 색을 사용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는 것이 특징이다.

능라도 경기장 내부의 모습이다.
▲ 능라도 경기장 내부의 모습이다.
▲ 능라도 경기장 내부의 모습이다.

파스텔 색감으로 이목을 끄는 건물들의 내부로 들어가 보면, 가구들이 완벽한 좌우대칭 배치를 이루며, 이러한 북한의 인테리어는 긴장감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파스텔 톤의 밝은 컬러들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연상시키는 특유의 좌우대칭적 배열은 북한 디자인의 미적 제한성을 잘 나타낸다. 건물 내부에서 보이는 구조적 대칭 역시 북한의 사회체제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 교수는 “북한은 산업 디자인에서도 심사, 등록, 개발 과정에서 많은 사상적 검증을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녹색건축’은 북한에서 나타나는 주목할만한 건축 트렌드 중 하나다. 녹색건축은 녹색의 기능성 페인트를 개발해 곳곳에 녹화공간을 조성하며, 실내외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밝게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최 교수는 “북한은 최근 에너지 절약, 효율성을 고려한 친환경 건축을 강조하고 있다”며 “대표적 사례인 려명거리의 건축물들을 보면 조형적으로 실내외에 녹색을 많이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디자인이 낯선 이유
건축물은 건설 당시 해당 지역의 사회적 특성과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낸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에서는 건축물의 벽을 북한 혁명사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으로 장식하는 디자인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북한 지도자들의 지시가 건축물에 많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 창광 보건&레크리에이션 경기장의 수영장 모습이다.
▲ 창광 보건&레크리에이션 경기장의 수영장 모습이다.

북한의 디자인은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반영하는 것을 기본으로 발전했다. 이 특성은 해방 이후부터 3대째 권력을 세습하고 있는 북한 지도자들의 교시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시대별 지도자의 통치 방향과 시대의 요구에 따라 산업 디자인의 정책이 조금씩 변화했다.

디자인에서도 다양한 분위기가 교차하며 색다른 특징을 나타내는데, 특히 최근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독특한 색감들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디자인적 가치가 재조명 받을 여지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 평양국립극장 모습이다.
▲ 평양국립극장 모습이다.

디자인을 통해 북한을 이해할 수 있어
최 교수는 “통일을 준비하는 지금, 북한 디자인 연구가 미리 간접적으로 그들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디자인으로 북한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이 향후 남북의 디자인 영역 이해와 관심을 증진하고,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측면에서 남북 간의 괴리감이 줄어들 수 있다. 통일한국에서도 디자인의 역할은 중요할 것이다. 통일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는 모르지만, 디자인에 대한 고민은 지속해야 한다. 낯설지만 재밌는 ‘디자인을 통한 북한으로의 접근’에 주목해보는 것은 어떨까?

도움: 이왕기<목원대 건축학부> 교수
최희선<중앙대 디자인학부> 교수
사진 출처: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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