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78일간의 수습기자 생활을 돌아보며
[취재일기] 78일간의 수습기자 생활을 돌아보며
  • 김종훈 수습기자
  • 승인 2018.06.04
  • 호수 1479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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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훈<수습기자>

한 학기 동안 한대신문 수습기자로 활동하며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이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거리의 리포터’는 수습기자들이 가장 취재하기 힘들어하는 코너다. 처음 보는 학생들에게 간단한 인터뷰를 하고 얼굴이 나오는 사진까지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듣지도 않고 인터뷰를 거절하는 학생들이 많았고, 질문을 듣더라도 난감해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인터뷰이가 사진 촬영을 거부해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다 친절하게 답해주거나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답해주는 학생을 만나면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학생들의 따듯한 반응이 힘든 학보사 활동을 이어나가게 해주는 원동력이 됐다.

처음 거리로 나가 학생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는 너무 긴장해서 사진을 찍지 못한 적도 있고, 이름을 묻지 않아서 인터뷰를 쓸 수 없게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매주 인터뷰를 하다 보니 학생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방법과 대답을 끌어내는 요령을 알게 됐다. 

서울시장 후보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일은 학보사 기자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특히 박원순<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간담회에서 한대신문을 대표해 후보에게 질문한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본지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니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실수할까 봐 굉장히 떨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함께 간담회에 참여한 다른 학보사 기자들도 각 학교의 이름을 걸고 열심히 취재하는 것을 보며 처음 본 사이지만 묘한 동료 의식을 느끼기도 했다. 

처음으로 이름을 단 기사를 쓴 날도 잊을 수 없다. 학내보도 기사를 쓰게 됐는데 학생회 측으로부터 받기로 한 자료를 마감 직전까지 받지 못했다. 자료가 없으니 팩트는 없었고 단지 기자의 생각만 가득한 반쪽짜리 기사가 나갈 위기였다. 당연히 기사는 기획안대로 쓸 수 없게 됐고 그 자리에서 다시 기사를 재구성해야 했다. 처음 쓰는 기사인데다가 자료까지 받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상황에서 다른 기자들의 도움으로 기사를 써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다음날 해가 뜰 때가 돼서야 기사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기사가 나가기 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 취재했던 축제 역시 기억에 남는다. ‘한대신문’이라고 적혀 있는 프레스증을 목에 걸고 축제 현장 곳곳을 누비며 학교와 학생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특히 본지 1477호 4면에서 다뤘던 장애학우들을 위한 서울캠퍼스 노천극장의 배리어프리존을 발견했을 때는 정말 반가웠다. 배리어프리존이 잘 운영되고 있는 모습을 촬영하며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메인 프레스존에 들어가 사진기자로서 연예인들의 축하 공연을 바로 앞에서 취재한 경험은 평생 잊기 힘든 추억이 됐다.

지난 한 학기 동안 많이 배우고 싶은 욕심에 최대한 여러 취재에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수습기자 생활 동안 했던 경험들이 다음 학기 정기자 생활을 하는데 큰 밑거름이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신문사 구성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면을 빌려 신문사의 모든 기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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