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사설] 우리는 ‘시선’으로부터 안전할 권리가 있다
[기자사설] 우리는 ‘시선’으로부터 안전할 권리가 있다
  • 한대신문
  • 승인 2018.05.14
  • 호수 1477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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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홍익대 회화과 누드크로키 수업 모델의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되는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일었다. 경찰 수사 결과, 수업 현장에 함께한 동료 모델이 피해자를 몰래 찍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홍익대 누드크로키 사건에 대한 충격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항공대와 경기 지역 고등학교 기숙사 몰래카메라(이하 몰카)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며 사회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

몰카 성범죄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포털 사이트에 ‘몰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몰카 영상이나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몰카만을 중점적으로 제공하는 웹하드 사이트까지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런 몰카 성범죄는 여전히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몰카를 처벌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 특례법)’을 위반해 적발된 사례는 2014년 약 1천3백여 건에서 2016년에는 약 30%p가량 증가한 1천7백여 건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몰카 성범죄에 대한 처벌기준이나 처벌수위는 여전히 미진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몰카로 인한 성범죄는 성폭력 특례법 제14조 1항에 따라 처벌받는다. 그런데 이 기준은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많아 명확하지 않다. 조항에 명시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해 촬영’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 그 예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유무죄를 가린다. 하지만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이라는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법원의 해석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 실제로 몰카 사진이 찍혔지만, 신체의 직접적인 외부 노출이 없었다는 이유로 사건이 파기 환송되거나 몰카 사진 중 하체가 찍힌 일부 사진만 처벌받았던 판결이 대표적이다.

처벌수위의 미미함도 문제 중 하나다. 지난 2016년 한국여성변호사회의 ‘온라인 성폭력 실태 및 피해자 지원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몰카 촬영물을 유포한 경우 약 70%가 단순 벌금형이나 집행·선고유예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몰카 가해자가 초범일 경우 선처가 이뤄지기도 해 법원이 몰카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부는 이런 몰카 성범죄 피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관련 정책을 시행 중이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으로 보이지 않는다. 정책이 몰카 영상이나 사진을 처리하는 등의 후속 조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후속 조치 성격의 정책보다 더 우선돼야 할 것은 몰카 성범죄의 명확한 법적 처벌기준을 정립하고, 미미한 처벌수위를 강화해 법률적 근간을 다지는 것이다. 나아가 몰카 성범죄를 예방하는 사전정책까지 함께 마련한다면 갈수록 늘어나는 몰카 성범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안전하고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사회를 좀먹는 검은 시선을 차단하려는 정책적 노력과 법률 개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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