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피시설 취급에 설 곳 잃은 대학기숙사와 청년임대주택
기피시설 취급에 설 곳 잃은 대학기숙사와 청년임대주택
  • 김도렬 기자
  • 승인 2018.05.14
  • 호수 1477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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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기숙사 수용률과
지나치게 비싼 원룸 임대료가 문제
청년임대주택과 기숙사 신축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일부 주민들 반발로 차질 빚어
반대 측 우려와 달리 공공임대주택이 집값을 낮춘다는 근거는 없어
적절한 보상으로
반대 주민들 설득해야 해
실질적 수혜자인 청년들이 힘을 뭉쳐 대응하려는 자세도 필요

대학생들에게 ‘주거 문제’는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고의상<예체대 스포츠산업학과 15> 군 역시 학기 초 주거 문제로 고민을 겪었다. 고 군은 “3시간이 넘는 긴 통학 시간이 부담돼 기숙사와 학교 인근 자취방을 알아봤다”며 “기숙사는 선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떨어졌고, 자취는 보증금과 월세가 너무 부담스러운 수준이라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교의 평균 기숙사 수용률은 약 21%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 대학생 10명 중 2명만이 기숙사에 입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부동산 온라인 플랫폼 업체 다방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주요 대학가의 평균 월세는 49만 원, 보증금은 1천378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마땅한 수입원이 없는 대학생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액수다. 그나마 고 군처럼, 수도권에 거주 중인 학생들은 기숙사 입사나 자취를 포기해도 통학이 가능하지만, 지방에서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한 학생들은 기숙사 입사에 실패한다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싼 금액에 학교 인근 원룸과 계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고질적인 청년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기숙사를 포함한 청년임대주택 신축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2022년까지 대학생 기숙사 5만 실을 포함해 청년임대주택 30만 실을 신규로 공급하겠다는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했고, 서울시 역시 정부의 정책에 맞춰 동기간 내에 역세권 청년임대주택 약 8만 실을 추가로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하는 청년임대주택 사업과 대학 기숙사 신축 정책은 일부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인해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역세권 청년임대주택 사업이 대표적이다. 역세권 청년임대주택 사업이란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 교통이 잘 발달해 있는 역세권 주변에 임대주택을 설립하고, 이를 청년층에게 시세보다 싼 가격에 제공해 이들의 주거비 부담을 해소하고자 하는 정책이다.

서울시는 현재까지 총 17개의 역세권 청년임대주택사업을 인가했다. 그러나 인가가 난 모든 지역에서 주민들의 민원이 발생해 사업에 차질을 겪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지난달 영등포구에서는 청년임대주택 사업이 인가가 나자, 이에 반대하는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청년임대주택을 ‘빈민 아파트’라는 표현한 안내문을 단지 내에 붙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대학 기숙사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리 학교 서울캠을 포함해 서울권 여러 대학은 학생들의 주거난을 해소하기 위해 기숙사 신축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 역시 주변 임대업자들의 반대로 규모가 축소돼서 진행되거나, 심의 자체가 통과되지 않아 보류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청년주거지 신축과 관련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대부분 인근 지역 거주민과 임대업자들이며, 민원을 제기한 지역마다 다소 차이는 있으나 주로 △범죄율 상승에 대한 우려 △집값 및 임대료 폭락 △환경 훼손 등을 이유로 내세운다. 서현<공대 건축학부> 교수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일부 반대 주민들이 언급하는 이유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며 “가장 핵심적인 반대 이유인 집값 및 임대료 하락에 대한 우려를 그대로 표현할 시 지역이기주의라는 안 좋은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어 다른 이유를 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년주거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한솔<민달팽이유니온> 사무처장 역시 “과거 공공임대주택이 신축된 지역에서 치안이 나빠졌다는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 사무처장은 또한 “임대주택이 들어오면서 일부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투기적 자본이 가치를 잃을 것이라는 우려에서 생기는 반발”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기숙사와 청년 임대주택과 같은 시설이 지역에 신규 진입하면서, 집값과 임대료가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이 갈등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아직 실제 사례로 나타난 경우는 없다. 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지난해 6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구임대주택의 유형을 제외하고는 임대주택이 주변 주택가격의 하락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무처장은 “청년임대주택으로 인해 집값이나 임대료가 떨어졌다고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며 “오히려 신규로 들어오는 청년들로 인해 지역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주민들의 집값 및 임대료 하락에 대한 걱정은 지나치게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주민들의 반대로 인해 청년주거 관련 사업 자체가 취소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숙사나 청년임대주택 신축에 대해 반대의 의견을 내는 이들 역시 지역 주민이기 때문에, 지자체 선뜻 반대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지자체가 반대 측의 의견까지 수렴하는 과정이 길어지다 보니,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 학교 서울캠퍼스 제7생활관의 경우에도 2015년 최초로 신축 계획이 발표됐지만, 지역 내 반대 여론으로 인해 지난해 12월이 돼서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마저도 여전히 다양한 절차가 남아있어 실제 착공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서 교수는 “반대를 주장하는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는 문제”라며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주는 동시에, 실질적인 수혜자가 될 학생들이나 청년들도 힘을 뭉쳐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사무처장은 “청년주거지 신축에 대해 전면에 나서진 않지만 묵묵하게 지지하는 주민들도 많다”며 “눈에 보이는 여론뿐만 아닌 잘 드러나지 않은 다양한 목소리도 정책 집행자들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서 교수는 청년의 주거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치닫고 있는 양극화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라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사무처장은 “공공성을 가진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이와 함께 주거 관련 대출제도나 상담 시스템과 같은 보호망을 국가가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의 노력을 촉구했다.

도움: 서현<공대 건축학부> 교수
이한솔<민달팽이유니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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