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지나간 자리
바람이 지나간 자리
  • 한대신문
  • 승인 2006.06.04
  • 호수 1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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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영화의 결말을 알고 보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눈앞에 다가온 결과에 한편에선 흥분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다른 한편에선 실망과 좌절감에 그 후유증이 대단하다. 바로 5.31 지방선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미지 정치에 대한 비판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 선거는 그 절정에 달했다. 각 정당의 후보를 결정하는 경선과정에서도 정책적 판단보다는 당선가능성에 초점을 둔 인사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오세훈 바람으로 대표되는 스타 정치인의 당장도 어김없이 계속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각 정당이 선거 전에 다짐했던 ‘메니페스토’는 실천해 볼 여지조차 없었다. 물론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고 선거 구도를 그렇게 만들었던 정부 여당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사실상 공식 선거운동기간 시작 이전에 승부의 향배가 갈려져 있었고,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 이후 여당은 싹쓸이를 막아달라며 읍소전략을 펼치기도 했다.

각 정당과 언론은 선거 시작 이전만 해도 정책선거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정작 표심은 정책보다는 이미지에서 갈렸다. 이 같은 구도에서 열린우리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은 모두 한나라당에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박근혜라는 독특한 정치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명박이라는 유력한 대선주자도 한나라당 소속으로 무사히 서울시장 임기를 마쳤다. 오세훈 바람은 어떠한가. 마치 이번 지방선거를 서울시장 선거로 착각하게 할 만큼 큰 영향력을 끼치지 않았던가.

반면 열린우리당의 콘텐츠는 너무나도 약했다. 열린우리당의 대선주자들은 이미 한나라당의 대표선수들과의 게임에서 밀리고 있으며 탄핵정국의 여파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이후에는 국민들에게 실망감과 배신감만을 떠안겨줬다.

그래도 이번 지방선거는 과거의 그 어떤 선거보다 활발한 정책 대결이 벌어졌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미 승부가 갈린 상황에서 정책토론회에 나오지 않는 ‘예비’ 승자의 모습, 후보자들은 정책적이었다 할지라도 결국 표심은 이미지를 선택했다는 데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또한 선거가 끝나기 이전부터 논의가 됐던 정계개편에 대한 논의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이어지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다음해에 열리는 대통령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각 정당들의 수 싸움이 치열하다.

특히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중심으로 갖가지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는데 이 중심에는 국민적 인지도가 높은 고건 전 총리가 있다. 결국 고건 전 총리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 이미지 콘텐츠를 활용해 지지도 반등을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민주세력 통합론 등 고건 전 총리를 영입하기 위한 갖가지 논거들도 결국 이러한 전략의 일환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정치인들의 어떠한 수 싸움도 아드보카트 감독이 구상하는 전략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우리 국민들은 어느 정당을 지지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보다 어느 채널을 통해 월드컵을 시청할 것이냐를 먼저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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