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없는 꿈을 꾸는 자
꿈이 없는 꿈을 꾸는 자
  • 한대신문
  • 승인 2006.06.04
  • 호수 1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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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들어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것은 단순히 나이를 먹어간다는 의미를 넘어서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현재의 대학에 대한 인식자체도 과거에 비해 꽤 많은 것이 변했다.

대학이란 곳은 어떤 곳인가? 원래대로의 대학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정해서 깊이 있는 공부를 하는 곳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대학이라는 곳은 ‘되도록’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 할 3, 4학년의 학생들은 취업준비를 해야 하고, 졸업 전에 취업한 학생들에겐 의례히 수업에 빠져도 된다는 인식은 대학에서 이미 강하게 뿌리 박혀있다. 순수하게 학문을 공부하는 곳이란 대학의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래다.
심지어 대학들은 각 대학들의 취업률을 공고히 하며, 취업률이 높은 대학이 우수한 대학인양 광고하여 이와 같은 현상을 조장한다.

이런 현상이 꿈을 꾸고 있어야 할 새내기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히려 새내기들이 3, 4학년보다 더 뚜렷한 장래목표를 정한 경우가 많을 정도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실행방안까지 확실히 생각하고 입학한 경우도 있다. 언론 쪽에서 일하고 싶다든가, 외국계 기업에 취직하고 싶다든가 하는 새내기의 발언은 이제 전혀 낯선 풍경이 아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계획을 세우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며, 칭찬받는 것이 당연하다.

단지 꿈이 없는꿈을 경계할 뿐이다. 꿈이 없는 자는 앞으로 꿈을 꿀 수 있지만, 꿈이 없는 꿈을 꾸는 자는 그 꿈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들에겐 되고 싶은 꿈은 있으나, 하고 싶은 꿈은 없다. ‘외국계 기업에서 한국을 빛내는 CEO’와 같은 꿈보다는 ‘외국계 기업에 취직한 대학생’의 꿈에 맞춰져 있다. 사회란 물이 어느 정도 깊은지는 익히 들어 알지만, 실제로 미지의 영역에 몸을 담그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대학생은 학생으로서 사회를 경험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굳이 현실적인 사회를 꿈꾸기보다는, 꿈같은 사회를 현실로 만드는 것에 치중하는 것이 대학생들의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꿈을 꾸고, 도전해야 한다.

꿈을 꾸고, 도전한다는 것이 추상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평소에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목표를 설정하지 못했다고 해서 기죽어 있을 필요는 없다. 먼저 가장 작은 일부터 꿈을 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부터 도전하자. 혹, 지금까지의 행동들이 나중에 와서 설정된 목표와 방향이 달라져 있다고 하더라도, 대학생다운 꿈과 도전이 있었으므로 그 일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젊기에 꿈을 가지고, 꿈이 있는 곳에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의 꿈을 이곳에 싣는다.

백인혁 <인문대·국문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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