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학보사 기사 표절 사태, 갈 때 까지 간 언론계
[장산곶매] 학보사 기사 표절 사태, 갈 때 까지 간 언론계
  • 김도렬 편집국장
  • 승인 2018.04.16
  • 호수 1475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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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렬<사진·미디어부> 부장
▲ 김도렬<편집국장>

필자는 지난달 진행된 서울권언론연합회 회의에서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 인터넷 신문 매체가 본지를 포함해 여러 학보사 기사를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소식이었다. 소식을 막 접했을 때는 크게 실감 나지 않았다. “표절을 해봤자 얼마나 했겠어?”라는 생각으로 피해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매체의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표절의 정도가 심했다. 본지 기사의 내용 대부분을 무단으로 가져갔다. 텍스트뿐만 아니라, 본지에서 직접 제작한 인포그래픽 역시 출처를 표기하지 않은 채 표절한 기사에 사용됐다. 여기서 끝이면 다행일 것이다. 기사로는 부족했는지 아예 기자의 이름까지 훔쳐갔다. 우리 기자들은 한 순간에 해당 매체의 ‘청년 기자단’ 소속이 됐다.

이 상황을 단순한 우연의 일치나, 기자 개인의 일탈로 보기는 힘들다. 현재는 대부분 삭제됐지만, 이 사건을 최초 취재 및 보도한 고려대 고대신문에 따르면 이 매체는 총 16개 학보사에서 80개가량의 기사를 무단 도용 했다. 그 중 본지도 10개의 기사가 해당 매체의 무분별한 표절로 피해를 겪었다. 학보사들의 기사를 무단 도용한 기자도 다양했다. 정황상 조직적인 표절을 의심할 수밖에 상황이다.

여러모로 불쾌한 경험이었다. 신문을 발행하기 위해 기자들이 며칠 동안 들인 노력과 시간을 이들이 무단으로 훔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지 기자들이 이런 매체의 청년 기자단으로 표기된 사실에 심한 모욕감이 들었다. 해당 매체가 대형 뉴스 포털사이트들과 제휴를 맺은 상태이기 때문에, 일부 학보사 기자들의 이름과 도용된 기사는 네이버, 카카오 같은 대형 매체에 노출되기도 했다. 이 상황을 최초로 확인한 고대신문 기자도 자신의 기사를 검색하다가 우연하게 피해 사실을 파악했다고 한다. 만약 기자가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피해는 지속됐을 것이다.

해당 매체는 인터넷 언론사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잠시 어긋난 선택을 했다고 변명했다. 현재 대한민국 인터넷 뉴스 시장은 과잉 공급 상태다. 인터넷이라는 플랫폼 특성상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등록된 곳만 6천 개가 넘는다. 언론사 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표절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기에도 힘들다. 해당 매체는 작년에도 서울대 대학신문의 기사를 무단 도용을 한 전력이 있다. 재발방지를 약속한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발생한 일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사용한 ‘잠시 어긋난 선택’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이 매체는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이미 그들에 대한 신뢰도는 뚝 떨어진 상태다.

디지털 시대의 ‘옐로우 저널리즘’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언론의 역할에 충실한 기사보다는 조회수와 광고 수입이 목적인 기사를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황이다. 네티즌의 반응으로만 채우는 허무맹랑한 기사나 사건의 본질과는 관련 없는 자극적이고 알맹이 없는 기사가 공장식으로 무수하게 생산되고 있다. 언론 윤리 의식을 지키지 않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는 인터넷 신문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 필요 이상의 공급으로 인해 경쟁이 과도해지고, 결과적으로 품질의 저하를 야기하는 전형적인 과잉 공급 시장의 형태를 띠고 있다. 언론이 태생적으로 자본과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하지만 단순히 구조적인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언론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과 혐오 현상에 언론인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언론의 공정성이나 정확도를 신뢰하는 정도가 세계에서 최하위 수준의 결과가 나왔다. 언론계가 좀 더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수용자 역시 비판적인 시각으로 뉴스와 현상을 바라봐야 한다. 물론 이것은 본래 언론의 영역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기에 가짜와 왜곡이 넘쳐나는 미디어에서 자신을 방어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표절을 자행한 매체는 홈페이지를 통해 “설립 이래 단 한건의 권익침해나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한 적이 없는 인터넷 신문”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이들의 말에 진정성을 느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처럼 뻔뻔한 태도 때문이다. 이번 학보사 기사 표절 사태는 언론계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그만큼 언론계의 전체적인 수준이 낮다는 증거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론이 보다 위기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기본적인 윤리조차 지키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언론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은 지금보다 더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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