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새벽을 알리는 닭처럼 ‘꼬끼오’ 하고 울어야 한다 말 한마디, 기사 한 줄의 무게
[취재일기] 새벽을 알리는 닭처럼 ‘꼬끼오’ 하고 울어야 한다 말 한마디, 기사 한 줄의 무게
  • 이율립 기자
  • 승인 2018.04.16
  • 호수 1475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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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율립<대학보도부> 정기자

애지문 중간에 위치한 가판대 위, 반으로 접힌 채 가장 먼저 학우들을 만나는 1면 탑 기사. 그 아래에 적힌 필자의 이름을 볼 때면 뿌듯함보단 부담감이 앞선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작성하고 수도 없이 읽고 고친 기사지만, 혹시 모를 실수가 있을까 봐서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쓰기가 이렇게까지 어려워질 줄 몰랐다. 누구보다 글을 쓰는 데에 자신 있었다. 글을 쓰기 전까진 오랜 고민이 필요했지만, 막상 책상 앞에 앉으면 술술 글을 써 내려가던 필자였다.

요즘 들어 한 문장, 한 문장을 적어가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 돼 버렸다. 노트북 앞에 앉아 몇 십분, 몇 시간을 고민하기 일쑤다. 썼다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하기도 한다. 분명 열심히 공부하고 정리한 내용인데도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기사 한 줄의 무게감, 하나의 기사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부터다.

불과 한 학기 전인 수습기자 때까진 기사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못했다. 기사를 작성하는 일이 드물었거니와, 기사를 쓰더라도 선배 기수가 작성해 놓은 기획안에 따라 몇 줄을 써내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이 쉬웠던 건 아니다. 시간을 투자해 작성한 기사인 만큼 글에 대한 애착은 있었다. 하지만 기사에 대한 책임감은 크게 들지 않았다. 나 대신 기사를 책임질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정기자가 되고부터는 매주 매주 책임감을 되새겨야만 했다.

몇 주 전, 기사에 도움을 준 타 대학 교수님의 소속을 적다가 대학의 이름을 잘못 작성한 적이 있다. 모음을 잘못 쓴 단순한 실수였지만, 필자에겐 가벼이 느껴지지 않았다. 수차례 *데스킹을 받으면서 수없이 기사를 읽었음에도 눈에 띄는 실수를 잡아내지 못한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사실 같은 기사를 보고 또 보다 지쳐 ‘당연히 제대로 썼겠지’하는 생각에 그냥 넘겼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또다시 깨닫던 순간이었다. 기사가 내 손을 떠났다는 생각에 책임감을 잃었던 것이다. 결국 이 때문에 이를 정정하는 정정 보도를 한정된 지면에 써야 했다. 실수는 곧 귀중한 시간을 내준 인터뷰이에, 또 한정된 지면을 사용하는 신문에 민폐였다. 스스로에 실망하며 얻은 호된 경험은 이후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도 온 신경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비약, 삐약. 어디선가 본 글에 쓰인 말이다.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글은 ‘비약’을 만들고 결국 이는 병아리가 ‘삐약’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그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비약비약’은 ‘삐약삐약’이 될 수 있다. 기자는 ‘삐약삐약’이 아니라 새벽을 알리는 닭처럼 ‘꼬끼오’하고 울어야 한다. 기사에 가벼운 실수란 없다. 조그마한 실수 하나가 내용을 왜곡할 수 있고, 오도할 수 있다. 단어 하나라 할지라도 적확히 쓰이지 않으면 독자는 오독할 수 있다. 기자가 책임감을 지녀야 할 이유다.


*데스킹: 현장 취재기자들의 원고를 고참기자들이 검토해 다듬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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