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 '어디까지' 인가요?
데이트폭력, '어디까지' 인가요?
  • 김지하 기자
  • 승인 2018.04.16
  • 호수 1475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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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데이트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지난달에 발생한 ‘부산 데이트폭력’사건은 종일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장악했고,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관심을 증명하듯 국회에서도 데이트폭력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들이 의논되고 있다. 하지만 법률적 논의 이전에 데이트폭력의 유형이 정확히 확립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런 옷 입지마” 
옷차림 통제도 데이트폭력?

데이트폭력은 보통 △성적 폭력 △신체적 폭력 △언어·정서·경제적 폭력 △행동통제의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그 중 ‘행동통제’는 의미가 아직 정립되지 않아 잡음이 자주 발생하는 대표적인 유형이다. 보통 상대방의 옷차림을 제한하거나 핸드폰·SNS를 점검하는 ‘과도한 간섭’ 행위를 행동통제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도한’의 정도를 명확히 규정하기가 어려워 행동통제 유형을 발표할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좌세준<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전공> 교수는 “행동통제로 분류되는 유형의 행동들은 ‘연인’ 사이 또는 ‘데이트’를 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며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특히 규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리하자면 ‘연인이라는 친밀한 관계성이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침범할 수 있는 것인지’가 행동통제의 쟁점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좌 교수는 “이런 통제 행위들은 두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 친밀한 관계가 형성돼야 나타난다”며 “그뿐만 아니라 친밀감이 생긴 후에도 통제 행위를 지속적으로 이뤄질 때 ‘행동통제’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즉 행동통제 규정에 있어 간섭과 통제뿐만 아니라 ‘친밀함’과 ‘지속성’도 중요한 척도임을 알 수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것

▲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실시한 데이트폭력 실태조사를 정리한 그래프이다.

그렇다면 행동통제를 정확히 규정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 대표적인 이유로 행동통제가 성적·신체적 폭력과 같은 한층 심각한 데이트폭력 범죄의 초석이 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실시한 2016년 데이트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피해 사례 중 행동통제로 인한 피해가 62.6%로 가장 많았다. 즉 아직 유형 확립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행동통제에 의한 피해가 가장 빈번히 일어난다는 것이다. 좌 교수는 “최근 국회에 제출된 데이트폭력 법안에 따르면 ‘상대방에 대한 생명, 신체, 재산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를 데이트폭력의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어 행동통제를 데이트폭력 유형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하지만 데이트폭력이 발생하는 이유, 또는 그 전 단계에서 일어나는 행위가 바로 ‘행동통제’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행동통제 유형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이를 데이트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한다. 그 예로 미디어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행동통제 미화 장면을 들 수 있다. 특히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미화 장면이 자주 방송돼 문제가 된다. 그동안 드라마에서는 강제로 상대방의 손목을 잡고 나가거나 벽에 밀치는 장면이 ‘설레는’ 순간을 표현하는 클리셰적 요소로 사용했다. 연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짧은 치마를 입은 출연자에게 다른 옷을 입으라고 권하는 상황에 로맨틱한 배경 음악을 사용하고, ‘짧은 옷차림이 걱정돼서 그러는 것’이라고 미화하는 장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행동통제 정의, 대화가 필요해 
행동통제에 대한 갑론을박이나 사회적 인식 부재 등은 아직 ‘데이트폭력’이라는 큰 개념이 사회에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데이트폭력에 대한 기본적인 논의와 토론이 이뤄져야 행동통제와 관련된 논란들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좌 교수는 “최근 데이트폭력이 사회적 관심거리가 되는 이유는 입법 과정에 생긴 공백 때문”이라며 “국회가 지나치게 서둘러 법률을 만드는 것보다는 ‘처벌’, ‘피해자 보호’와 함께 ‘예방’이 법률에 잘 반영되도록 논의를 거칠 필요가 있다”며 사회적 토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제도적 논의가 이뤄지기 전에 성숙한 시민 의식도 함께 수반돼야 한다. 최근 행동통제를 바라보는 견해차에서 문제에 대한 근본적 논의 보다 *남성·여성혐오 등의 성별 대결로 변질되는 양상을 접할 수 있다. 그런 현상의 원인으로 좌 교수는 “상대가 누구이든 간에 상대방이 느끼는 아픔이나 피해에 대해 공감하려는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데이트폭력을 ‘별거 아닌’ 문제로 치부해 그 심각성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적 둔감’ 때문에 초점이 어긋난 논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제 데이트폭력은 사적 영역에만 국한할 수 없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특별법 제정 논의 및 처벌 강화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행동통제와 같은 모호한 개념 논의가 이뤄져야 더 심각한 데이트폭력 범죄를 예방하는 초석을 쌓을 수 있다. ‘데이트폭력’이라는 행위가 우리 사회에 개념으로 정립된 것은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데이트폭력과 관련된 사회적 토론이 이뤄짐과 동시에 이를 바라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성·여성혐오: 남성·여성에 대한 혐오 또는 증오로 인해 발생한 성차별, 명예훼손 등을 말한다.

인포그래픽 정수연 기자 sy0740@hanyang.ac.kr
도움: 좌세준<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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