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세대, 전시를 사진으로 남기다
인증세대, 전시를 사진으로 남기다
  • 조수경 기자
  • 승인 2018.03.12
  • 호수 1472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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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최근 들어 각종 전시회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시 속 작품을 자신만의 감성을 담은 사진으로 남기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대표 작품 앞에서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이들은 개인 SNS에 모든 것을 인증하는 ‘인증 세대’라고 불리며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전시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는 전시회는 핫 플레이스가 돼 20대 인증 문화의 성지로 부상하고 있다. ‘대학 내일 20대 연구소’에 따르면 20대 10명 중 9명(89.6%)이 ‘전시회에서 인증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만큼 전시와 인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인증, 대세가 되다
이에 맞춰 전시회도 변화하고 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됐던 전시회들도 기존 관람 문화에서 벗어나 인증사진 할인 행사를 펼치는 등 인증 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딱딱하고 정적인 느낌이었던 전시회는 인증 문화가 떠오르며 20대의 새로운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1인 1카메라’ 시대가 실현되고, 인스타그램과 같은 사진 공유 SNS가 활발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세상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공유한다’는 슬로건을 내건 인스타그램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자리 잡으며 우리가 쉽게 인증하고 공유할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해줬다. 최배영<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자신이 소비한 것이나 경험한 바를 인증하는 문화는 *소확행(小確幸)의 트렌드와 연관된다”며 “일상 속에서 자신이 얻게 된 작은 성취를 SNS에 올려 자신이 느끼는 만족과 행복을 자랑하고 이에 대한 공감을 얻고자 하는 것에서 비롯된 행위”라고 분석했다. 또한 있어 보이도록 연출하는 능력인 *‘있어빌리티’와 같은 과시 심리가 맞물려 인증 세대는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인증사진을 찍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며 “내 존재감을 남기고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을 공유하고자 하는 문화 현상이 등장한 것”으로 인증 문화의 발달 배경을 설명했다.

전시에 인증 문화가 들어오다
인증 트렌드에 맞춰 전시회도 오히려 인증사진, 해시태그를 통해 인증을 유도하며 사진 촬영을 격려하는 추세이다. ‘마음껏 사진 찍을 수 있는 미술관’으로 소문난 ‘대림미술관’과 ‘디뮤지엄’은 국내 미술관 최초로 사진 촬영을 허용했다. ‘서울미술관’은 전시마다 포토존을 마련했고, 사진 촬영에 비교적 엄격했던 ‘한가람미술관’도 올여름 사진 촬영이 가능한 ‘니키 드 생팔’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장윤진<예술의전당 미술부> 관계자는 전시가 변화한 이유로 “과거의 전시 홍보 방식이었던 보도 자료 배포보다 SNS를 통해 올라간 사진들이 오히려 홍보 효과가 크다는 것을 체감한 것”을 꼽았다. 또한 장 씨는 “SNS는 문화적으로 중요한 코드가 됐다”며 “미술관도 SNS를 통한 인증이 대중들의 중요한 문화적 성취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관람객을 더 만족시킬 수 있는 전시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로 인한 문제점도 크다. 인증사진의 성지로 변한 전시회는 사진 촬영 때문에 관람이 등한시되는 주객전도의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장 씨는 “사진 촬영 과정에서 일어나는 소음 또는 정체 현상 등은 매번 문제가 된다”고 언급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타 관람객들에게 방해가 되거나 작품이 훼손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난해 미국 워싱턴DC ‘허시혼박물관’에서 발생한 작품 파손 사건이 있다. 쿠사마 야요이 전시를 관람하던 한 관람객이 셀카를 찍으려다 발을 헛디디면서, 호박 형태의 작품이 깨지는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이 영상은 SNS를 크게 달구며 과도한 인증의 폐해를 보여줬다. 더 나아가 장 씨는 “관람객들이 단순 인증을 넘어 상업적으로 사진을 남용해 작품을 소장한 재단에 촬영 제재를 당한 불명예스러운 경우도 있었다”며 인증 문화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함께 만들어나가는 전시 문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술관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사진을 통한 전시 홍보 효과가 큰 만큼 미술관 측은 섣불리 사진 촬영을 제한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한 이유로 미술관들은 다양한 절충안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까지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했던 ‘마리로랑생 展’의 경우는 특정 작품만 촬영할 수 있게 제한을 뒀다. 또한 여러 미술관에서는 타 관람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전시를 관리하는 사람이 사진 촬영을 위한 줄을 따로 관리하거나 작품 훼손 방지를 위해 작품 앞에 일정 거리의 방지 선을 설치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입장권을 확인할 때 전시 관람 수칙을 충분히 알려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장 씨는 “최근 전시장 들어가기 전, 사진 촬영에 대한 사전 공지를 분명하게 하고 관람 매너를 도식화시켜 대중 교육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도 “지금은 누구에게나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시대”라며 “작가와 작품 그리고 그 작품 속에 있는 의미를 발견하되 다른 이들의 행복도 소중히 하는 관람 매너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증 문화는 기존의 딱딱한 전시를 부드럽고 친숙하게 변화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전시회’라는 장소의 심적 거리감을 줄이고 관람객들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직 관람에 있어 미성숙한 매너로 인해 인증 문화가 주는 즐거움이 오히려 반감되는 경우가 있다. 성숙한 관람 매너를 위한 시민의식의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소확행(小確幸):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또는 그러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이다.
*있어빌리티: ‘있어’와 능력을 뜻하는 ‘ability’의 합성어로, 있어 보이도록 연출하는 능력을 말한다.

도움: 장윤진<예술의전당 미술부> 관계자
최배영<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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