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만화의 주인공이 되다
과학, 만화의 주인공이 되다
  • 노은지 기자
  • 승인 2018.03.12
  • 호수 1472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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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대 생명과학과 교수 신인철

‘교수의 연구실’이라 하면 전공 서적들로 빽빽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공간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만화 그리는 과학자’, 신인철<자연대 생명과학과> 교수(이하 신 교수)의 연구실은 다르다. 책장에는 여러 만화책이 나열돼 있고, LP판에선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의 연구실처럼 신 교수 역시 특별하다.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한 ‘만화 그리는 과학자’로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그를 닮아 개성 넘치는 연구실에서 ‘신인철의 일상툰’을 엿볼 수 있었다.

▲ 인터뷰를 진행 중인 신 교수의 모습이다.

과학자와 만화가, 그 오랜 꿈을 이루다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정말 좋아했다는 신 교수는 공상 과학 만화 ‘철인 캉타우’를 보며 과학자와 만화가를 꿈꿨다. 하지만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 없는 그에게 ‘만화가’란 높은 벽이었다. “만화를 좋아했지만 잘 그리진 못했어요. 그래서 만화가가 되는 것은 어렵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도 만화에 대한 신 교수의 사랑은 식지 않았다. 만화가의 꿈은 접어두고 생명과학과에 진학한 이후에도 그는 꾸준히 만화를 그렸다.

대학원생으로 연구를 하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실험하다 남는 시간에는 틈틈이 주변 사람들을 모델로 만화를 그렸다. 그 모습을 본 한 교수가 학회지에 만화를 그려보라 제안했고, 그는 자신의 첫 만화 ‘대학원생 블루스’를 사람들에게 선보이며 마침내 만화가라는 자신의 꿈을 이뤘다. 그렇게 신 교수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만화 그리는 과학자’가 됐다. “그렇게 좋은 논문이 뭐 내 맘대로 써져요? 그리고 포닥(박사 후 과정, Post-Doctor) 박봉에 살기 힘들어서 싫어요.”

올해로 23년차 만화가인 신 교수가 연재하고 있는 ‘조교수 블루스’ 속 대사다.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만화에는 그가 경험한 과학자의 삶이 잘 담겨있다. 중견 교수가 되기 위해선 대학원생과 포스트 닥터, 조교수로 10년 이상을 보내야 한다. 신 교수는 이 긴 시간을 버티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주변 친구들은 대기업에 취직해 돈을 버는데 저는 대졸 초임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았어요. 부모님께 죄송하고 때로는 자괴감도 들었지만, 운명이라 생각하고 버텼죠.” 이처럼 화려하게만 보이는 과학자의 애환을 만화로 그린 것이 ‘대학원 블루스’, ‘포닭 블루스’, ‘조교수 블루스’이다. 신 교수는 이 ‘블루스 시리즈’로 과학자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과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들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고 대학원에 진학했다가 도중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직업들과는 달리, 과학자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제 만화를 통해 과학자의 ‘진짜’ 모습을 알리면 과학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죠.

▲ 신 교수가 ‘한민족과학기술자네트워크’에서 현재 연재하고 있는 ‘조교수 블루스’의 한 장면이다. 그의 만화는 조교수의 애환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자신만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학의 매력
2005년, 본교 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게 된 신 교수는 첫 수업을 떠올리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부담이었다고 말했다.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것과는 달리 학생을 가르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잖아요? 그래서 처음 120명의 학생 앞에 선 순간, 긴장되고 떨려 힘들었죠.”

그런 그는 다른 교수들과는 다르게 새로운 도전을 했다. 바로 직접 그린 만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제가 그림을 그리며 설명하면 졸던 학생들이 깨곤 해요. 이렇게 학생들이 재미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직접 그린 수업 자료를 활용하고 있죠.”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신 교수만의 수업 자료를 모아 출간한 것이 현재 그의 수업 교재로 활용되고 있는 「카툰 콜리지-분자세포생물학」이다.

만화인 교재로 수업하고, 만화를 그리며 설명한다. 이렇게 신 교수는 그만의 독특한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며 ‘과학의 재미’를 전하고 있다. “요즘은 오히려 연구하는 것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더 재미있어요.” 그는 만화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또한, 신 교수는 지난 2016년에는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을 위한 생화학 만화 교재인 「생물학 신 완전정복」을 출간했다. 이후 그는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라는 걸 느꼈다. 책을 보신 한 할머니께서 과학을 가르쳐 달라고 찾아오고, 중고등학생들이 스터디 자료로 쓴다며 찾아와 감사를 전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제 책을 누군가 산다는 것도 신기한데, 그걸 보고 좋다고 하니 기뻤어요.” 그는 과학을 좀 더 쉽게 전하기 위해, 그리고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만화를 그릴 예정이다.

▲ 그의 연구실 한편에 신 교수가 출간한 만화들이 놓여있는 모습이다.

만화에서 즐거운 ‘나’를 찾다
그의 만화에서 드러나듯, 신 교수에게 만화란 ‘즐거움’이다. 그 속에 그림도 있고, 이야기도 있고, 원하는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이기도 하다. “제 만화에는 칸이 없어요. 칸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기 위해서죠.” 이처럼 그는 자유롭게 자신만의 만화를 하고 있다. 논문부터 수업 준비까지, 바쁜 교수 생활 중에도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제약이 많고 딱딱한 논문을 쓰다 보면 지칠 때가 있어요. 보는 것도 즐겁고, 그리는 것은 더 즐거운 만화가 제 휴식처죠.”

신 교수는 자신이 만화로 휴식을 가진 것처럼, 학생들 역시 자신이 즐거운 것을 찾아갔으면 한다. “우리 사회가 심각한 경쟁 사회인 것을 증명하듯, 많은 학생이 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하고 일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최근 유행한 YOLO(You Only Live Once)처럼, 학생들이 한 번 사는 인생에서 하루하루 즐거움을 찾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대중에게 과학을 알리고, 쉽게 이해시키는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과일을 설탕에 담그면 효소가 생기는데, 그 효소를 마시면 건강에 좋다’와 같은 비과학이 많이 퍼져있다고 한다. 신 교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잘못된 과학 상식을 바로잡고, 올바른 과학을 알리는 것이 과학자의 역할이죠. 저는 만화로 그 역할을 다 하고 싶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일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 그것이 그가 꿈꾸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자신이 꿈꾸는 모습에 다가갈 신 교수를 기대해 본다.

▲ 그는 자신을 '어쩌다 작가'라는 말로 표현했다. 신 교수가 우연한 기회로 만화가가 된 것처럼, 그는 학생들이 언제 올지 모르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진 이율립 기자 dbfflq1225@hanyang.ac.kr
사진 제공: 신인철<자연대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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