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워라밸’의 가치, 보다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장산곶매] ‘워라밸’의 가치, 보다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 김도렬 편집국장
  • 승인 2018.03.12
  • 호수 1472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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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렬<사진·미디어부> 부장
▲ 김도렬<편집국장>

‘워커홀릭(일 중독) 세계 챔피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우리나라를 이같이 표현했다. 이는 여러 통계 자료들로 설명되는데, 그중 가장 단골으로 사용되는 자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근로자당 연평균 실제 근로시간’ 조사 내용이다. 한국은 이 조사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한다. 2016년 기준, 한국은 일하는 시간이 평균 2천 69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멕시코에 이어 2번째로 오래 일하는 나라로 집계됐다. 전체 평균이 1천 764시간인 것을 고려하면, 한국인들은 OECD 국가 평균보다 1년에 약 305시간 더 일하는 셈이다. 심지어 평균 수면시간도 OECD 국가 중 꼴찌라고 하니, 이쯤 되면 한국인은 일 중독 수준이 아니라,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인가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런 한국 사람들도 이제는 지쳤나 보다. 단순히 국가 발전을 위해, 회사의 조직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근로시간 단축법’이 지난달 28일, 5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기존 주당 최대 68시간이었던 법정 근로시간을 최대 52시간으로 줄인 것이다. 그 규모나 방법에 대해선 여전히 각계에서 이견이 있지만, 기존 안의 최대 근로시간은 너무나도 과했기에, 이번 일은 매우 올바른 결정이라 평가하고 싶다. 아울러, 산업 현장에서도 이러한 기류에 발맞춰 ‘칼퇴근제’, ‘PC오프제’ 등 다양한 ‘워라밸 정책’을 펼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과연 단순히 근로 시간만을 단축하는 것으로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일과 삶의 극심한 불균형’이 해결될 수 있을까?

결국, 살인적인 근로 시간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과도하고 불필요한 업무량 때문인데, 대부분 ‘시간’에만 초점이 맞쳐줘 있고 업무량 자체를 줄이고자 하는 움직임은 다소 적어 아쉽다. 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업무량이 이전과 똑같다면, 업무에 대한 부담감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업에서 근로자들을 강제로 퇴근시키는 정책을 펼치더라도, 퇴근 후 잔업을 위해 카페 혹은 집으로 향한다면, 실질적인 근로 시간은 단축되지 않기 때문에 해당 정책의 본질적인 의도는 퇴색될 것이다. 진정한 워라밸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업무량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파악하고,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 역시 동반돼야 한다.

또한, 사회 전체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워라밸 열풍이 그것이 가장 필요할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는 상황도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들이야 워라밸 정책을 시행하면서 발생하는 손실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안 그래도 인력·자금난에 허덕이는 중소규모 업체들이 이를 실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감소되는 생산량이 유지되기 위해선 총 12조 3천억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실적으로 당장 대다수의 중소기업이 워라밸을 추구하기엔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중소기업청이 2014년에 발표한 ‘중소기업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종사자 중 약 88%가 중소기업에서 근무 중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사정이 괜찮은’ 기업의 멋진 워라밸 정책 사례만을 보며,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전망만 있을 것이라 예상하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임에도 의도치 않게 또 다른 차별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좋은 일자리’는 더 좋아지고, ‘나쁜 일자리’는 더 나빠져 각 직종 간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련 부처는 다가오는 워라밸 시대를 맞이할 충격을 완화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줄일 수 있는 적절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제작한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시간이 짧은 국가일수록 노동생산성이 오히려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즉, 긴 노동시간이 무조건 기업의 수익 증대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휴식과 삶의 가치가 주목받는 지금, 우리 사회는 보다 많은 이들이 워라밸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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