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책임감이란
[취재일기] 책임감이란
  • 김지하 문화부장
  • 승인 2018.03.05
  • 호수 1471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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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문화부> 부장

어른이 된다는 것. 그저 지하철이나 버스에 성인 요금을 내고 한두 살 나이를 더 먹는 단순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스스로 책임져야만 하는 일이 늘어나고, 그 일을 책임질만한 능력이 될 때 비로소 어른에 가까워진다고 은연중에 믿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정기자에서 부장으로 직급이 바뀐 후 찾아온 이번 방중회의는 필자에게 더 부담스럽고 힘들게 느껴졌다.

신문사는 다음 학기 기사의 기획안을 쓰고 신문의 전반적인 틀을 조정하는 방학 중 회의 기간을 가진다. 우리는 편하게 줄여서 ‘방중 회의’라고 부르는데, 방중 회의가 힘들어서 종강이 기대되지 않을 정도로 이 기간은 매우 고역이다. 10시간 가까이 앉아서 읽어야 하는 기획안, 기획안에 쏟아지는 피드백들……. 하지만 그중에서도 기획안이 통과되지 못해 다음 회의까지 새로운 기획안을 작성하는 일이 가장 고되다. 다음 회의까지 남은 2~3일 남짓한 시간은 기삿거리를 찾고, 기사의 방향을 정하고, 완성된 기획안을 작성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새도록 기삿거리를 찾아 기획안을 작성하고, 단 한 시간도 자지 못한 채 지하철에 올라타는 날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아, 내일은 신문사 그만 둔다고 얘기할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되뇌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필자는 여전히 신문사에 남아있고, 벌써 부장이 돼 한대신문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힘든 시간을 견딘 스스로가 뿌듯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이 들곤 한다. 백 번도 넘게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했으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필자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대신문에 애정이 엄청나거나 나가겠다고 말하기 두렵다든가 하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은 아니었다. 한 사람이 그만두면, 그만큼의 기사와 기획안이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이 돼 돌아간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다. 즉 ‘남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은’ 책임감이 힘든 학보사 생활을 끈질기게 버티도록 만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책임감을 필자만 생각할 수 있는 어떤 독특한 감정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어른이라면, 또 신문을 함께 만드는 학보사의 구성원이라면 가져야만 할 책임감이라고 깨닫는 중이다. 그리고 이런 책임감을 느끼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성숙한 어른으로 한 뼘 더 성장하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오늘도 써지지 않는 글과 씨름하고, 어제 기사 쓰느라 밤새웠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남은 여덟 번의 발간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준비하고 있다.
 
아마 한대신문을 그만두기 전까지도 이런 고민이 머리 한편을 가득 차지할 듯싶다. 그리고 나는 이런 감상을 말할 정도로 내 몫을 다하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지는 않았는지도 그 고민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8면의 신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대신문’이라는 하나의 매체를 만들어가기에 이는 끝낼 수 없는 고민인 것 같기도 하다. 책임감, 참 무거운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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