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면서요?”, 사람 때문에 울고 웃는 그들
“가족이라면서요?”, 사람 때문에 울고 웃는 그들
  • 노은지 기자
  • 승인 2018.03.05
  • 호수 1471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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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개의 해’를 맞은 2018년 현재, 우리나라는 애견인이 1,000만 명이나 될 정도로 애완견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 뜨겁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매년 10만 마리가 넘는 유기견이 길거리에서 구조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렇게 구조된 유기견은 보호소에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린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남은 것은 단 두 가지뿐이다. 시 보호소에서 안락사당하거나, 사설 보호소에서 남은 일생을 보내거나. 기자는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한 사설 보호소에서 따뜻한 가정을 기다리는 유기견을 만났다.

보호소, 유기견의 상처를 사랑으로 보듬다
안녕하세요? 저는 말티즈 아롱이예요. 사실 구조되기 전까지 저는 그저 ‘버려져 다리를 들고 다니는 개’였어요. 발가락이 다 부러져서요. 힘든 수술을 끝내고 지금은 나아졌지만, 저는 아직 사설 보호소에 있어요. 처음 보는 사람이 너무 무서워서 으르렁거리고 물기도 했더니 임시보호처를 못 갔기 때문이죠. 저도 언젠가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따뜻한 집으로 갈 수 있겠죠?

아롱이가 있는 곳은 동물보호단체 ‘생명공감’에서 운영하는 보호소이다. 경기도 고양시,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이 보호소에 기자가 도착하자 인기척을 느낀 개들이 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으로 들어서니 분주하게 움직이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비닐로 겨우 가린 견사 사이로 보이는 개들은 꼬리를 흔들며 자원봉사자에게 다가가거나, 으르렁거리며 경계하고 있었다.

▲ 생명공감 보호소의 모습이다. 비닐과 집이 바람을 막아주고 있지만, 난방 시설이 없는 이곳의 겨울은 시리기만 하다.

강경미<생명공감> 대표와 자원봉사자들은 고무망치로 밥그릇의 얼어버린 물을 깨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추운 날씨 탓에 물이 금방 얼어버려, 보호소의 개들이 밤새 물을 마시지 못했기 때문이다. 건강 상태도 확인한다. 옷을 입히고, 담요를 깔아줬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저체온증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만 있는 개들도 있다. 그들은 이후 견사를 청소하고, 산책을 시키며 동물 보호소에서의 하루를 보낸다.

강 대표는 한 허스키가 두 눈두덩이가 패여 피가 흐르는 채로 시 보호소에 있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시 보호소에서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안락사를 시키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생명공감 보호소로 데려왔다. 지난달 이곳에 들어온 대형견 두 마리는 뼈가 드러나도록 마른 몸에, 밥그릇에는 물도 없이 고추 2개만 놓여있었던 채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생명공감’에서는 안락사 당할 상황에 놓인 유기견을 데려오거나, 학대 제보가 들어온 개들을 구조하고 있다. 강 대표는 “유기견 대부분이 다치거나 병이 든 상태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보호소에는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을 다친 개들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

이곳에서 보호하고 있는 유기견은 주로 대형견으로, 약 80마리의 개를 보호하고 있다. 공간 부족 문제로 입양을 많이 보내야 새로운 유기견을 많이 데려올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대형견을 입양 보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대형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을뿐더러 아파트에 거주하는 인구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대형견이 ‘반려견’으로 살 수 있는 가정은 국내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마당에서 짧은 줄에 묶어놓고 키우겠다든지 아니면 사람 없는 곳에서 밭을 지키는 지킴이로 쓰겠다는 사람들의 연락만 많이 올 뿐”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길바닥보다 따뜻한, 그러나 여전히 차가운
“개들은 여기가 천국인 줄 알아요. 이곳보다 더 따뜻한 가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사람에게 버려진 이곳 아이들은 보호소에서 사랑받고 있지만, 보호소의 현실은 열악하기만 하다.

겨울은 유기견에게 유난히 시린 계절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사립 유기견 보호소는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보호소는 사람들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후원금이 시설 운영에 필요한 만큼 모이지 않거나, 수술 등의 갑작스러운 지출이 발생했을 때 그 금액은 고스란히 운영자들의 빚이 된다. 한 달 운영비를 후원금으로 겨우 해결한다고 해도, 병원비등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나면 결국 남는 건 수백만 원의 적자뿐이다.

이처럼 돈이 부족하니 인력도 부족하다. 약 80마리의 개를 관리하는 상주 직원은 단 한 명뿐이다. 강 대표는 직원 혼자 보호소를 관리하는 것이 버거운 걸 알지만, 직원을 늘릴 수 없다. “저를 비롯한 운영진 모두 생업이 있다 보니 직원 한 분을 뒀어요. 두 명을 고용하고는 싶지만, 인건비가 문제죠.”

▲ 서울에 위치한 한 사설 보호소의 모습이다.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유기견이 웅크리고 앉아있다.

그나마 생명공감 보호소는 자원봉사단도 찾아오고, 충분하진 않지만 후원금도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설 보호소는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 봉사단을 꾸려 동물 보호소 봉사를 진행하는 유기동물 스타트업 ‘클로렌즈’의 박운찬<클로렌즈 기빙팀> 팀장은 “유기견들이 생활하는 견사가 비닐이나 간이 움막으로 이뤄진 곳이 많고, 청소가 제대로 돼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 “심지어 버려진 모텔에서 유기견을 보호하는 동물 보호소도 있다”며 “지원 없이 보호하는 유기견만 늘어나 상황이 점점 더 열악해 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도 강 대표가 보호소를 계속 운영하는 이유는 ‘보람’ 때문이다. 한 마리, 한 마리 애정을 쏟은 개들이 입양 갈 때 그녀는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빚이 늘어나도, 몸이 고돼도 강 대표는 오늘도 생명공감 보호소를 지키고 있다.

유기견에게도 따스한 봄이 오길

▲ 생명공감 보호소에서 지내고 있는 유기견의 모습이다.

해마다 유기견의 수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유기견 보호소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사람으로 인해 생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강 대표와 박 팀장은 한목소리로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상당수 사람은 키우는 개가 새끼를 낳으면 ‘자산이 늘었다’ 정도로 받아들이고 기뻐하지, 태어난 새끼들의 미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전했다. 또한, 박 팀장은 “사람들이 애완견을 분양 가게에서 사다 보니 상품으로 보곤 한다. 10~15년을 책임져야 할 생명이라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을 한 생명으로 대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인식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어느덧 추웠던 겨울이 지나 봄이 찾아오고 있다. 유기견들에게 많은 사람의 관심이 닿아 유기견과 보호소에도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한 봄날이 오길 바란다.

도움: 강경미<생명공감> 대표
박운찬<클로렌즈 기빙팀> 팀장
사진 제공: 클로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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