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의 문구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다, 카피라이터 진광혁
한순간의 문구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다, 카피라이터 진광혁
  • 이화랑 기자
  • 승인 2017.12.03
  • 호수 1469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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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빌딩, 본교 한국언어문학과(00) 출신 진광혁<SM C&C> 카피라이터(이하 진 동문)는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은 채 기자들을 반겼다. 정장을 입고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회사원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진 동문에겐 묘한 여유로움마저 느껴졌다. 자신의 뻔뻔함과 노력을 무기로 수많은 광고를 흥행시킨 진 동문. 그는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카피를 쓰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인생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겨보자.

▲ 인터뷰에 임하고 있는 진 동문의 모습이다.

내 인생의 카피를 찾아서
학창 시절, 글 쓰는 게 좋았던 진 동문은 장래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꼭 소설가나 시인이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면 어떤 직업이든지 괜찮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먹고 살 걱정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직업에는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광고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발견하게 된다. ‘창의성의 격전지’로 불리는 광고업계는 그 특성상 다른 직종보다 상대적으로 자율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가 강한 편이다. 기본적인 급여를 보장받으며 마음껏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광고계’는 자유로운 창작을 꿈꾸던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마침내 광고인의 길을 걸어보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진 동문은 대학 재학 시절부터 꾸준히 광고와 관련된 본인만의 공부 계획을 세워 실천해왔다. 중간중간 ‘내가 정말 광고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여러 번 들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영화를 한 편씩 보고, 소설을 베껴 쓰고, 좋은 광고는 스크랩해가면서 스스로 공부했어요. 이 직종은 어떤 자격증이 필요하거나 특정 시험을 치러야 하는 게 아니다 보니까, 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어 늘 불안했거든요. 그래서 더 강박에 가까운 훈련을 했던 것 같아요.”

아이디어, 아이디어 그리고 또 아이디어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작은 광고 회사에 취직한 진 동문은 삼성 계열사 광고업체 팀장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는 등 업계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SK’ 계열의 광고 회사를 거쳐 현재 ‘SM C&C’ 소속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는 그의 포트폴리오는 다수의 ‘SK텔레콤’ 광고부터 ‘박카스’·‘요기요’·‘베나치오’까지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광고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모두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SK텔레콤의 ‘잘생겼다 LTE-A’ 광고가 그 대표적인 예다. 해당 광고의 “잘생겼다~잘생겼다!”라는 카피는 유행어로 떠올랐고,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조사 결과 ‘브랜드별 광고효과 1위’, ‘가장 인상 깊었던 광고 1위’라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

진 동문이 기획해,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 SK텔레콤 '잘생겼다 광대역 LTE-A' 광고이다. 진 동문은 좋은 광고라면 ‘웃기거나 울리거나’ 둘 중 하나로 확실하게 시청자를 사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 진 동문이 기획해,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 SK텔레콤 '잘생겼다 광대역 LTE-A' 광고이다. 진 동문은 좋은 광고라면 ‘웃기거나 울리거나’ 둘 중 하나로 확실하게 시청자를 사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진 동문은 광고 작품으로 대중들과 소통하는 직업인만큼,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광고를 보고 연락해 좋은 평가를 건넬 때 성취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쓴 카피가 사람들 사이에서, SNS상에서 유행할 때면 가슴 깊이 뿌듯함이 몰려온다. 한편으로는 이런 성과를 거두기 위해 매 순간 부담을 내려놓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글과 생각을 보여주고 평가받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시험을 보는 기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정신적인 고통의 강도가 유독 심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잠도 제대로 못 자고요. 연차가 쌓일수록 후배들보다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더해져서 항상 부담이에요.”

창의적인 아이디어 창출이 중요한 광고업계는 회사 내에 자유롭고 민주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하곤 한다. 특히나 진 동문의 회사는 자유로운 근무 환경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인터뷰 당일도 오전 11시에 출근했다는 진 동문. 그는 일을 할 때면 무조건 커피숍으로 향한다. 백색소음과 푹신한 의자 등 자신에게 맞는 조건이 갖춰져야 집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야근이 잦긴 하지만 이런 인프라는 타 광고회사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해요. 아이디어 개발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진 동문은 자신의 작품 중에서도 입봉작인 ‘박카스’ 광고가 가장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캠페인의 뼈대 아이디어부터 메인 카피까지 저의 것으로 진행된 게 처음이었어요. 게다가 그 캠페인으로 광고주의 오랜 고민이었던 매출이 확연히 뛰어올랐거든요. 정말 뿌듯했죠.”

진 동문의 입봉작인 박카스 광고의 한 장면이다. 그는 광고 기획에 있어서 ‘공감’과 ‘참신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 진 동문의 입봉작인 박카스 광고의 한 장면이다. 그는 광고 기획에 있어서 ‘공감’과 ‘참신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광고 기획자들이 말하듯, 진 동문도 특별한 사건보다는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는 ‘박카스’ 광고도 일상의 경험에서 단초를 찾은 경우라고 했다. 당시 아이디어 고민으로 몹시 피곤했던 그는 ‘고생한다’며 음식을 권하시던 어머니의 행위가 더 피곤함을 유발하는 것을 느꼈고, ‘이런 가짜 피로회복제 말고, 진짜 피로회복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로부터 ‘진짜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습니다’라는 메인 카피가 탄생했다.

‘한 방 있는’ 문장을 향한 열망
카피라이터는 인쇄 광고의 헤드라인, 카피 본문과 방송 광고의 멘트, 내레이션, 광고 노래의 가사 등 각종 광고에 사용될 글과 문장을 만든다. 진 동문은 “모든 종류의 글에 각기 다른 즐거움이 있다”고 말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데, 내 돈을 들이지 않고 남의 돈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이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했다. 

그는 게임 광고, 가전제품 광고 등 맡게 되는 광고에 따라 때론 중학생처럼, 때론 주부처럼 다각도의 발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다른 직업보다 더 확장된 시야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하고, ‘다중인격’처럼 그 대상에 이입할 수 있는 많은 자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진 동문은 이를 ‘옷’에 비유하며 ‘생각의 다양화’가 중요함을 이야기했다. “카피라이터는 많은 옷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카피 종류나 장르에 따라서 정장과 반짝이 옷을 여러 벌 갈아입어야 하는 거죠.”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이자, 진 동문이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문장에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재미와 긴장감이 없어져요. 김훈 작가처럼 수식이 없는 스타일의 글을 좋아합니다.” 진 동문은 항상 김훈 작가를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김훈 작가가 그 문장을 ‘꽃은 피었다’로 해야 할지 ‘꽃이 피었다’로 해야 할지 조사 하나 때문에 몇 날 며칠을 고심했다고 해요.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는 확실히 다르거든요. 저도 김훈 작가처럼 간결한 한 문장으로 깊은 감동을 주고 싶습니다.”

진 동문은 ‘내가 하면 잘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며 겸손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내가 하면 다르다’는 의지만은 확고히 했다. 결과물이 좋건 나쁘건, ‘개성’을 향한 도전정신이 그를 성공의 길로 이끈 것 아닐까.

진 동문은 늘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가벼운 마음가짐을 가지려 노력한다. ‘이거 아니면 안 돼’라는 무거운 생각은 내려놓고, 즐거운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 진 동문은 늘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가벼운 마음가짐을 가지려 노력한다. ‘이거 아니면 안 돼’라는 무거운 생각은 내려놓고, 즐거운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사진 정수연 수습기자 jsy0740@hanyang.ac.kr
도움: 이율립 수습기자 dbfflq1225@hanyang.ac.kr
사진 출처: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055308&memberNo=1546078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8&aid=0002468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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