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모두가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장산곶매] "모두가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한소연 편집국장
  • 승인 2017.11.13
  • 호수 1467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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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소연<편집국장>
▲ 한소연<편집국장>

매년 입시철이 다가오면 기분이 처진다. 당시 필자처럼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 있을 수험생들에게 감정이입이 돼서인지도 모르겠다. 

피가 맺힐 정도로 입술을 뜯어대고, 앉은 주변이 머리카락으로 가득할 만큼 머리카락을 뽑았다. 이 자학적인 습관은 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수험생 시절 극에 달했다. 무엇보다 이런 행동을 굳이 하지 않아도, 몸은 정상적이지 않은 작용들로 그 시절의 필자를 괴롭혔다. 껍데기로서의 몸은 ‘스트레스성’, ‘신경성’, ‘과민성’ 따위로 수식되는 통증이란 것들은 대부분 겪었다. 편두통도 극심했다. 보통 편두통의 증상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필자를 몹시 당황스럽게 했던 증상은 한 쪽 눈이 보이지 않았던 경우다. 카메라 후레시를 계속해서 눈앞에 터트리는 것 마냥 섬광이 시야를 가렸다. 몸은 비정상적인 신체 반응과 몇 달간 함께였다.

주변 친구들도 그랬다.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피부에 흉측한 것들이 돋아나기 시작한 아이가 있었다. 소화가 되지 않는다며 소화제를 항시 지참하는 이도, 타이레놀을 갖고 다니는 이도 있었다. 또 누구는 생리불순을 호소하기도 했다. 짧게는 두 달, 길게는 네 달 넘게 월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반대도 있었다. 생리가 몇 달 동안 계속되는 경우 말이다.  

처음에는 이 증세의 원인을 찾기 힘들었다. 모든 생활이 마비될 정도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증상이 발생해도 급작스러운 영역이었기 때문에 또 금방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했다. 신경성으로 인해 생기는 몸의 반응들은 이처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기에 병원에 가기도 애매했다. 병원에 가도 의사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스트레스성일 것이다”라며 “큰 병원에 가서 종합적인 검진을 받아보라”라는 모호한 소견만 남겼다. 더구나 종합 건강검진이라니, 중요한 일이 있는 우리에게 과분한 시간 사용이자 비용 낭비이지 않은가. 그냥 부모님께서 주시는 ‘홍삼 액기스’가 몸에 좋을 터이니 그걸 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보기에 활발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모두가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았”던 것이다.

청년 건강실태는 처참하다. 국회 보건복지회 윤소하<정의당> 의원의 분석에 따르면, 오랜 학업과 취업 준비로 인해 20대의 건강이 다른 연령대 보다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5년 동안 근골격계 질환, 소화계 질환, 정신건강 질환 등 일부 질환의 환자 증가율이 노년층을 제외하고 20대가 가장 높았다. 지난해 20대 경추질환 환자는 2012년보다 27.7%가 증가했으며 척추질환 환자는 5년 간 연평균 13.3%씩 증가해 2012년보다 65%나 늘었다. 이에 비해 30대는 37%, 40대는 41.3%의 증가율을 보였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는 정신질환은 더욱 심각하다. 우울증 환자는 30대에서 1.6% 증가하고 다른 연령대는 되레 감소했으나 20대에서만 22.2% 증가했다. 공황장애의 경우 최근 5년간 20대 환자수가 65%나 증가했다. 알코올 중독 환자 역시 표본이 적은 10대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감소추세인 가운데 20대의 증가율이 가장 크다. 또한 궤양성 대장염은 41.3%, 위·식도 역류병 등 소화계통 질환과 급성신부전 역시 45.3%의 증가 수치를 보였으며 비뇨 생식계 질환도 다른 연령대보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러한 수치에도 청년세대는 국가건강검진 혜택에서 배제된다. 생애주기 건강검진의 중요성 인지를 위한 제도적 의무화는 노년층에만 국한돼 있는 것이다.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고 있는 건강검진은 ‘지역 세대주, 직장가입자 및 40세 이상 세대원과 피부양자’로 그 대상을 한정한다. 지역 세대주가 아니거나 취업을 하지 못해 직장가입자에 해당되지 않는 청년들은 이 기회를 얻을 수 없다. 청년층이 ‘건강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다음 주, 11월 16일 목요일에는 2018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연말은 각종 시험이 몰려있는 달이기도 하다. 그 압박에, 불안감에 피가 맺힐 정도로 입술을 뜯고, 주변 바닥에 머리카락이 수북할 정도로 뽑아대는 젊은이가 여전히 있다. 그리고 청년 건강검진 의무화 법안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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