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사로] ‘불안함’이 아니라 ‘불편함’에 미쳐라
[진사로] ‘불안함’이 아니라 ‘불편함’에 미쳐라
  • 임상훈<교육혁신단 스마트교수학습센터> 책임연구원
  • 승인 2017.10.30
  • 호수 1465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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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상훈<교육혁신단 스마트교수학습센터> 책임연구원

‘10대, 꿈을 위해 공부에 미쳐라’, ‘20대, 공부에 미쳐라’, ‘30대, 다시 공부에 미쳐라’, ‘40대 공부 다시 시작하라’. 이 살벌한 문장들은 시중에 출간된 학습과 관련된 서적 제목이다. 10대는 10대라서, 40대는 40대라서 공부에 미쳐야 한다는 사회. 외국인이 본다면 한국을 긍정적인 평생학습문화를 가진 나라로 오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 저런 책들은 공부하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대한민국의 민낯을 비추는 거울이다. 기러기 가족, 공교육 붕괴와 사교육 팽창 등의 담론으로 불리는 비정상적인 학습 양태는 한국 사회를 ‘평생학습사회’가 아닌 ‘과잉학습사회’로 불리게 만들었다. 우리는 어떻게 과잉된 학습은 무엇이며, 어떻게 학습의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는가? 

한국 사회가 ‘과잉학습사회’라고 불리는 배경은 학습의 의미가 왜곡된 것에서 출발한다. 사실 학습에 ‘과함(過)’이란 있을 수 없다. 학습을 통해 열심히 배우고 익혀 자신을 성장시키고, 더 나아가 자신이 속한 사회와 공동체의 변화와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잉학습사회의 학습은 그 과정과 결과에 문제가 있다. 그것은 성장과 변화라는 학습으로서 근본적 가치를 상실한 채 소위 스펙과 같은 학력 코드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과잉 섭취된 지식은 수명이 대단히 짧다. 지식을 필요로 하는 순간, 그것을 요구하는 시험지 안에 모든 것이 쏟아진 후 흔적도 없이 휘발돼버린다. 스펙 달성 이후의 지식은 더 이상 효용 가치가 없는 교육 폐기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히 대학생들의 매일 반복되는 학교 수업, 아침잠을 쪼개가며 듣는 영어 수업, 각종 봉사활동과 사회경험들. 일상이 된 학습의 장면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들은 학습의 여정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가, 아니면 학습 결과 획득되는 ‘‘점수‘, ‘증서’를 늘리는 데만 목말라 있지는 않은가?

학습의 변질은 사회 환경탓이 크지만 근본적으로 학습자의 불안에 기인한다. 다시 말해, 과잉학습사회의 학습자들이 가진 학습 동기는 성장과 변화가 아닌 학습하지 않으면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위에 있다. ‘A 받으려면’, ‘취업하려면’, ‘남들만큼 벌려면’ 등으로 대표되는 학습의 동력들은 원하는 학력코드 획득에 실패했을 때 닥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학력코드란, 제시된 일정한 기준을 통과했을 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그 수준을 넘어서는 것에만 주목한다. 개인별로 차별화된 학습 목표란 존재할 필요가 없다. 아니, 그것은 사치에 가깝다. 오직 제시된 기준의 통과 여부만 중요하다. 이러한 방식의 학습은 학습했는데 학습한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대학생의 학습은 학점에 좌우된다. 일종의 스펙이 돼버린 학점이 일련의 학습 과정과 결과를 대변한다. 왜 그 점수인지는 의미가 없다. A인지, A가 아닌지에만 중요하다. 그렇다보니 동료란 이겨야 할 경쟁자일 뿐이다. 이런 극도의 긴장감 속에 제대로 된 학습은 존재하기 어렵다. 이것이 ‘불안감’에 미친 학습의 결과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학습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열쇠는 ‘불안감’이 아니라 ‘불편함’, 여기서 불편함이란 육체적, 정신적 불편함에서 찾아야 한다.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학습은 불안함을 해결하기 위한 학습과 질적으로 다르다. 특히 학습으로 얻는 행복과 만족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과잉된 학습과는 차별을 가진다. 이제는 다르게 미쳐야 한다. 불안감에 눈이 멀어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학습해야 한다. 자, 이제는 미쳐라. 불편함에 미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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