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를 원하는 우리들
보통의 존재를 원하는 우리들
  • 정수연 수습기자
  • 승인 2017.10.30
  • 호수 1465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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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다는 것은 흔한 것, 평범하다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 것,
평범하다는 것은 지루하다는 의미였다. (중략)
회사원이 될 거야. 죽을 만큼 노력해서 평범해질 거야. 

-드라마 '청춘시대' 시즌 1 4회 中

‘노멀 크러시’, 가장 평범한 것을 좇아 가장 평범한 삶을 갈망하는 사람들. SNS가 보편화 되면서 자신의 성격, 활동, 정체성, 가치관, 여행, 심지어는 소비까지 자랑하는 사회에서평범이 가장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평범’ 해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과거에는 비싼 자동차, 명품 옷 등 자신의 가치를 규정하는 수단을 물질에 뒀던 만큼,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한 삶으로 추앙받았다. 즉,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주의 사회와 동의어이며, 어떤 소비를 하느냐가 자신을 보여주는 도구라는 뜻이다.

그러나 과열된 소비 양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한정된 자원을 모두가 누릴 수 없다는 것, 소비는 자신의 본질을 바꿀 수 없기에 공허함만 남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이제 소박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것’에 끌리고 있다.

괴리감보단 대리만족을 원해요
드라마 「모래시계」부터 「파리의 연인」까지,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사로잡은 것은 평범한 여주인공이 부유한 남자를 만나는, ‘신데렐라 서사’였다. 물질적 풍요를 갈망하는 소비주의 세태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는 이 문화는 더 이상 매력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청년들은 백마 탄 왕자나 판타지 속 세상을 바라지 않으며,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스스로 가치를 찾길 바라기 때문이다.  

소박함을 추구하는 현상은 지난 해에 방영된 드라마 「혼술남녀」의 인기로 증명됐다. 5.8%의 시청률로 시청자를 사로잡은 이 드라마는 노량진 공시생의 애환을 담아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학생들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또한 「청춘시대」는 쉐어하우스에 사는 평범한 대학생들의 일상을 담아내, 20대들의 공감을 얻었다. 김소연<정책대 행정학과 17> 양은 “「청춘시대」, 「혼술남녀」 같은 드라마는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다루기 때문에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며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는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는 것 같아, 요즘은 판타지, 혹은 그 유사한 콘텐츠보다 현실적인 이야기가 더 공감이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20대들이 평범한 것에 눈을 돌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이러한 현상을 “저성장기에 20대들이 누리는 일종의 작은 사치”라며 “저렴하고 소소한 것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이 현상의 기본적인 정신을 “자신의 취향을 당당하게 말하는 ‘취향독립선언’”이라고 설명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주목받는 자리에 설 수 없고, 화려한 삶만 좇으며 살 수 없다. 하지만 평범한 주인공이 나오는 서사, 개개인의 소소한 개성을 긍정하는 문화는 우리가 비록 세상의 들러리여도 그 자리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평범한들 어떤가. 화려하지 않은들 어떤가. 자기 나름의 가치를 찾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도움: 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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