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그들의 불편함은 지속돼
채식주의자, 그들의 불편함은 지속돼
  • 한대신문
  • 승인 2017.09.25
  • 호수 1463
  •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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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웰빙 열풍과 미니멀리즘 열풍이 불면서 채식을 추구하는 대학생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원복<한국채식연합> 대표는 “과거에는 40~50대 중장년층에서 건강을 이유로 채식에 관심을 가졌다면 지금은 건강이나 다이어트, 동물보호나 환경보호에 관심을 두는 20~30대가 채식주의자의 주축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학 내에서도 채식 소모임이 여럿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채식주의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에 비해 우리 사회의 인식과 대학 내 인프라는 부족한 실정이다. 

채식주의자, 우리도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채식주의자들은 다양한 동기로 채식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성숙치 못한 상황이다. 5년 간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 생활을 한 김보미<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사과정 9기> 양은 “저도 채식을 잘 모르지만 채식주의자라는 사실 하나로 채식에 대해 완벽히 알 것이라 생각하는지. 채식에 대한 모든 걸 물어본다”라며 “특히 채식을 잘 모르는 사람이 채소를 섭취하면 단백질이 부족하거나 건강에 나빠지는 등 잘못된 사실을 말할 때 불편하다”고 전했다. 12년째 채식을 해 온 한예슬<송원대 금융과 13> 양은 2년 전, 휴학하고 잠시 직장생활하면서 채식주의자로서 겪었던 사연을 전했다. 직장 회식 자리에 참여했었던 한 양은 “회식 자리를 가면 제가 채식을 하니까 회식을 편히 못 하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괜히 저 때문에 식당을 골라서 갔고 그러다 보니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고 토로했다.
  
2014년 2월 우리 학교에서 탄생한 채식연합동아리 ‘베지유니스’의 창립배경 또한 이러한 이유에서 시작됐다. 동아리를 만든 신가영<인문대 철학과 11> 양은 “ 외국에서 몇 년 유학할 때 느꼈던 점은 한국인이 유독 채식에 대해 잘 모르고 채식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가득하다”며 “채식이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닌 일종의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동아리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초창기 우리 학교 학생 4명으로 시작한 동아리는 현재 한양대 학생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교의 학생들이 가입해 채식 모임을 하고 채식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베지유니스’ 회원들에게 채식하는 데 있어서 가장 불편한 점에 대해 묻자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회식 자리를 꼽았다. 실제로 서동아<베지유니스> 회원은 “회식 자리에서는 제가 메뉴를 결정할 없는 경우가 많고 고르더라도 채식 메뉴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즐기고 싶은 마음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만 먹을 것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때 서글프다”고 말했다. ‘베지유니스’ 회원이기도 한 김보미 양은 “고기가 주메뉴인 술자리에서 안주가 없어서 빈속에 땅콩과 술만 먹어야 한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러한 채식주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재의 원인으로 ‘동조화’ 문화가 지적된다. 전상진<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의 경우 생활 양식에 대한 개개인의 선택이나 자유에 대한 관용보다 타인과 비슷해야 한다는 ‘동조화’에 대한 압력이 어느 사회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며 “20~30대 젊은 층에서도 여전히 동조화의 압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어 채식주의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가 먹을 곳은 어디에?
채식주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뿐만 아니라 대학 내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인프라 또한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교내 학생식당에서 ‘채식주의 식단’을 제공하는 대학교는 전국 424개 대학 가운데 세 곳(서울대학교,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삼육대학교)에 불과해 채식주의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우리 학교 또한 중식 기준으로 열세 곳의 학생식당에서 48가지 메뉴로 운영되고 있지만,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단은 단 한 개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하루 중 재충전의 기회로 삼아야 할 식사 시간이 채식주의자들에게는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한 양은 점심시간만 되면 그냥 굶거나 카페에서 대충 허기를 채우기 일쑤다. 왜냐하면 그녀는 고기·생선은 물론 달걀과 유제품까지 먹지 않는 비건 채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학생식당은 물론 학교 주변에도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불편하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뿐만 아니라, 익명을 요구한 A씨는 “학생식당에 먹을 것이 없어서 도시락을 챙겨 다닌다”며 “한번은 교수님이랑 식사를 했는데 메뉴를 고르지 못해 교수님께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고 웃지 못할 사연을 전했다.
 
10년간 채식주의자로 살아온 최훈<강원대 철학과> 교수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학생식당에 채식 메뉴를 한두 가지 넣는 것도 방법”이라며 대학 내 인프라 구축에 대한 방안을 제시했다. 최 교수는 “학생식당에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선택권이 생기는 것이고, 비(非) 채식주의자와 채식주의자가 한 공간에서 식사할 수 있다”면서 “수요가 적다는 이유로 공간을 당장 만드는 것이 어렵다면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디서나 채식이 가능한 외국
채식 인구가 총인구의 2%로 한국과 비슷한 수치를 가진 프랑스의 경우 대학 내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제도가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다. 프랑스의 대학 학생식당은 교육부 산하 학생지원 공공기관인 크루스(Crous)에서 운영하는데, 이 단체에서 채식주의 식단을 만드는 등 제도적으로 채식주의자들을 보호하고 있다. 실제로 엑스 마르세유 아비뇽(Aix-Marseille Avignon) 지역의 크루스(Crous) 홈페이지에는 “지역 내 모든 대학의 학생식당에서 채식주의 식단을 운영하고 있다”고 명시돼 있다.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식단으로 채소·전분으로 만든 주메뉴, 유제품(선택사항)과 2개의 식품 등이 나온다. 가격도 3.25유로(약 4500원)로 다른 식단들과 비교했을 때 저렴하다.
  
채식주의자 비율이 총인구의 9%를 차지하는 독일에서는 학생식당뿐만 아니라 일반 식당에서도 채식주의자용 식단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학교 교환학생으로 온 지 1개월 된 독일 학생 플로리안<경영대 경영학과 교환학생> 군은 “저의 모교 다름슈타트대학교(Hochschule Darmstadt)에서는 학생식당마다 꼭 한 가지의 채식식단이 있다”며 “채식을 하는 외국인 교환학생들도 분명 있을 것인데 채식주의 식단이 없으면 이들이 불편함을 겪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식당이나 마트에서 판매하는 먹을거리에는 채식주의 아이콘이 필수적으로 표시돼 있어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배려를 엿볼 수 있다.

이탈리아·오스트리아·영국·캐나다 등 채식주의 인구 비율이 높은 국가들 역시 대학 내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대부분의 학생식당에서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채식주의 전용 식단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 에든버러대학교(University of Edinburgh)와 더럼대학교(Durham University)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비건 채식주의자인 안백린<너티비건즈> 대표는 “제가 다녔던 대학교에는 언제나 채식메뉴가 있고, 학교 주변 모든 곳에서 두유, 아몬드 우유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 등 채식인들을 위한 시설들이 잘 구비돼있었다”며 “모든 비건 메뉴에는 v표시가 돼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안 대표는 “일반 마트에서는 비건 아이스크림, 비건 초콜릿, 비건 마요 등 이색적인 식품들도 있다”고 전했다.

채식주의자들이 행복할 수 있는 그날까지
이원복 대표는 “채식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그리고 곱지 않은 시선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며 “채식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채식을 하기에 편리한 사회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외국에 비해 한국에서는 채식하려고 해도 채식을 할 수 있는 여건이나 환경이 미비해 채식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촉구했다.
 
익명을 요구한 B씨는 “채식이 왜 필요하며, 왜 좋은가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많이 접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알지 못하면 그만큼 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에 빠져들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 채식식당에도 가서 친구나 지인들과 식사를 해보고 스스로 채식요리를 만들다 보면 채식에 대한 막연한 어려움을 떨칠 수 있다”며 비(非) 채식주의자의 참여를 권했다. 또한, “채식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에 젊은 청년들이 시도해보고 도전해볼 만한 매력적인 대상”이라며 “채식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대학 내 인프라 또한 차근차근 구축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끝으로, 20대 채식연합동아리 ‘베지유니스’ 회원들은 인터뷰를 통해 “하나의 ‘소수자’인 채식주의자들을 너그럽고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간절히 촉구했다.
  
모든 사람들은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인 인권 앞에서 어떠한 요인으로라도 차별을 받아서도, 해서도 안된다. 채식주의자 또한 마찬가지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인식 개선과 대학 내 인프라 구축으로 인해 채식주의자와 비(非) 채식주의자 모두의 가치관이 존중받으며 공존하는 사회가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도움: 이원복<한국채식연합> 대표
전상진<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최훈<강원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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