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코끼리여, 말뚝을 뽑아라
[취재일기] 코끼리여, 말뚝을 뽑아라
  • 윤혜진 기자
  • 승인 2017.09.25
  • 호수 1463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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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음식점에서 ‘가위 좀 가져다주세요’라고 직원에게 부탁하는 것, 배달 음식 주문을 하는 것도 어려운 사람이었다. 심지어는 단체 채팅방에서 한마디 말하기도 힘들었다. 현재도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네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워낙에 낯가리고 소심한 부류이다. 아니, 그렇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한대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그보다 더한 용기를 낼 일이 많았다. 인터뷰 요청을 위해 전화를 거는 것은 기본이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질문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기획안을 쓰기 위해 처음으로 학교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 때는 다이얼 버튼을 누르는 것도 수십 번을 망설였다. 그러면서 머릿속에서는 상대방이 전화를 받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수없이 되뇌다가도 막상 전화가 연결되면 입에서는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어순이 엉망인 말들만 나왔다. 한 번은 사진을 구하기 위해 백남학술정보관 행정팀에 전화를 걸어야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다른 기자에게 대신 연락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다. 원하는 사진은 구할 수 있었지만, 자기 일 하나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뒤로 ‘왜 나는 전화 하나도 제대로 못 거는가’라는 고민하게 됐다. 그러다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한심한 결론을 냈다. 그렇게 생각하니 위안은 됐지만,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전화를 거는 것도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도 어려운 사람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상태로는 한대신문 활동을 이어나가기가 힘들었다. 기자는 사람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언젠가 수업 중에 들은 ‘코끼리 말뚝 이론’이 문뜩 떠올랐다. 이론의 내용은 이렇다. 쇠말뚝에 어린 코끼리 다리를 묶어 놓으면 어린 코끼리는 말뚝 주변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른 코끼리가 돼 말뚝을 뽑을 힘이 있더라도 코끼리는 말뚝 주변을 여전히 벗어날 수 없다. 말뚝을 뽑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이 얘기를 들을 때만 하더라도 동물이라 ‘단순’하다는 ‘단순’한 생각만 들었었다. 그런데 스스로가 코끼리와 같이 단순한 동물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자는 여태까지 자신에 대해 “낯가리는 사람, 소심한 사람”이라고 규정해 왔다. 한번 이렇게 틀을 만들어놓으니 깨기가 어려웠다. 하나의 코끼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실제로 ‘거리의 리포터’라는 코너를 위해 대학가를 돌아다니며 길을 가는 학우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이 취재는 필자에게 말뚝을 빼낼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아직 말뚝을 완전히 뽑아내지는 못했다. 사람이 일순간에 확 달라질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기회 말이다. 필자 외에도 자신이 만든 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로 생각한다. 아직도 자신의 발에 묶인 줄 끝의 말뚝이 절대 뽑히지 않을 것 같은가? 여전히 말뚝에 묶여있는 코끼리여, 자신이 만든 말뚝을 뽑고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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