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제게 관심 보이지 마세요
[장산곶매] 제게 관심 보이지 마세요
  • 한소연 편집국장
  • 승인 2017.09.10
  • 호수 1462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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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소연<편집국장>
▲ 한소연<편집국장>


친절도 과유불급이다. 

옷을 많이 사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필요할 때면 강남역 지하상가에 간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그 조차도 가지 않는데, 그 이유는 자주 갔던 상점들의 직원 때문이다. 

줄곧 가던 옷가게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매점 직원은 필자에게 딱 붙어서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언니, 언니는 이 티셔츠가 잘 어울리겠다. 한 번 대봐” 한다. 옷의 색상을 고민하고 있으면 또, “언니, 언니 얼굴엔 검정색이 더 잘 받아. 검정색 해.” 그러면 드는 생각이 있다. ‘딱 봐도 내가 딸 뻘은 돼 보이는데 왜 자꾸 언니래, 언제 봤다고 반말이고?’ 혹은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딱 붙어있으니 부담스러워서 옷도 제대로 못 고르겠네’하는 정도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그런 식의 애정어린(?) 관심을 보이더니 결제할 때는, “이건 할인 상품이라 교환이나 환불 안 돼요”란다. 물론 온갖 아부에 들떠 산 옷은 아니지만 뭔가 농락당한 거 같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매점을 나오면 진이고 맥이고 다 빠져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래서 오프라인 매장 보다는 온라인 매장에서 옷을 구매하는 경우가 더 많다.
친절 마케팅은 옷 가게, 화장품 가게, 신발 가게 등 전반에 마치 영업 바이블처럼 퍼져있다. 직원은 초면의 손님들에게 어제 본 친구처럼, 반말로 말을 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런 일은 택시 안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거기(목적지) 왜 가는 거예요?’, ‘몇 살이에요?’부터 시작해서 정치적 성향을 묻거나 설교를 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택시를 타게 될 경우에도 자동적으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래를 듣거나 일부러 통화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3월과 6월, 필자도 탐나는 서비스가 일본에서 등장했다. 바로 ‘침묵 택시’와 ‘침묵 바구니’이다. ‘침묵 택시’는 교토의 한 택시회사가 운영하는 서비스이다. 손님이 볼 수 있는 앞좌석 뒤편에, “운전기사가 말거는 것을 삼가여 조용한 차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필요하면 편하게 말을 걸어 달라”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 이 택시의 기사들은 손님이 타고 내릴 때, 혹은 목적지를 묻거나 비용을 지불할 때를 제외하고는 손님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해당 택시 회사 관계자는 “택시는 승객을 위한 것이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한 승객이 있다고 생각해서 도입하게 됐다”고 전한다.

그리고 지난 6월에는 일본의 의류업체 매장이 ‘말 걸 필요 없음’이라고 적힌 파란색 장바구니를 매장 내에 배치해서 화제가 됐다. ‘침묵 (장)바구니’이다. 손님이 매장 안에서 ‘말 걸 필요 없음’이라고 적힌 이 파란 가방을 들고 있다면 직원은 먼저 말을 걸 수 없다. 이는 직원이 제품을 권하는 것에 구매 압박을 느끼고 불편해하는 손님들을 배려하는 취지의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한 화장품 업체가 ‘혼자 볼게요’라고 적힌 바구니와 ‘도움이 필요해요’라고 적힌 바구니를 양분해 도움이 필요하다는 바구니를 든 고객에게만 집중 응대를 했다. 이런 노골적인 침묵 서비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손님이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직원이 다가가지 않도록 하는 매점도 등장했다. 

이에 이러한 서비스를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서로 배려해주면 될 일이지 굳이 그래야 하나?’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친절 서비스 마케팅이 도가 지나치기 때문에 그 색을 옅게 한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콘셉트의 마케팅 전략이 유명한 한국이 아닌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손님과 직원은 ‘갑과 을’로 둔갑하고, 이런 세태가 과해져 개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상태로까지 번진 것이다. 이미 그로 인한 갈등은 대부분 알다시피 너무 많이 일어났는데, 특히 2년 전에는 인천의 한 백화점에서 한 손님이 매장 직원들을 무릎 꿇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침묵 서비스가 ‘손님이 왕’이기에 직원 혹은 택시기사가 손님의 비위를 맞춰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외려 이 제도는 서로에게 좋은 제도다. 하는 사람은 구태여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알랑거리지 않아도 되고, 받는 사람은 불편한 관심을 받지 않으니 편하기 때문이다. 즉 각자의 영역을 존중받는 것이다. 이것은 냉정한 개인주의의 단면이 아니다. 오히려 매장 안에서 서로의 영역을 지키면서, 동등한 인격적 관계로 존재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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