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R, 귀를 통해 느끼는 오감
ASMR, 귀를 통해 느끼는 오감
  • 김지하 기자
  • 승인 2017.09.10
  • 호수 1462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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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에 편안하게 누워 주시고요. 몸에 힘을 빼고 편안하게…….” 

동영상 속의 사람은 줄곧 ‘편안함’을 유도하는 대사를 속삭인다. 그리고 약 40분의 재생 시간 동안 그저 손톱으로 유리잔의 표면을 두드리고, 종이 포장지를 바스락거리고, 마이크 앞에서 소곤거린다. 그런데도 이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가 340만 회에 육박한다. 

ASMR, 생소함이 주는 편안함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직역하면 자율 감각 쾌락 반응이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과 같은 오감을 자극해 느끼는 심리적 안정과 쾌감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유튜브에서 주로 접하는 영상 형식의 ASMR은 청각을 자극하는 경우가 보편적인데, 이는 ‘팅글(tingle)’을 느끼는 과정을 반복한다. 팅글은 ‘기분 좋은 소름’이라는 뜻의 ASMR 용어이다. 주로 두피, 등 그리고 양쪽 귀와 같이 신체 뒤쪽에 분포하는 신경 계통이 이런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ASMR 제작자는 청각적 팅글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반 마이크 대신 소리의 거리감이나 입체감을 선명히 녹음해 주는 *더미 헤드 마이크를 사용해 영상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ASMR은 그 자체의 이름, 팅글과 같은 용어 그리고 사용하는 장비까지 생소한 것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현재 유튜브에 ‘한국어 ASMR’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그 결과만 약 80만 건 이상이다. 또한 국내 ASMR 유튜브 채널 중 약 70만 명으로,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ASMR PPOMO’ 채널의 경우 누적 조회수 1억 뷰를 돌파해 ASMR 수요의 증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ASMR의 수요가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가장 큰 이유는 ASMR이 불면증 완화와 숙면에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황세진<의대 의학과> 교수는 “잠이 오지 않을 때 빗소리 같은 *백색소음을 듣는 것과 비슷한 경우”라고 말한다. 특히 ASMR은 수면의 단계 중 첫 번째인 ‘유도(induce)’ 단계에서의 영향력이 크다. 이어폰을 통한 청취를 권장하는 것도 수면 유도 효과를 증대시키기 때문인데, 황 교수는 이를 “이어폰을 꽂고 들을 경우 다른 생활 소음이 차단돼서 청취자가 ASMR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ASMR을 듣는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고,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아 의학적 효과를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다른 이유는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준다는 점이다. 지난 2013년부터 유튜브에서 ‘Miniyu ASMR’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유민정 씨는 “ASMR이 외롭고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다”며 “그래서 ASMR 영상을 밤에 잠을 자기 전에 듣거나 편안함을 얻기 위해 시청하는 분들이 많다”고 언급했다. 즉, 마음에 안정을 주는 ASMR의 소리가 지친 사람들의 삶에 작은 위로를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 씨는 “ASMR 영상의 내용이나 컨셉도 편안함에 초점을 맞춰 제작하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수면 문제의 해결사 ASMR?
ASMR 영상 청취가 수면 문제 해소의 만병통치약이 되진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ASMR은 유도 단계에서 영향을 주는 ‘수면 보조 장치’이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불면증 환자들의 문제는 빨리 잠들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잠에서 일찍 깨어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수면의 질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단시간에 수면 상태로 접어드는 것 외에도 수면의 패턴과 총 수면시간 등을 복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즉, ASMR로 수면 유도 단계에서 효과를 보더라도, 그 후의 단계에서는 영향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ASMR이 불면증 치료법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또한 ASMR 영상의 재생시간은 평균 4시간 정도로 길어 수면 유도 단계가 끝난 후에 계속 재생되는 점도 문제다. 황 교수는 “청취자들은 보통 수면 유도 단계가 지난 후에도 계속 ASMR 영상의 소리를 듣고 잠을 자기 때문에 다른 수면 주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은 보통 수면 유도 단계가 지나면 외부 소리에 대한 반응이 약해진다. 그러나 이어폰을 통해 ASMR 소리를 수면 시간 내내 듣게 된다면 오히려 다른 수면 단계에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황 교수는 “수면 유도 단계 후 잠이 들었을 때 ASMR 소리가 꺼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전했다.

더 나은 ASMR 청취를 위해서
ASMR의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ASMR 청취의 가장 큰 목적은 심리적 안정이다. 하지만 처음 수면 문제 해결을 위해 ASMR을 들을 때 개인의 심리 상태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시작한다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유리잔이나 종이 상자를 두드리는 ‘태핑(tapping)’ 소리와 종이 포장지나 비닐을 구기는 소리 등의 반복적인 ASMR 소리가 오히려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불면증 치료법으로 맹신하거나 호평에 이끌려 무조건 듣는 태도는 수면의 방해요소로 작용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고려한 효과적인 ASMR 청취로 지친 일상 속의 휴식을 경험하길 바란다.

도움: 황세진<의대 의학과> 교수


*더미 헤드 마이크: 모조 머리로 만들어진 마이크로 녹음 시 사람의 청각 특성을 반영해 실감 음향의 체험이 가능하게 한다.
*백색소음: 귀에 쉽게 익숙해져 오히려 거슬리는 주변 소음을 덮어주는 역할을 하는 소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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