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야 사는 사회
웃어야 사는 사회
  • 윤혜진 기자
  • 승인 2017.09.02
  • 호수 1461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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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 프로불편러에 관한 글을 본 적이 있는가? 흔히 ‘공시생인 것 같은데 매일 커피를 사오는 건 사치가 아닐까요? 같은 수험생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져서요’라는 글과 비슷한 내용일 것이다. 커피를 사 마시는 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자유로운 행위임에도 터무니 없는 이유로 문제를 삼아 화제가 됐던 글이다. 이처럼 ‘프로불편러’란 사회 통념상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것에 대해 과대해석해 문제 삼는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하지만 타당한 이유의 불만도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며, ‘프로불편러’라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려고 단어를 오용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
‘프로불편러’라는 단어를 오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A씨는 “속해 있는 단체 메시지 방에서 성희롱적 발언을 하는 사람을 보고 지적을 한 적이 있지만, 모든 남자가 다 그런 건데 왜 민감하게 구느냐며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A씨는 이와 비슷한 상황에 잘못됐다고 지적하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껴도 웃어 넘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집단이든 개인이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한다”며 “나만 옳고, 남은 그르다는 생각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라 말했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에 이러한 사고방식이 만연한 배경으로 ‘경쟁의 역사’를 꼽았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경쟁이 극심했다는 것이다. 경쟁의 양상은 과거의 붕당정치부터 현재 입시 경쟁, 취업 경쟁까지 이어졌다. 또한, 현재 우리 사회는 가족 구성원의 수가 줄어 공동체적 사고방식보다 자기 중심적 사고 방식이 팽배해졌다. 이는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못하는 세태로 이어졌다. 그래서 ‘프로불편러’라는 단어를 오용해 SNS와 같은 온라인 소통 공간에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지 않은 의견을 폄하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를 “온라인 소통 과정에서 자신에게 거슬리거나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한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을 일반화시켜 매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이런 세태를 바꾸기 위해서 “변화를 만들려 한다면 함께 고민하고 많은 연구와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세상을 바꾸는 시작
변화는 문제 제기로부터 시작한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생각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사회가 그렇다. 그 당시에는 버스에 백인용과 흑인용 좌석이 구분돼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이를 법으로 정해 놓기까지 했다. 신분제 또한 당연한 관행이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는 이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당연했던 관행을 불편하다고 느끼고 변화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신분을 가지고 있거나, 피부색으로 인해 차별받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문제제기는 '고심'과 '조심 뒤에
문제 제기가 우리에게 변화를 안겨주었지만 불편함을 토로하는 것이 모두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프로불편러 일기」 작가 위근우<웹 매거진 아이즈> 기자 역시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문제에 민감한 사람들이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모든 불편함이 용인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 불편함은 내가 잘못 생각해서 (또는 편견으로) 일어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하며 “불편함을 대할 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이 온당한 문제 제기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 말을 꺼내야 한다. 자기검열을 하지 않고 제기한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불평을 하는 진정한 ‘프로불편러’가 될 뿐이다.

불편함을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라며
과거, 알제리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였던 프란츠 파농은 ‘왜 피부색으로 차별당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졌고, 이는 흑인 인권 운동가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영국의 작가이자 여권 신장론자인 울스턴크래프트 역시 ‘딸들은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지적해 여성 운동의 효시가 됐다.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예술·문화계 내 성폭행 사건 같은 커다란 사건들을 마주한 이후 예전보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세상의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뭐든 웃어넘기는 사회 분위기보다 자유롭게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도움: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참고 문헌: 김경민, 세상을 바꾼 사람들. 을유문화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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