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그래도 괜찮아
[교수칼럼] 그래도 괜찮아
  • 류근<공대 기계공학과> 교수
  • 승인 2017.05.15
  • 호수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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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근<공대 기계공학과> 교수
대부분의 남자들이 끊임없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군대 이야기다. 98년 8월에 입대하여 “짧은” 26개월의 현역생활을 하였던 나는, 같이 군생활을 했던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서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미국에서 유학할 때의 이야기이다. 내 유학 생활을 돌이켜 보면, 눈물과 실패, 좌절과 낙망으로 얼룩진 자아를 부여잡고 하루하루 버텨온 날들이었다. 그러나, 짧은 시간으로는 그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없는, 그리고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계속되는 좌절과 시험 실패의 경험들을, 이제 나는 어렵지 않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 그때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가 그렇게도 부끄러웠는데도 말이다.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거나,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돌이켜보니,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의 한가운데 한참 동안 서 있어 본 사람만이 무엇이 정말 소중한지 안다. 내일의 나를 가늠할 수 없는 그 하루하루, 나 자신의 밑바닥이 그대로 드러난 그 처절함이 삶에 대한 철학과 나를 바꾸었다. 그것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나의 일상과 삶에 대한 태도를 모두 바꾸었다.
그렇게 상처를 가진 사람만이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결과와 관계없이, 내가 계획하고 이루고자 하였던 일을 위해 노력하였던 그 시간이야말로 진짜 나를 찾아가는 기간이었다. 내가 꿈꾸던 그것이 오늘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좌절로 돌아오더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던 시간들이야말로 진짜 나의 꿈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정한 삶에 대한 지혜는 죽음을 보는 순간 생기는 것과 같이, 결과에 집착하게 되면 무엇이 정말 소중한지 보지 못한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삶과의 비교를 바탕으로 한 “결과에 대한 집착”은 내가 꼭 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평소에 나를 그리도 얽어매고 내 열정과 시간을 바치는 문제들보다, 내가 소홀하게 여기고 살아가는 것들이 더욱 중요한 것이 많다는 것은, 남겨진 선택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낀 절실한 사람은 깨닫게 된다.
예전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개그 유행어가 있었다. 그렇지 않다. 사실 세상이 그렇든 아니든 별 상관없다. 후배이자 제자인 한양대 학생들에게, 특히 자신의 꿈을 향한 도전의 과정에서 수고하고 애쓰는 너희들에게, 그리고 이미 충분히 지친 너희들에게,  “그래도 괜찮아. 얘들아, 지금, 너희들 충분히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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