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언론이 언론답기 위해서
[장산곶매] 언론이 언론답기 위해서
  • 한소연 편집국장
  • 승인 2017.05.14
  • 호수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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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소연<편집국장>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17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180개국 중  63위로 기록됐다. 노무현 정부 때는 31위였으나 이명박 정부 때 차츰 떨어지더니, 박근혜 정부에 와서는 70위를 기록했다. 63위란 순위도 그나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보도된 후 상승한 것이다. 사건이 터진 후, 대중들 역시 권력에 편승해 공정성을 지키지 못했던 언론사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인 언론의 자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지난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한 기자가 후보들에게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는 문제에 대해 발의하기도 했을 정도다.
필자도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곤 했다. 그 고민은 언론은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해 정의 실현을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생각으로 점철됐다. 그러나 그것은 다양한 사건을 취재하며 변하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이 가장 즐겨 찾는 페이스북 페이지는 아무래도 ‘대신 전해드립니다’와 ‘대나무 숲’이다. 이들은 익명이 보장되기 때문에 제보를 통한 자유로운 담론이 가능하다. 이곳에서 고발성 제보가 빛을 발한다.
학보사 기자들도 익명에 기댄, 페이스북 페이지 상의 제보들이 기사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시 관련 사항에 대한 취재를 시작한다. 그러나 문제는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한다. 사건의 피해자에게 취재 요청을 하면 그 사건 때문에 이미 정신적 피해를 입어, 또다시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거절을 하는 것이다. 학교라는 소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한 선의에 응해주지 않는 것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정의’라는 절대 가치의 실현을 방해한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그릇된 것을 세상에 알려 바로잡고자 했던 노력이 외려 개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우리의 행동이 누군가에겐 그릇된 욕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혼란스러웠다. 옳은 행동이라고만 믿었던 것이 옳지 않은 행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언론, 그리고 한대신문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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