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향한 순수한 열정, 현재의 나를 만들다
게임을 향한 순수한 열정, 현재의 나를 만들다
  • 김도렬 기자
  • 승인 2017.04.29
  • 호수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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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갤럭시 프로게임단 사무국장


왕십리의 PC방에서, 과제를 하기 위해 산 노트북으로, ‘포켓몬 GO’에서 ‘오버워치’까지, 우리는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수많은 종류의 게임을 즐긴다. 이렇듯 청년 문화를 대표하는 게임은 지난 이십여 년간 유저들의 열정과 관심을 바탕으로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e스포츠’ 문화로 발전했다.십수 년 간 선수, 감독 그리고 구단 사무국의 수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가을<삼성 갤럭시 프로게임단> 사무국장(이하 김 국장)은 말 그대로 한국 e스포츠계의 산증인이다. 사무국장이 된 후, 게임 할 시간이 줄어서 아쉽다는 말을 할 정도로 그녀는 게임 그 자체를 사랑한다.

등록금을 위해 시작한 프로게이머
1990년대 후반은 한국 게임 문화의 태동기였다. 처음으로 피시방이라는 곳이 생기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게임이 출시됐다. 김 국장 역시 학창시절, 게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오락실 가는 것을 즐겼고, 어렸을 때 유행했던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대항해시대’ 같은 PC 게임 역시 많이 했죠.”
어릴 때부터 게임에 익숙했던 김 국장에게 1998년 출시 직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타크래프트’는 그녀의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취미로 시작했던 게임에 재능을 보인 그녀는 주변의 추천을 받아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재미로 대회에 나갔는데 생각보다 성적이 잘 나왔어요. 적성에도 맞고 상금도 받다 보니, ‘등록금이라도 벌자’는 마음으로 휴학하고 프로게이머를 시작하게 됐죠.” 이후 본격적으로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한 김 국장은 여성부 리그를 휩쓸며, 한국 최고의 여성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로 활약했다.

매 순간이 소중했던 십 년의 감독 생활
프로게이머 은퇴 후 미뤘던 학교생활을 하던 김 국장은 본교 산업공학과 4학년 재학 중, ‘삼성 갤럭시’의 전신인 ‘삼성전자 칸’으로부터 감독 자리를 제안받았다. 하지만 당시 e스포츠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미래가 매우 불투명했고, 게임을 직업으로 삼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역시 미흡했다. 이로 인해 그녀는 많은 고민을 했지만, 아버지의 조언으로 이내 해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께서 젊을 때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선수 생활을 하며 느끼고 배웠던 것을 감독 자리에서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감독이란 자리는 그리 녹록지 않았다. 지도자는 자신뿐 아니라 여러 선수를 하나의 ‘팀’으로 이끌어야 하는 자리임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 국장은 초기의 시행착오를 거름 삼아, 십 년 간 안정적으로 팀을 이끌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한 팀을 지도하는 것은 모든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봐도 보기 드문 경우다. “제 역량이 뛰어나서 팀을 오랫동안 이끌었던 것은 아니라고 봐요. 다만, 운 좋게도 감독 생활 중 큰 실수가 없었던 것이 그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지도자 생활이었지만, 그녀는 그 순간순간이 모두 행복했다고 말했다. “우승의 기쁨, 강등의 아픔도 겪었어요. 하지만 선수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가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느껴요.”

▲ 김 국장의 감독 시절 모습이다. 그녀는 ‘가을이형’, ‘제가을공명’과 같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친근하고 실력 있는 지도자로 명성이 높았다.

작별을 고했던 e스포츠 현장, 사무국장으로 돌아오다
팀을 맡은 지 열 번째 해였던 2013년, 김 국장은 팬들의 예상과 달리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당시 그녀가 사퇴할 만한 명분이 딱히 없었기에 궁금증은 더 커졌다. “가장 큰 이유는 휴식이에요. 십 년 간 쉴 새 없이 달리다 보니, 몸이 많이 상했더라고요.”
감독직 사퇴 후, 평범한 주부의 삶을 즐기던 김 국장은 2015년 친정팀으로부터 사무국장 자리를 제의받았다. 그녀는 감독직을 제안받았을 때보다 더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사무국장은 선수단만이 아닌, 구단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정말 자신이 없었어요. 제 능력 이상의 일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배우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어요.”
선수단 계약, 팀 방향 설정 같은 굵직한 업무부터 경기 지원, 팬서비스 같은 세심한 부분까지 구단의 모든 업무는 김 국장의 손을 거친다. e스포츠에 잔뼈가 굵은 그녀에게도 상당히 힘든 업무다. 그렇지만 김 국장은 선수와 감독 시절 자신이 몸소 느꼈던 아쉬운 점을 사무국장이 된 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감독 시절 선수단 지원에 있어 구단에게 아쉬웠던 적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코치들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해요.”

누구나 어디서든 함께 하는 e스포츠의 매력
지난달 20일,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는 e스포츠를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도박, 알코올, 약물과 함께 4대 중독으로 분류됐던 ‘게임’이 하나의 ‘스포츠’로 인정받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김 국장은 e스포츠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 정식 종목 지정에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이 야구를 직접 하지 않더라도 야구장에 가서 경기를 즐기듯, e스포츠 역시 선수들의 플레이를 즐기는 관람 문화가 조성돼 있어요”라며 “관련 규정이나 인프라, 선수의 프로의식 역시 꾸준히 개선되는 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e스포츠는 그 시작이 이십 년이 채 안 됐음에도, 상당히 많은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김 국장은 가장 큰 발전 요인으로 ‘접근성’을 꼽았다. “과거보다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게임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있어요. 또한, 인터넷이 연결돼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경기가 시작될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 작년 10월 삼성 갤럭시가 준우승을 차지한 ‘2016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의 결승전 모습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이 대회의 결승전에는 약 만 오천 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초기 e스포츠 대회는 컴퓨터 두 대가 설치된 탁구대를 경기장으로, 조촐하게 마련한 몇십 개의 간이 의자를 관중석으로 해 진행됐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웬만한 규모의 축구장도 게임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채울 수 있으며, 프로게이머들 역시 기존 프로스포츠 선수 못지않은 연봉을 받는다. 이렇듯 e스포츠는 그 규모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김 국장을 비롯한 게임 업계 종사자들의 열정과 청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중 평소 좋아하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 누구보다 즐겁게 대화에 임하는 김 국장을 보며, e스포츠를 향한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 ‘자기객관화’는 김 국장이 평소 일을 진행하기 전 스스로에게 되뇌는 말이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봄으로써 자신의 문제점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 노은지 수습기자 yoeun619@hanyang.ac.kr
사진 출처: 연합뉴스, 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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