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부족이 만든 ERICA캠퍼스 금주 논란
소통 부족이 만든 ERICA캠퍼스 금주 논란
  • 윤성환 기자
  • 승인 2017.04.08
  • 호수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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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문화 만들기’ 취지는 좋지만, 소통이 우선돼야…

▲지난해 ERICA캠퍼스에서 열린 봄축제 주점의 모습이다. 학생들은 이와 같은 축제문화를 오랫동안 즐겨왔다.

교내 축제 금주 논란의 시작
학교가 ‘좋은 대학문화 만들기’라는 프로젝트를 시행하려는 이유는 지난 몇 년 동안 교내에서 일어난 사건·사고 때문이다. 우선 지난 2015년 축제의 ‘오원춘 세트’ 사건과 지난해 축제에서 외부인과 재학생 간의 폭행사건이 있다. 기폭제가 된 것은 올해 초 발생한 해양융합학과 군기 사건과 셔틀버스 기사 폭행사건이다. 이처럼 연달아 음주 관련 사건이 발생하고 악습이 드러나자 학교 차원에서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음주와 관련해 지난달 10일 교양 ‘기계비평’ 수업에서 부총장은 “이번 축제 때 술을 없애겠다”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 논란이 커진 이유는 ERICA 총학생회 ‘새봄’(이하 총학)을 비롯해 어떤 학생기구와도 논의를 거치지 않은 내용이라는 점과 부총장의 발언이 학생문화에 대한 학교의 학생 권리 침해로 볼 여지가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금주’ 발언 직후, 총학 측은 부총장과 면담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당시 부총장과 총학 사이에서 금주와 관련된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학생처 “좋은 대학문화 만들기의 일환”
부총장의 금주 발언은 ‘좋은 대학문화 만들기’ 프로젝트의 세부 사항과 관련이 있다. 우선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계기는 지난 2월 논란이 일었던 ‘해양융합공학과’ 사건이다. 이 사건이 다수의 언론사에 퍼지자 학교는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각 단과대 학장 및 처장으로 구성된 TFT(Task Force Team)를 소집했다. 이 TFT는 학교의 명예 실추와 관련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됐다. ‘좋은 대학문화 만들기’는 해당 TFT 구성 후 만들어졌다.
이재복<학생처> 처장은 “‘좋은 대학문화’라는 가치를 내건 이유는 과도한 음주, 부조리로 인해 발생한 안 좋은 대학문화를 바꿔보자는 취지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 처장은 “안 좋은 대학문화의 원인 중 하나가 술이라고 생각했다”며 “축제 때 꼭 술을 마셔야 할까라는 생각에서 프로젝트를 계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덧붙여 ‘기계비평’ 수업에 있었던 부총장의 발언도 좋은 대학문화를 만들기 위한 논의 중 하나인데 다소 와전됐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학생 측 “금주가 해답 아니야”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와 같은 학교의 결정에 불만을 표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학생 A씨는 “오원춘 세트 사건, 그리고 군기 사건은 실질적으로 음주와는 관련이 없는 논란이었다”며 “해당 논란으로 금주라는 결론을 내린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위 사건 뿐만 아니라 셔틀버스 기사 폭행사건의 경우도 교외에서 음주한 학생이 교내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이처럼 학내 부조리의 근본적이 원인이 교내 음주가 아니지만 이를 금지하는 행위는 오히려 단순히 ‘보여주기’식의 문제 해결 방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ERICA 총학 측도 학내 부조리를 인식하고 이를 자체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힘썼다. 이전 총학은 지난 2015년 오원춘 사건 이후 주점 운영 규정을 강화했고 동일한 사건이 더는 발생하지 않았다. 현재 총학 역시 지금까지 발생했던 사건들의 재발을 막기 위해 △경호업체 섭외 △3일 중 하루는 맥주 마시기 △올바른 음주 프로그램 등과 같은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처럼 학생 사회에서 자구책을 마련하는 만큼 교내 행사에 학교가 강제로 음주를 배제하는 것만이 해답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논란에 간담회 개최
본지 1455호 1면에서 이 처장은 이 프로젝트가 일방적인 통보라는 비판에 “현 조치에 대한 논의가 이전 총학생회부터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ERICA 총학생회장 김태윤<국문대 중국학과 11> 군은 “해당 논의는 축제 문화에 대한 개선안이었을 뿐, 금주에 대한 논의는 포함되지 않았었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서로 간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지난 5일, ERICA캠퍼스에서 교내 금주와 비폭력의 내용을 담은 ‘좋은 대학문화 만들기’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는 학생처를 비롯해 각 단과대 학장, 총학생회 대표자 등이 자리하도록 요청됐다. 하지만 총학은 “이 회의 역시 총학 측과의 소통이 부재한 상태로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진행했다”고 전했다.
김 군에 따르면, 학교는 회의 구성원과 이 회의의 안건 및 날짜조차 총학 측과 협의하지 않았다. 총학은 이 회의가 열리는 것에 대해 학교로부터 일방적으로 통보받았으며, ‘좋은 대학문화 만들기’에 대한 세부 안건 역시 학교가 일방적으로 구상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김 군은 “좋은 대학문화 만들기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그 내용을 구성하는 것은 함께 해야 하는 것”이라며 “간담회 성격의 회의라면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학생처 및 각 단과대 학장은 김 군의 의견에 동의했고 회의 역시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의견을 주고받는 간담회 성격으로 대체됐다. 강창욱<공학대> 학장은 “학생들이 뽑은 학생대표를 대등한 관계로 존중해야 한다”며 “분명 좋은 취지의 프로젝트지만 학생들과의 의사소통이 다소 부족했던 점이 아쉬웠다”고 밝혔다.

금주 논란보다 중요한 것
‘좋은 대학문화 만들기’ 프로젝트의 취지처럼 바람직한 학생문화를 위해서 학교는 노력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일을 진행함에 있어 교직원, 교수, 학생 세 주체와의 소통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적합한 절차를 통해 세 주체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고, 그 의견을 수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취지의 프로젝트라 할지라도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편, ‘좋은 대학문화 만들기’에 대한 간담회가 오는 12일에 다시 열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의에서 총학은 이번 축제와 관련해 지금껏 있었던 사건·사고들을 예방하기 위한 자구책을 제안하고 이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을 계획이다. 강 학장은 “이번 간담회가 한쪽의 일방적인 요구가 아닌 학교, 교수, 학생이 대화를 통해 캠퍼스의 좋은 문화를 만들어내자는 생각으로 힘을 합치는 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사진 출처: http://m.blog.naver.com/mistake92/220719463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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