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있기에 소녀상은 외롭지 않다
그들이 있기에 소녀상은 외롭지 않다
  • 김도렬 기자
  • 승인 2017.04.08
  • 호수 1456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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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평화의 소녀상 철거 반대 농성 현장을 찾다
▲ 종로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의 모습이다.

2015년 12월 한·일 양국은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체결했다. 국민은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 극우 세력, 그리고 피해자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협상을 진행한 한국 정부에 대해 분노했다. 특히 합의 내용에 의해, 피해자들을 기리고자 제작된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 위기에 놓이자 대학생을 필두로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나서 농성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461일이 흐른 지난 3일, 종로에 위치한 소녀상을 찾았다. 소수의 학생만이 지키고 있던 농성장은 마치 빌딩 숲 사이의 외딴 섬 같았다.

▲ 학생들을 추위로부터 지켜주는 천막과 허름한 파라솔은 농성장의 열악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종로의 외딴 섬, 소녀상 농성장
소녀상 옆, 천막과 파라솔로 간신히 움막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농성장은 고층 빌딩이 즐비한 주변 풍경과 매우 대조됐다. 기자는 2평 남짓의 비좁은 농성장에서 ‘소녀상 지킴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소연<한남대 회학과> 양은 취재진이 찾아오는 상황이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기자에게 먹을 것을 건네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위안부 합의가 체결된 날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대전에서 올라와 꾸준히 농성장을 찾는다고 했다. “오히려 지금 농성장은 정말 상황이 좋아졌어요. 200일쯤 전까지는 비닐 천막도 없었고, 전기장판도 없던 때에는 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해 침낭에 손난로를 마구 넣어서 자기도 했었죠.”

비록 허름한 숙소지만, 조그만 장식품부터 전기장판까지 없는 게 없었다. 대부분의 생필품은 주변을 지나는 시민들의 후원 물품이다. “많은 시민 분께서 저희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오셔서 농성에 필요한 물건들을 후원해주시는 분도 있고, 어떤 남성분께서는 ‘하루에 한 끼씩이라도 사 먹으라’며 개인 카드를 주시기도 했어요.” 많은 시민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킴이들은 지금까지 농성을 지속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지켜야 하잖아요?
이하진<한국외대 국제통상학과> 양은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중 위안부 합의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정말 화가 났어요. 피해 할머니들과 여러 시민이 몇십 년간 노력한 것을 하루 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든 것이잖아요. 특히 사람들이 한창 뉴스에 관심이 없을 연말에 날치기 식으로 협상을 진행한 것이 너무 괘씸했어요.” 이하진 양은 4학년임에도 올해 봄부터 농성을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마음으로만 응원하는 것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녀상이 철거되면 정말 죄책감이 심할 것 같았어요.” 이하진 양의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은 그녀에게 응원을 하는 한편 ‘왜 하필 네가 하냐?’는 걱정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주변의 우려에 대해 ‘그래도 누군가는 지켜야 하잖아요?’라는 씁쓸한 답변을 한다고 말했다.


 

▲ 주변 건설현장에 쓰일 통풍기를 옮기는 중장비의 모습이다. 중장비와 소녀상 사이의 거리는 단 3m에 불과하다.

힘든 농성 이어가는 지킴이들
열악한 농성장만큼이나 안전 문제도 심각하다. 소녀상 주변에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으며, 농성장 앞 도로변은 임시 주차장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광화문이라는 공간적 특성상 주변에 경찰이 다수 배치돼 있지만, 지킴이들은 그들에게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경찰이 그들을 보호하지 않고 ‘방관’한다는 것이다. ‘망치 테러’ 사건은 이런 경찰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준 사건이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30대 여성이 소녀상을 망치로 내려찍고 지킴이들을 위협했으나 불과 5초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경찰들은 이를 저지하지 않았다. “결국은 지킴이들이 112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어요. 참으로 웃지 못할 해프닝인 거죠.”

차들의 매연과 소음, 경찰의 방관만큼이나 지킴이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그녀들이 농성을 위해 삶의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슬퍼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제가 이렇게 농성을 하는 와중에, 다른 또래들은 벌써 취업에 성공해 월급을 받으니까요.” 실제로 열악한 환경과 각자의 생업으로 인해 소녀상 농성에 참여하는 인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초기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이 농성에 참여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참가자들이 줄어들었죠. 물론 다른 방식의 투쟁을 위해 그만두는 분들도 있지만, 농성 자체가 매우 힘들어서 그만두시는 분들도 많아요.”

이소연 양 역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끝까지 농성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약속’ 때문이다. “처음에 농성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소녀상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약속을 했거든요. 더군다나 피해자 할머니들은 20여 년째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계신데 이 정도로 불평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 소녀상 주위를 지나가는 시민들의 모습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이 모습이 익숙한 듯자연스럽게 걸어가고 있고, 일부 시민들은 신기한 듯 농성장을 쳐다보고 있다.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는 시민들
소녀상 지킴이들 외에도, 남녀노소를 불문한 다양한 시민들이 소녀상을 찾는다. 아들과 함께 소녀상을 방문한 정찬영<서울시 관악구, 53> 씨는 약 3달 전부터 소녀상을 주기적으로 찾아온다고 한다. 그는 소녀상 철거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적절한 반성 및 사과의 목소리가 없었다”며 “특히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협상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매우 이해할 수 없고 부당하다”고 단호히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또한, 이날 소녀상을 처음 방문했다는 익명을 요구한 A씨 역시 이번 협상에 대해 “정식적인 사과 없이 독단적으로 진행한 날치기 협상”이라 평했다.

국가의 역할을 왜 그들이 대신하고 있는가?
국가는 기본적으로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 헌법에 명시된 사항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역사의 희생양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에 반하는 행동을 일삼았다. 만약 정부가 그 의무를 지켰다면, 학생들은 자신들의 귀중한 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천막을 치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가 소녀상을 방문한 다음 날인 4일,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분인 이순덕 할머니께서 별세했다. 이제 생존자 수는 38명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으며 위안부 문제는 소수의 학생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정권에서는 이를 빠른 시일 내에 제대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 ‘소녀상 지킴이’ 이하진 양과 이소연 양이다. 그들은 매주 월요일 24시간 동안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

사진 김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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