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한 발짝 더, 꿈을 향해 뛰다
남들보다 한 발짝 더, 꿈을 향해 뛰다
  • 김도렬 기자
  • 승인 2017.03.25
  • 호수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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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배구부 세터 / 김지승 군

배구 경기는 강스파이크를 날리는 공격수들에게 이목이 집중된다. 하지만 뒤에서 묵묵히 공을 잡아내고 건네주는 ‘세터’들이 없다면 그들의 스파이크 역시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점에 있어서 세터는 ‘배구계의 살림꾼’이라 불린다. 김지승<예체대 스포츠산업학과 16> 군(이하 김 군)은 김호철과 최태웅 등, 한양대의 ‘명품 세터 라인’을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고 있다. 선수들이 한창 구슬땀을 흘리며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올림픽 체육관에서 그를 만나 보았다.

키가 작아 시작한 세터
김 군은 어릴 때부터 배구와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의 아버지가 배구 선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건 아버지가 아닌 하종화<진주 동명고> 감독의 권유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와 같이 배구를 했던 하 감독님이 저에게 배구를 권하셨어요. 배구에 대해 딱히 거부감이 없었던 저는 그때부터 운동을 시작하게 됐죠.” 그렇게 배구에 입문하게 된 그는 중학교에 진학하며 포지션 변경이라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초등학교 때는 공격수로 활약했어요. 하지만 중학교 수준에선 공격수로 뛰기엔 또래 선수들보다 키가 작았어요. 자연스럽게 높이에 대한 부담이 적은 세터로 포지션을 변경하게 됐죠.”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갑작스레 시도한 포지션 변경은 대성공이었다. 그는 세터로 변신한 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그가 주목받기 시작했을 때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이었다. “종별 선수권 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상당히 중요한 대회였는데, 8강까지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4강부터 다시 기량을 회복했고, 결국 우승을 차지했어요. 세터로서 상도 받으며 저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나를 꿈꾸게 해준 배구
고교 최고의 세터로 큰 관심을 받았던 김 군이지만, 그는 대학 진학 전까지는 선수가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배구 선수의 꿈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에요. 배구는 단지 입시 수단일 뿐이었죠. 선수보다는 평범하게 체육학과에 진학해 경기 지도 및 관리 쪽을 공부하려고 했어요."
그런 그는 한양대에 입학하며 프로 선수의 꿈을 조금씩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여러 팀이 저를 원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한양대도 그 런 팀들 중 하나였죠. 솔직히 말해 유명한 학교라 관심을 많이 받을 것 같아서 우리 학교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좋은 선수들을 배출한 한양대에 입학해 훈련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선수에 대한 꿈도 생겼죠.” 많은 기대를 받으며 입학한 김 군은 1학년임에도 주전 세터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그는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경기를 출전하는 것이라 저에게 많은 관심이 쏟아져 부담스러웠어요. 어느 때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죠.”

▲ “부담감과 부상으로 인해 아쉬움이 많은 시즌이었어요.” 김 군은 지난 시즌 자신의 활약상을 10점 만점에 5점으로 평가했다.

태극마크의 무게감을 실감하다
한양대에서 꾸준한 활약 펼치던 김 군은 작년 7월, U-20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다.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유니폼을 받는 순간 김 군은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고 한다. “기분이 색달랐어요. 기쁘기도 했지만, 태극마크를 보니 국가를 대표한다는 마음에 부담스럽기도 했죠. 그래도 배구선수로서 잘하고 싶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국가대표라는 책임감, 그리고 해외 선수와의 경쟁은 김 군을 한층 더 성장시켰다. 일본과의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며 3위로 대회를 마감한 그는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기도 했다. “가장 분했던 경기는 이란전이에요. 이란이 전통적으로 강팀이다 보니, 경기 전부터 긴장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래서 우리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죠. 반대로 좋았던 경기는 일본전이죠. 상대가 일본인데다가, 2세트를 먼저 내준 후 극적으로 역전한 경기라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동메달만큼 그가 잊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타향에서 흩날렸던 태극기다. “대만이라는 타국에서 경기가 열렸고 청소년 대표팀 경기였음에도, 한국 팬 분들이 경기장을 찾아와 응원해주고 태극기를 흔들어주셨어요. 그 모습을 보며 국가대표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어요.” 태극마크의 소중함, 그것이 그가 반복되는 고된 훈련을 즐길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작년 7월에 열린 아시아 U-20 남자배구 선수권 대회 8강전에서 서브를 넣고 있는 김 군의 모습이다.

누구보다 부지런한 선수가 목표
“코트 안, 그 누구보다 한 발짝 더 뛰고 부지런해야 하는 포지션이에요.” 김 군은 세터를 이와 같이 설명했다. 세터는 시속 130km의 스파이크를 안정적으로 받아내는 동시에, 공격하기 적절한 토스를 해야 한다. 그들이 부지런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경기 전체가 흔들린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목표는 남들보다 더 부지런한 선수가 되는 것이다. “많이 움직이고 동료들이 공격하기 쉽게 공을 올려준다는 말을 듣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렇다면 김 군이 가장 닮고 싶은 선수는 누구일까? 그는 단번에 최태웅<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감독을 꼽았다. “키가 크지 않음에도, 뛰어난 볼 배분 능력과 특유의 부지런한 플레이를 통해 한국 최고의 세터로 활약하셨어요. 그런 감독님의 경기 영상을 보며 배운 것이 많아요. 특히 투병 생활을 하셨음에도 무사히 복귀한 모습은 상당히 인상 깊었죠.”
끝이 안 보이는 훈련, 합숙 생활 그리고 항상 그를 괴롭혔던 크고 작은 부상.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낸 원동력으로, 김 군은 그를 믿어주는 부모님과 여자친구, 그리고 팬들을 꼽았다. 특히 김 군은 항상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사실 대학 리그가 그렇게 큰 무대가 아닌데도, 항상 경기장을 찾아와 저희를 응원해주시는 학생들에게 감사해요. 앞으로도 계속 응원해주시면 저를 비롯한 배구부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김 군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느낀 그의 가장 큰 장점은 겸손함이었다. 어릴 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그였지만, 김 군에게는 어떠한 자만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그의 목표인 ‘부지런한 선수’가 되기 위해 김 군은 현재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훈련을 위해 바로 코트로 돌아가는 김 군의 뒷 모습을 보며, 기자는 그가 목표에 도달하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 평소에 그가 강조하는 ‘부지런함’과 한양대의 ‘한양’을 합친 ‘부지런 한양’은 김 군의 선수 생활을 가장 잘 표현한 재치 있는 답변이었다.

사진 김도엽 기자 j52590@hanyang.ac.kr
사진 출처: 발리볼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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