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우리는 잊혀질 수 있을까요?
디지털 시대, 우리는 잊혀질 수 있을까요?
  • 박다함 기자
  • 승인 2017.03.25
  • 호수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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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잊혀질 권리'도입 논쟁을 중점으로

대학생 A 군은 최근, N 포털 블로그에서 자기 개인정보와 사진이 올라온 걸 보고 깜짝 놀랐다. G 검색사이트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자 과거 SNS 사진과 글, 심지어 헤어진 여자 친구와의 사진까지 나타났기 때문이다. A 군은 자신에 관한 글과 사진을 지우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 답답할 뿐이었다.
최근 들어 각종 개인정보가 인터넷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노출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개인 정보가 인터넷에서 검색되고 평생의 주홍글씨로 남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세계 각국에서는 개인정보에 대한 ‘잊혀질 권리’가 논의 중이다. 잊혀질 권리가 무엇이고, 우리나라에서 실현될 수 있는 권리인지, 이를 두고 어떤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잊혀질 권리의 개념, 뜨거운 감자?
잊혀질 권리는 2012년 EU 개인정보보호규정안 제17조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정확하게는 ‘잊힐 권리’ (The Right to be forgotten)가 맞지만 번역에 의해 ‘잊혀질’이라는 표현으로 굳어졌다. 잊혀질 권리에 대한 정확한 개념은 국가 및 법체계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다. 이 중 EU 개인정보규정안에 따르면 잊혀질 권리를 ‘정보주체가 온라인상 자신과 관련된 모든 정보에 대한 삭제 및 확산방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정의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온라인상에 있는 ‘자기 정보를 지울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잊혀질 권리는 온라인상에서의 개인의 사생활 및 인격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유용하지만 단점 및 한계 또한 있다. 먼저, 자칫하면 개인의 표현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잊혀질 권리는 온라인에서의 정보 유통을 제한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와 갈등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둘째, 개인의 알 권리와 충돌할 수 있다. 잊혀질 권리 때문에 개인은 공익적 가치가 큰 정보를 알지 못할 수 있다. 일례로 범죄인 및 정치인이 자신의 잘못을 지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떠올리면 된다.
셋째, 잊혀질 권리의 실현은 비용과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한계가 있다. 정보의 유통 및 생산 속도는 삭제 속도보다 월등히 빠르다. 또한 해외 사이트에 올라간 정보는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아 현실적으로 삭제하기 어렵다. 송명빈<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번 뿌려진 정보를 회수하는 데 드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라며 “따라서 모바일 분산 네트워크 공간에서 소멸시효를 정하지 않고 올린 글이나, 게시한 정보를 완전하게 삭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잊혀질 권리’ 제도화는 가능할까?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연장선’ 측면의 헌법적 토대는 있지만 구체적인 기본권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개인정보 관련 권리를 잘 보호하고 있는 우리나라 제도 특성상, 잊혀질 권리 논의가 필요하다고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상의 인터넷심의제도 및 임시조치 △언론중재법을 통해 잊혀질 권리를 간접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우선, 개인정보호법에는 자신의 개인정보를 열람한 정보주체가 개인정보처리자(이하 처리자)에게 개인정보의 정정 또는 삭제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만약 삭제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처리자는 손해배상지급, 과태료 부과 및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정보통신망법은 개인의 명예훼손이나 사생활을 침해하는 정보가 유통될 경우, 피해자의 요청 시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이하 제공자)가 이를 삭제하는 등의 임시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한다. 그중 ‘인터넷심의제도’는 인터넷에서 특정 개인의 명예훼손정보가 유통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시정요구를 하거나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해당 정보의 취급을 거부 및 정지 등의 명령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개인의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의 권리가 침해됐을 때, 제공자에게 삭제 등의 임시조치를 요청하면 제공자는 바로 게시물을 내리고 삭제해야 한다. 이는 최대 30일까지 보장된다.
마지막으로, 언론중재법은 언론보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보장함과 동시에 이를 통해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 언론 중재 및 피해 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구제 절차를 규정한다. 반론보도청구권, 정정보도청구권, 추후보도청구권 등이 대표적이다.

현행 제도의 한계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잊혀질 권리를 실현할 수 있다면, 왜 계속해서 잊혀질 권리가 필요하다고 얘기되는 걸까? 잊혀질 권리를 시행하는 데 있어 위의 제도만으론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개인정보보호법상의 개인정보란 살아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 특정 개인 정보에 대한 보호만을 대상으로 한다. 예를 들면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개인 식별이 가능한 영상 등이다. 또한 보호 대상이 되는 개인정보가 무엇인지와 관련해 인터넷 신문기사에 담겨있는 개인정보, 또는 인터넷 검색에서 나타나는 개인정보(예를 들어 온라인에서 떠도는 과거 사진 등)는 이 법의 적용대상이 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다음으로, 정보통신망법으로는 언론보도 내용에 대해서 임시조치를 적용할 수 없다. 또한 권리침해(이를테면,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이 인정되지 않는 한, 정보주체 자신이 해당 정보에 대해 정보처리사업자에게 바로 삭제를 요구할 수 없다. 쉽게 말해 단순히 온라인에 자기 정보가 뜬다는 이유만으론 삭제 요구가 받아들여질 수 없다. 또한 삭제 요청 시 그 판단권은 제공자에게 부여하고 있고, 타인에 의한 권리 침해와 그 사실을 본인이 직접 입증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마지막으로 언론중재위원회(이하 중재위)를 통한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실현에 있어 개인은 보도가 된지 6개월 이내, 보도사실을 인지한 지 3개월 이내에 중재위에 신청해야 한다. 때문에 기간을 넘기면 신청이 불가능하다. 또한 언론사 측에서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소송으로 이어져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한계점 때문에 최근에는 ‘삭제청구권’과 방통위의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과 같이 잊혀질 권리의 취지를 살린 법안을 통과시키자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잊혀질 권리, 신중하게 도입하자
지금까지 잊혀질 권리가 무엇이고, 어떤 쟁점을 가지는지 살펴봤다.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에서 개인정보 피해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잊혀질 권리의 도입은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다만, 언론의 자유 침해, 비용과 기술적 한계 및 현행 제도와 중복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잊혀질 권리의 도입은 신중해야 할 것이다. 지성우<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도 도입에 따른 다양한 문제점과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법적인 강제력을 부여해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당장의 도입보다는 현 제도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개정을 통해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고 문헌: 황창근. (2016).
잊혀질 권리의 국내 적용과
법제화의 한계. 홍익법학, 17권 1호.
김세진. (2014). 개인정보에 관한
‘잊혀질 권리’의 개념: 그 법적 근거와 한계.
LAW & TECHNOLOGTY,
제 10권 제2호: pp18~32.
조민상, 윤종민. (2012).
스마트시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소고: 잊혀질 권리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Perrsonal Information Protection in Smart Era. 과학기술과 법. Vol 3. No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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