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선배가 악마로 변한 이유
그날 밤, 선배가 악마로 변한 이유
  • 한대신문
  • 승인 2017.03.18
  • 호수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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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학내 부조리 사건과 도덕적 감수성

“저는 **대 소속 신입생입니다. 작년에도 어느 과가 장기자랑 때문에 뉴스에 나왔던 것 같은데 왜 아직도 폐지되지 않은 거죠? 단속해주실 수 없을까요?”
위의 글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이하 OT)를 앞둔 지난달 21일, 페이스북 페이지 ‘한양대학교 대나무숲’에 게시된 글을 각색한 것이다. 올해도 우리 학교는 군기 논란을 피해 가지 못했다. OT를 전후해 해당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위와 비슷한 내용의 게시글이 다수 제보됐다. 본지는 작년부터 매 학기 학내 부조리를 기사로 다뤄 왔지만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발전하는 제도, 제자리 걷는 교내 문화
지난 몇 년간 학내 부조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지속됐고, 이를 막기 위한 법과 제도 정비도 상당 부분 이뤄졌다. 교육부는 2014년부터 ‘대학생 집단연수 운영 안전확보 매뉴얼’을 각 대학에 배포하고 있다. 해당 매뉴얼은 고압적 행위, 성범죄 등에 대한 주의 및 예방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작년엔 일부 대학 OT에서 일어난 성추행 등의 논란에 대한 진상 조사를 실시했으며 지난달에는 전국 대학의 행사 담당 학생들을 초청해 학생 안전 확보를 위한 협조 사항을 당부하는 긴급 설명회를 개최했다.
학내 부조리 근절을 위한 제도 정비는 학교 차원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올해 초 서울캠퍼스에서는 OT에 앞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인권 교육을 실시했다. 총학생회 또한 “학교 내 부조리 근절을 위해 상시 운영 기구를 설치할 예정”이라며 개선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내 부조리 제보는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가 도덕적 감수성을 잃어버린 이유
그렇다면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육심리학자 제임스 레스트는 학생들의 ‘도덕적 감수성’ 부족을 원인으로 제시했다. 도덕적 감수성이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이나 결과를 미칠지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다. 레스트에 따르면 도덕적 행동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우선 도덕적 문제가 발생했음을 지각할 수 있어야 하며 타인이 얼마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후속 연구에서 간단한 도덕적 문제일지라도 그것을 인지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이 수반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민감도 또한 개인에 따라 현저하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개인차는 결국 도덕적 행동을 방해하는 요인들로 작용한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캠퍼스의 모 학과 학생회장은 “일부 학생들이 자신의 행동이 후배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해 OT 운영이 어려웠다”며 “학생회 구성원들이 방마다 돌아다니며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도덕적 감수성이 부족한 이유엔 사회적 원인도 있다. 사회학자들은 근대 사회에서는 도덕적 문제에 대한 공통된 의견을 만들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사회학에서는 대학을 포함한 근대 사회의 사회집단 대부분을 이익집단이라고 정의한다. 이익집단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결합한 집단이다. 이 같은 구성 탓에 이익집단에선 가치의 문제에 합의점을 도출하기 어렵다. “무엇이 옳은가?”라는 물음 앞에 개개인이 속했던 공동체마다 서로 다른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구성원들의 종교, 문화, 교육적 배경이 다양해질수록 심각한 갈등이 나타난다. 가정이나 중·고등학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개인들이 모인 대학에서 보편적인 인권을 도출해내는 과정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 구성원들은 도덕적 합의점을 도출하기보다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법과 제도는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을 넘어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칙이다. 이는 누구나 지켜야 하는 가장 좁은 범위의 도덕만 명확히 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결과 공감과 연민을 강조하는 도덕적 정서는 불확실한 것, 더 나아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어떻게 사라진 도덕적 감수성을 되살릴까?
그렇다면 대학생의 도덕적 감수성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대학 사회가 학생들에게 도덕 발달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 대안으로 교육심리학자 로런스 콜버그가 제시한 ‘딜레마 토론법’이 있다. ‘딜레마 토론법’이란, 쟁점이 되는 도덕적 문제 상황을 제시하고 토론을 통해 감수성 함양을 유도하는 교육법이다. 콜버스는 실험을 통해 학생들이 토론 과정에서 다양한 도덕적 관점을 학습하고 그로부터 합의를 도출하는 방법을 훈련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김진남<한국상담학회> 전문상담가는 “경쟁적인 교육 환경을 거친 한국 청년들은 전인적 인격발달을 형성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대학의 자율성 안에서 타인에 대한 존중과 다름의 가치를 새롭게 형성하는 다양한 소통의 장을 만들고 경험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경험을 통해 법과 제도를 다듬는 것만으론 학내 부조리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 없는 제도 개선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간헐적 인간관계를 극복하고 고통을 나누는 감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학생과 학교 차원의 실천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에겐 서로의 아픔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도움: 김진남 한국상담학회 전문상담가
참고: 도서 지그만트 바우만 외 1명 저, 「도덕적 불감증」, 책읽는 수요일
제임스 레스트 저, 「도덕발달 이론과 연구」,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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