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누가 행하나
악은 누가 행하나
  • 김성재 기자
  • 승인 2017.03.18
  • 호수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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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 아렌트 (1906-1975)독일 태생의 유대인철학사상가 및 작가로 활동

 

다음 질문에 답해보자. 악은 누가 행하는 것일까?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처럼 기질적인 이유 때문일까?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인들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했을까?

평범한 사람이 악을 행한다고?
나치는 유대인이 열등한 인종이라 믿는 자신들의 신념을 ‘홀로코스트’라는 행위로 실현했다.
홀로코스트는 나치 정권과 협력자들이 6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이고 관료적인 범죄 행위였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치의 전쟁범죄자들은 재판에 회부되며 그 죄값을 치뤘다. 이 중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에서 6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 실무 책임자로 유대인 축출‧학살 전문가였다. 전범재판에 나온 사람 대부분은 나치즘 광신도들이었고, 사람들은 아이히만 역시 광신도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나는 상부의 명령을 이행했을 뿐입니다”라고 자신을 당당히 변호했다. 재판에서의 그의 모습은 사람들의 예상과 전혀 달리 평범하고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는 사실에 놀랐다. 정신과 전문의들 역시 ‘지극히 정상’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현장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한나 아렌트 역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아이히만을 설명하기 위해 ‘악의 평범성과 사유의 불능’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악의 평범성’은 쉽게 말해 사람들이 당연시하고 일상적으로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평범한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을 행하는 걸까.
아렌트는 ‘사유의 불능성’을 그 이유로 제시했다. 그녀는 사유하지 않은 행동이 악한 결과를 불러왔다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죄가 있다고 주장했다.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사례들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이 정립된 이후 ,이를 증명하기 위한 여러 실험들이 진행됐다. 대표적인 예로 ‘밀그램의 복종실험’과 ‘스탠포드 감옥실험’이 있다. ‘밀그램의 복종실험’은 전쟁 범죄의 행위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해보기 위해 시작된 실험이다. 이 실험에서 피실험자는 교사의 역할을, 실험자는 가짜 전기충격기를 단 학생의 역할을 맡았다. 피실험자에게는 전기충격기가 가짜라는 것을 숨기고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충격을 가하게 했다. 전기충격은 15볼트에서 450볼트까지 올릴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65%의 참가자들이 피실험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렸다. 실험 전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수치였다.
‘스탠포드 감옥실험’은 피실험자들을 각각 간수와 수감자로 역할을 나눈 후, 피실험자들이 간수와 수감자의 권력 관계 속에서 제대로  된 판단과 이성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알아봤던 실험이다. 그러나 간수들은 연구자들의 예상보다 더 가학적인 행위를 가했고 수감자들은 아주 수동적인 자세로 자신의 역할에 완전히 흡수돼 권력에 복종했다. 결국 실험의 비윤리성 문제로 인해 14일로 예정돼 있었던 실험은 6일 만에 끝나게 된다.
두 실험은 모두 개인이 상황, 즉 시스템 속에서 선과 악을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 봤다. 연구 시작 전 실험자들은 개인의 도덕성이 상황과 무관하게 발현되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평범했던 개인은 모두 상황 속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고 악행을 저질렀다. 즉, 개인이 전체주의와 독재 체제 아래서 사유불능의 상태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악을 행하고 있다는 아렌트의 주장이 다시금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아렌트의 개념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악행에도 적용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2014년 국민을 충격에 몰아넣은 ‘윤 일병 사건’ 의 가해자들이 한 행동이 바로 ‘악의 평범성’의 예다. 2015년 국가 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한 ‘윤 일병 사건’ 가해자들의 법정 진술 보고서에 따르면, 군대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개인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폭력이 따라온다는 것을 학습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공간 내의 폭력은 사회화된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 오랜 시간 노출될 시, 폭력에 대한 저항 의지마저 박탈당하는 체념의 단계에 도달한다.  또 개인의 분별력과 사유능력이 상실돼 부조리에 저항할 생각을 잃게 된다. 이런 과정이 ‘윤 일병’을 죽음으로 몬 ‘평범한 악’을 만든 것이라는 분석이다.
개인이 군대 사회 속에서 얼마나 사유 불능이 되는지는 가해자였던 이 상병의 법정 진술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이 병장이 ‘휴가 가기 전에 아이들 사람 만들어 놓아라’라고 말해서 폭행을 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깊은 사유가 필요하다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 ‘사유의 불능성’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악을 저지르는 사람은 정해져있지 않다는 것과 어떤 일을 할 때는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항상 사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든 선과 악의 선택의 기로에 선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을 택할 수 있다. 우리가 조금 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신이 하는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한다면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http://www.huffingtonpost.kr
참고 자료 : 도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아렌트는 아이히만에 속았다  (한겨레 21 1046호) (2015.02.27)
 국가인권위원회. ‘윤일병사건’ 가해자들의 법정진술을 바탕으로 분석한 군대 내 가혹행위 발생구조- ‘악의 평범성’ 관점을 중심으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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