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 김채연 기자
  • 승인 2017.03.18
  • 호수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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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헌법재판소에서 피어난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서 새로운 역사가 쓰였다. 헌재가 재판관 8인의 전원 일치 의견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했다. 헌재는 당초 발표한 시간인 오전 11시에 맞춰 ‘2016헌나1’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을 열었다. 대통령의 탄핵 여부가 결정되는 만큼 전 국민의 관심이 헌재에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이정미<헌법재판소> 전 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사건의 진행경과를 말하며 탄핵사건에 대한 선고를 시작했다. 이 전 권한대행은 지난 수차례 이뤄졌던 변론에 대한 언급뿐만 아니라 선고에 임하는 심정도 밝혀 그 어느 때보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재판이 이뤄졌다.

계속됐던 ‘그러나’에 결과 예측 어려워
헌재가 정리한 탄핵사유 유형은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세월호 사건에 관한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 성실 의무 위반 △최서원(최순실)에 대한 국정개입 허용과 권한남용으로 크게 4가지다. 이 중 헌재는 한 가지 이유만을 탄핵 사유로 인정하며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한다고 밝혔다.
공무원 임면권 남용에 대해서 헌재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노 국장과 진 과장이 문책성 인사를 당한 것과 김기춘<대통령 비서실장>이 6명의 공무원으로부터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은 인정했다. 하지만 노 국장과 진 과장이 최 씨의 사익 추구에 방해가 됐다는 이유로 좌천된 것이 아니며, 김 실장의 지시 역시 그 이유가 불분명하다고 판단했다.
언론의 자유 침해 건에 관해서도 헌재의 판단 양상은 비슷했다. 국회는 당초 조한규<세계일보> 전 사장의 해임이 정윤회 문건 보도 후에 이뤄졌기에 박 전 대통령의 압력 행사가 있었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헌재는 세계일보에 누가 압력을 행사했는지 불분명하다며 이를 탄핵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가장 관심이 집중됐던 세월호에 관해서도 헌재는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없으나,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탄핵심판절차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했다. 즉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지만, 그 개념이 상대적이고 추상적이기에 탄핵 사유로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와 ‘탄핵 사유로 인정하지 않는다’가 반복되자, 많은 사람이 기각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에 떨기도 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특히 세월호 건이 탄핵 사유로 인정되지 않자 광화문 광장에서 선고를 보던 일부 시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화면에서 등을 돌렸다.

재판관 만장일치로 탄핵되다
하지만 최 씨의 국정개입 허용과 권한남용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상황은 달라졌다. 헌재는 앞선 3가지 유형은 모두 탄핵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최 씨의 국정개입과 대통령 권한남용에 있어선 명백히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행위라고 결론 내렸다. 또한 박 전 대통령의 불성실한 조사 태도를 직접적으로 언급해 헌법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밝히며 만장일치로 파면을 선고했다.
이 전 권한대행은 주문 선고 후에 재판관들의 보충의견에 대해 언급했다. 김이수 재판관과 이진성 재판관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이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진 않았으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와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하며 “다만 이러한 이유가 파면 사유로 구성되기 어렵다”고 보충의견을 전했다. 또한 안창호 재판관은 해당 심판이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닌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이며,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해 파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헌재는 2004년 당시 이뤄졌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이후, 헌정 사상 두 번째 탄핵심판을 마쳤다. ‘2016헌나1’은 이제 역사 속에 남게 됐고, 18대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청와대를 떠났다.
헌재는 탄핵심판 당시, “어떠한 경우에도 ‘법치주의’가 훼손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헌재의 결정을 두고 일부 박 전 대통령 지지층에선 불복의 입장을 표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 헌법을 수호하고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선 어느 쪽을 지지하든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 촛불이 밝힌 대한민국의 봄

지난 해 10월 24일, JTBC가 최순실 태블릿 PC를 단독보도 하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표면 위로 떠올랐다. 많은 사람이 이에 분노하며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처음 촛불집회가 열렸던 지난해 10월 29일엔 서울에만 2만 명이 모였지만, 계속해서 밝혀지는 부정부패에 집회 참여자 수는 증가해 232만 명에 달하기도 했다. 경찰과 몸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기존 시위의 모습과는 달리 20여 차례 진행됐던 촛불집회는 말 그대로 ‘평화집회’였다. 또한 남녀노소가 모두 어울리며 가족 단위 참여자 수가 눈에 띄었던 집회의 모습에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외신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지난 11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0차 촛불집회에참여한 시민들의 모습이다.

세대를 아우른 촛불
고령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정치·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세대갈등이 우리사회의 큰 문제로 떠올랐다. 일부 젊은이들은 노인을 ‘틀딱충’이라고 비하했고, 노인 역시 젊은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불만만 갖는다고 비난했다. 특히나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세대갈등은 더욱 심화됐다.
하지만 촛불 속에서 세대갈등은 볼 수 없었다. 지팡이를 짚고 나온 노인부터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나온 어린 아이까지 모두 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다.

그들이 원했던 민주주의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바람은 한 가지였다. ‘민주주의를 지켜내자’는 것이다. 그들이 주장했던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었다. 때문에 탄핵심판 당일, 광화문 광장에는 모인 많은 시민은 이 전 권한대행이 주문을 선고함과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한 시민이 “이겼다”고 외치자 다른 시민들이 그와 같이 외치기도 했다.
지난 11일, 마지막 촛불집회에 참가한 정소현<서울시 관악구 22> 씨는 “탄핵이 돼 정말 기쁘다”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한층 더 성숙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광화문은 축제 분위기였다. 해가 지자, 광장 하늘엔 시민들이 터뜨린 폭죽으로 진풍경이 벌어졌다. 또한 ‘광화문 촛불집회 승리 축하 콘서트’에선 가수 전인권 등이 참여해 시민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승리에 기뻐하기도 잠시, 시민들은 광장에서 또 다른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시작으로 정치계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내자는 것이다. 집회에 참가한 박병훈<서울시 은평구 63> 씨는 탄핵이 됐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이제 시작이기에 다가오는 조기 대선에선 많은 국민이 투표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박 씨의 말처럼 탄핵과 함께 찾아온 조기 대선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관심이 크다. 더불어 19대 대선일이 5월 9일로 확정됐고, 이에 대선 주자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 대선주자 이재명 시장이 시민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덧 봄이 찾아왔다. 촛불이 함께한 지난겨울은 추웠지만 따듯했다. 긴 촛불의 행렬 끝에 찾아온 봄이기에 어느 때보다 값지고 소중하다. 소중한 대한민국의 봄이 계속 이어질지에 대한 답은 국민에게 달려있다.

글·사진 김채연 기자 codus0219@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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