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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라는 꿈, 그것은 이제 꿈이 아니다
5.18 최초 보도 / 장두원 前 KBS 보도본부 주간
2017년 03월 18일 (토) 16:42:37 김도엽 기자 j52590@hanyang.ac.kr

   
 
   
 
언론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우리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해왔으며, 사회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은 항상 외부 세력에 의해 그 존재를 위협받고 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70년대 유신독재, 80년대 군부독재로 끊임없는 탄압을 받기도 했다. 기자는 당시 현장에서 직접 언론의 위기를 겪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했던 장두원 前 KBS 보도본부 주간(이하 장 씨)을 만났다.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그가 걸어왔던 길에 대해 들어보았다.

불의에 저항했던 햇병아리 기자
장 씨는 당시 촉망받는 산업이었던 원자력산업에 흥미를 느끼고 한양대학교 원자력공학과를 지원해 1959년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공학자의 길이 자신과 맞지 않았다고 느꼈던 그는 방학이 되면 법, 행정학 등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곤 했다. 학업에 열중하며 대학 시절을 보낸 그는 기자의 꿈을 꾸며 언론사 시험에 응시하게 된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 언론인이 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어렸을 때부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그의 성격 때문이었다. “그 당시 자유당에서 부정선거를 하려고 전국적으로 폭력배를 모집해서 화랑동지회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제 고향 전주에서도 화랑동지회의 횡포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죠. 그래서 학생들이 중심이 돼 화랑동지회에 투쟁을 벌였습니다. 제가 그 투쟁의 총 책임자여서 형무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기도 했었죠.” 불의를 고발하는 언론의 역할과 그의 성격이 일치했던 것이다. 그는 한양대학교 출신 최초의 기자로 당시 한양재단 이사장이었던 김연준 씨가 창간한 대한일보에 입사하며 언론인의 길에 첫발을 떼기 시작했다.
대한일보 정치부 기자로 햇병아리 기자생활을 시작한 장 씨는 당시 박정희 정권의 언론통제에도 소신을 유지하며 여러 특종을 보도했다. 때로는 그런 보도의 여파로 신문사가 날아갈 것이라는 협박을 들었으며, 심지어는 강제 연행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유신시대로 접어든 1973년, 대한일보는 정부에 의해 폐간됐다. 그 때 그의 능력을 눈여겨본 KBS가 그를 스카웃 해 기자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다
KBS에서 외신부를 거쳐 보도국 차장까지 승승장구하던 장 씨는 1980년 그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계엄사령부에서는 ‘광주에서 불순분자가 폭동을 일으켜 경찰 한 명이 죽고, 민간인 한 명이 다쳤다’는 식의 사건 은폐와 ‘죽고 싶다면 보도하라’라는 등 철저한 언론탄압을 일삼았다. 3일 동안 고민하던 그는 참사 4일째, 마침내 보도를 하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섰다. “제 생명 하나 희생하면 몇천, 몇만 명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집에는 ‘내가 못 돌아올 것 같다’하고 나갔죠. 계엄사령부 측에서 나온 담당자한테 ‘이거 언제 보도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죽고 싶으면 보도해’ 라고 하더라고요. 이 말을 듣고도 보도국장에게 보도 허가가 떨어졌다고 거짓으로 보고했었어요.” 마침내 1980년 5월 21일, KBS 7시 뉴스에서 학생과 시민군이 계엄군과 광주에서 교전을 벌여 수많은 생명이 학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 국민에게 알려진다. 광주의 진실은 삽시간에 퍼져나가 마침내 계엄사령부는 사건을 공개하고 시민군과의 교전을 중지하게 된다.

   
▲ 광주 5.18을 최초 보도했지만, 최근까지도 관련 기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업적을 인정받을 수 없었던 그는 2012년에야 비로소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는 광주 5.18 보도로 인해 ‘반정부 기자’라는 죄목을 뒤집어썼다. 그 결과 1차 해직자 명단에 포함돼 결국 KBS에서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복직투쟁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으며 해직자들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격렬한 투쟁 끝에 사장이 저보고 몇 명만 선정하면 우선 발령을 내주겠다는 제의를 했습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해직자들에게 저를 꼭 믿으라고 얘기했었어요. 저는 해직자 85명 모두의 명단을 제출했는데, 명단 맨 마지막에 제 이름을 넣고 이 순서대로 발령하라고 했었죠. 결국 모두 다 복직시키고 마지막으로 제가 돌아갔었습니다.”

일그러진 언론의 자화상을 바로잡기 위해서
한국 언론의 역사를 함께한 장 씨는 성역이었던 언론의 실태를 고발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언론, 그 일그러진 자화상」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저서에서 그는 언론을 사회의 중요한 축으로 꼽았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 양육·교육·언론 이 3단계가 원활하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우선 부모가 양육을 책임져야 하고, 그 뒤 이어지는 교육을 학교의 선생님이 담당해야 하죠. 교육이 끝나면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데, 이 때는 언론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세 단계가 잘 돌아갈 때, 비로소 사회가 바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언론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언론의 현실을 지적했다. 현재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물은 기자의 질문에 그는 ‘언론의 자유’가 침해당하고 있는 문제를 언급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먼저 외부 요소에 대한 자유가 있어야 하고 또 한 가지는 언론사 내부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데 현재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고, 외부요소에 의해 기자 자신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특히 금권, 명예로부터 흔들리죠.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야 진정한 언론인이 되는 건데, 그러지 못하는 게 현실이죠.”
그가 KBS 전주방송총국장으로 있던 시절, ‘촌지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 언론인은 내·외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시 그는 부하직원들에게 촌지를 받지 않을 때까지 식사를 같이하지 않겠다고 엄포하며, 부패를 척결기도 했다. “제가 전주 총국장으로 있을 때 부하직원들에게 ‘KBS 월급이 도지사 월급보다도 많은데 무엇이 부족해서 또 공무원들한테 촌지를 달라고 하느냐? 그런 기자와 PD들과는 밥을 안 먹겠다’라 말하며 촌지 안 받기 운동에 힘썼죠.”
그는 언론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깊게 하되, 그 폭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부는 당연한 것입니다. 특히 몇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려면 더욱 열심히 해야죠. 참된 기자는 생각의 폭이 넓어야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라며 학생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일그러진 언론의 자화상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그는 이제 언론계에서 물러나지만, 후배 언론인들은 그가 걸어왔던 길을 기억할 것이다.

   
▲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안다.
80년대 언론탄압이라는 과거가 현재의 자유를 가져왔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숨기기만 하지 말고 그것을 통해 한 걸음 나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자세가 아닐까.
   
 
사진 김도렬 기자 ehfuf1230@hanyang.ac.kr
참고 : 언론, 그 일그러진 자화상(2008), 장두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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