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나 홀로 가야 하는 길
공무원, 나 홀로 가야 하는 길
  • 한대신문
  • 승인 2017.03.04
  • 호수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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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사랑도 포기한 노량진의 청춘들

작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년 취업준비생 가운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비율은 약 40%다. 이중 시험을 통과하는 수는 10% 미만이다. 지난달 29일, 그 작은 가능성을 위해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는 25만 청년들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량진 학원가를 찾았다. 

사람이 좋아서 혼자가 되다
A군은 오늘도 혼자 밥을 먹는다. 공부도 혼자 한다. 혹여나 누구와 친해질까 스터디 그룹에도 참여할 수 없다. 온종일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제가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친목 때문에 공부 못하고, 그렇게 될까봐…”.
공대를 다니는 A군은 학창시절 문과생이었다. 적성과는 상관없이 수능 성적에 맞춰 공대에 진학했다. 끝내 학과에 적응할 수 없었다. A군 찾은 답은 공무원 시험뿐이었다. 처음엔 학교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공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초조해지고 친구들과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1분 1초가 아까웠다. 늘어지는 식사 시간과 수다가 조금씩 거슬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는 지난해 휴학계를 냈다. 그때부터 시작된 노량진 생활이다.

정글 같은 노량진 학원가
노량진에서의 하루는 매우 단조롭다. A군의 하루는 매일 아침 8시, 독서실로 향하는 발걸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이것은 자습할 때의 경우다. 수업이 있는 날은 새벽 6시에 학원에 도착해 앞자리를 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뒷자리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스트레스 풀 시간도 사치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도 하지만 잠시 스마트폰을 만질 뿐 어려운 경제 문제 앞에서 곧 마음을 다잡고 책상 앞에 앉는다.
외부인은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경쟁이 노량진 내부엔 가득 차 있다. 학원 복도엔 매일 아침 치르는 쪽지 시험의 석차가 붙어있다. ‘오늘의 최다 학습자: 00시간 00분. OO시험 응시생 00명 공부 중.’ 독서실 전광판에는 학생들을 자극해 경쟁을 부추기는 최신 정보들이 나열돼있다. 고졸도, 대학 휴학생도, 아이 아빠, 아이 엄마도 여기선 옆을 돌아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죠.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요.” A군은 덤덤하게 말했다.
 
나의 합격 비결은 ‘단절’
B군과의 전화 통화는 밤 10시가 지나서야 가능했다. 이제 막 야근을 끝내고 귀가 중이라고 말했다. 작년 10월, 9급 지방직 공채에 합격한 그는 충북의 한 면사무소 복지과에서 근무한다. 노인,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찾아주는 것이 주된 업무다.  
B군은 학창시절부터 공무원을 꿈꿨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한 학기 만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첫 1년은 고향 청주에서 준비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한 블록만 건너면 소꿉친구의 집이 있는 탓에 청주는 공부하기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다. 학원에 있는 시간보다 동네 술집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숙취 때문에 한낮까지 이불 속에 파묻혀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한 부모님께서 노량진 생활을 권했다.
처음 상경한 날, 그는 노량진의 삭막함에 당황했다. “학생들도 서로 친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분위기죠. 같이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하는데요.” 한 달 만에 그도 노량진의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핸드폰을 없앴고, 모여서 담배 피우는 시간이 아까워 친구에게 금연했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나고 B군은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자신의 합격 비결을 ‘포기’라 말한다. “사람도, 사랑도, 포기해야 합니다. 짧고 굵게 승부 봐야죠.” 외롭지 않았냐는 물음에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시험에 떨어지는 것보단 낫잖아요”. “사람을 끊으라”는 그의 성공 신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수험생으로부터 또 다른 수험생에게 옮겨지고 있다.

 

▲ 한 수험생이 학원 복도에 붙은 모의고사 석차를 확인하고 있다.

우리, 괜찮은 걸까?
3.1절이었던 지난 수요일, 이틀간의 취재를 끝내고 노량진의 한 고시 식당으로 향했다. 지하에 위치한 식당은 매우 열악했다. 조명은 부실했고, 벽지는 색이 바랬다. 수험생들은 컵 대신 사발에 주스를 따라 마시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듯했다.
홀로 식사를 하는 수험생들의 어깨 사이로 한 연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 어디선가 영화 <라라랜드>의 주제곡이 흘러나온다. 작중 남녀 주인공으로 나오는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의 ‘City of Stars’다. 달콤한 피아노 반주가 흐르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예의 연인만 두 손을 잡은 채 웃고 있었다. 어쩌면 저들은 내년에도 노량진을 벗어나지 못할수도 있다. 하지만 취업을 위해 연애조차 포기하라 말하는 사회에 맞선 그들의 용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다.
피아노가 잦아든다. 라이언 고슬링이 묻는다. “당신은 내게만 이렇게 반짝이는 걸까요?”. 엠마 스톤이 대답한다. “당신도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어요.”

 

 

 

▲ 아침 식사를 위해 줄선 수험생들 사이로 포옹한 연인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이태성 기자 taesung1211@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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