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우리는 민주 시민입니다
[장산곶매] 우리는 민주 시민입니다
  • 한소연 편집국장
  • 승인 2016.12.29
  • 호수 14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한소연 편집국장

병신년(丙申年), 장난 섞인 말로 인사를 건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17년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여전히 불안정한 시국이고, 누군가는 ‘돈 없는 부모를 탓하라’며 면박을 줬지만 늘 그랬듯 새로운 계획과 희망찬 마음가짐으로 일 년 중 첫째 날을 맞이하고 싶다. 필자의 가장 큰 바람은 그 어느 때보다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한해가 되는 것이다.

지난해 말 대한민국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시끄러웠다. 공권력은 국민을 배신했고 진실만을 보도하겠노라 외쳤던 언론은 신뢰를 잃었다. 신뢰를 잃은 언론은 매주 토요일마다 광장을 밝히는 수백의 촛불들을 보며 민주주의의 실현이자 승리라고 연신 떠들어댔다. 하지만 우리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오바마 미 대통령에 의해서였다.

한창 미국 대선이 치러질 무렵, 오바바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연설 도중 백발의 노인이 등장했고 트럼프라고 적힌 팻말과 함께 자신의 지지 대상을 강력히 밝혔다. 그곳의 모든 관중들은 노인을 향해 온갖 야유를 보냈고 장내는 어수선해졌다. 관중을 진정시키며 오바마는 말한다. "저 분은 자신의 후보를 지지하고 계실 뿐이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나라에 살고 있기에 저 분의 의사를 존중해야한다."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은 인간의 존엄성 보장, 자유와 평등의 실현이다. 민주주의에서 표현의 자유란 우선으로 보장돼야할 권리이다. 민주 시민은 보장된 표현의 자유 아래 개인적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되며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는 데 밑거름이 된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여전히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사람들이 수백만의 촛불을 들고 광장을 찾았고, 그 뜻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박 대통령 지지자들은 탄핵 반대 집회를 열었다. 그 소식을 접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한 이들에게 비난조의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사람이냐, 인간쓰레기다"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필자가 이번 국정농단과 관련해 대통령을 옹호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우리는 여기서 다름을 존중하는 것과 다른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영역임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 비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SNS의 발달로 우리는 과거보다 좀 더 자유롭게 표현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게 됐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논평을 할 수 있고, 기자가 아니더라도 기사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표현의 자유가 억압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행여 여론과 다른 의견을 피력하는 자가 생기면 마녀사냥은 물론이거니와 신상 털이와 비난을 면치 못하기 일쑤다.

다시금 힐러리 지지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외친 노인에 대처하던 오바마 대통령을 떠올려본다. 나와는 다른 의견이라도, 비상식적이더라도 표출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특정한 의견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는 그 의견을 존중해야만 한다. 비난이 아닌 합리적 비판이 필요한 것이다.

다수결의 원칙을 강조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의 힘은 약하다. 집회·결사의 자유 등이 함께 보장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만약 소수가 다수의 힘에 짓눌려 의사를 표현할 용기조차 갖지 못하는 상황을 만든다면 그것 역시 다른 형태의 억압이고 폭력이다. 자유의 영역이 보장되지 않고서 그저 촛불을 드는 것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2017년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