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알기 전, 너는 ‘墨’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너를 알기 전, 너는 ‘墨’에 지나지 않았다
  • 이승진 기자
  • 승인 2016.12.03
  • 호수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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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국화에 대한 이해, 그리고 대중화를 위한 과제

위의 그림을 보자. 무엇이 보이는가?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매다. 매가 무언가를 날카롭게 내려다보고 있다. 아래쪽에는 매의 눈을 피해 달아나고 있는 토끼가 보인다. 금방이라도 매에게 잡힐 것 같은 토끼의 모습이 보는 이에게 긴장감을 주고 있다. 한편 주변의 기괴하게 생긴 바위와 녹색 잎으로 촘촘하게 그려진 소나무의 품새는 매우 아름답다. 이 작품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으며 그 가치는 대체 무엇일까?

한국화(韓國畵)의 정의와 우수성
 한국화는 문자 그대로 우리나라의 전통 회화를 일컫는다. 초기의 한국화는 단순히 중국의 화풍을 모방하거나 화보의 기법을 베껴 그리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기원전부터 그려진 이후 꾸준히 발전한 한국화는 10세기 무렵 산수화의 붐을 계기로 동양을 대표하는 그림이 된다.
 몇몇 사람들은 한국화를 동양화(東洋畵)라 칭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잘못됐다기보단 낡은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사실 ‘동양화’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그림'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던 타율적 용어가 일반화 되어버린 것이다. 이에 1960년대부터 우리 전통 회화를 ‘한국화(韓國畵)’라는 명칭으로 부르자는 주장이 대두됐고 1982년 이후 본격적으로 우리의 그림은 한국화로 불리게 된다.
 그렇다면 겉보기에 구분이 잘 안 되는 중국, 일본의 그림과는 차별화된 한국화만의 특징과 우수성은 무엇일까? 이에 오순화<동양예술철학> 박사는 “무겁고 화려한 색조를 주로 사용하는 중국, 일본과 달리 한국화는 대체로 색조가 담담하다. 또한 구성과 전개, 기교 등이 아주 담백한 느낌을 줘 보는 이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며 한국화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설명했다.
 과거의 한국화는 크게 문인 화가의 그림과 화원 화가의 그림으로 나뉜다. ‘문인화’는 남종화(南宗畵)라고도 불리는데, 전문적 화가가 아닌 시인, 학자 등 인격이 높고 학문의 깊이가 깊은 선비, 즉 사대부가 취미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이는 선비정신과 운치를 존중하며, 수묵 담채를 통해 내면세계의 뜻을 주관적, 관념적으로 묘사한 표현이 주를 이룬다. 반면 화원 화가나 직업 화가들이 그린 화원화는 북종화(北宗畵)로도 불린다. 짙은 채색과 꼼꼼한 필치로 외형을 자세하게 묘사해 민속적인 관습 등 서민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담아냈다.

읽는 그림, 한국화
 과거 한자문화권에서는 글씨와 그림은 뿌리가 같다고 여겼다. 그래서 한국화를 비롯한 동양화는 보지 않고 ‘읽는다(讀畫)’고 한다. 화가도 그림에 담긴 의미의 전달을 염두에 두고 그렸으며 감상자도 화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문자적 의미로 이해해야 했다.

▲ 그림 1 해탐노화, 김홍도, 23.1cm×27.5cm

▲ 그림 2 석류, 정창모 (월북화가), 63cm x 61cm




 












▲ 그림 3 고사탁족도, 이경윤, 27.9cm×19.4cm

▲ 그림 4 날아라 닭, 성태훈, 70cm x 100cm

















동양화를 읽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그림을 동음이자(同音異字)의 문구로 바꿔 읽는 방법이 있다. 그림 1 ‘해탕노화(蟹貪蘆花)'를 보자. 게를 갈대로 묶어 놓은 그림은 ‘전려(傳臚)’라고 부른다. 갈대 로(蘆)와 음식 려(臚)의 독음이 닮은 점을 이용해 ‘전시(殿試)에 장원급제하여 임금이 내리는 음식을 받다’라는 뜻을 가진다. 갑각류인 게의 등딱지는 갑(甲)으로 바꿔 읽히며 장원급제를 나타낸다. 예로부터 시험을 앞둔 선비들에게 장원을 기원하는 의미로 전려도를 주곤 했다고 한다.
 두 번째 방법으론 그려진 사물의 우화적 의미를 그대로 읽는 것이 있다. 그림에 표현된 대상들은 당대에 각각 상징하는 의미가 있었다. 가장 쉬운 예로 그림 2 ‘석류’는 다자(多子)의 뜻을 갖는다. 주머니 속에 예쁜 석류 알들이 가득 들어 있는 모양이 자손이 많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개 포도나 수박, 호리병박 등과 같이 주렁주렁 열매가 달린 모양을 그린 것은 다자와 의미가 통한다고 보면 된다. 이런 그림은 반드시 열매가 덩굴에 매달린 채로 그려 놓기 마련인데, 이렇게 해야만 ‘자손이 영원히 끊이지 않는다’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방법은 고전 명구(古典 名句)나 일화를 상기해 읽는 법이다. 그림 3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가 대표적이다. 계곡에서 마치 발이 시린 듯 다리를 꼬고 있는 도사의 모습이 매우 시원한 느낌을 주는데, 이 그림은 한여름에 임금이 주로 부채에 그려 넣어 신하들에게 줬다고 한다. 그러나 그림을 주는 임금이나 받는 신하 모두 이 탁족도를 보면서 더 깊은 의미를 생각했다. 맹자의 「이루(離婁)」에 보면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닦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닦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여행자들이 건기에 강물이 맑을 때는 세수하고 갓끈까지 닦지만, 물이 흐릴 때는 발만 씻고 지나간다는 의미다. 선비를 강에 빗대어 임금의 부름을 받는 것은 스스로 행동하기에 달렸다는 것을 뜻한다.
 아름다운 꽃을 보고 그 모양과 색을 나타내고자 하는 요즘의 회화와는 달리, 한국화는 의미를 먼저 생각해놓고 그 의미가 잘 전달될 수 있는 소재를 그린 회화라는 사실을 알아두자.

전통 한국화의 한계, 신(新) 한국화의 등장
 한국화는 분명 독특하고 우수한 우리의 그림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한국화 시장은 경색돼 있다. 그 이유로 서양화의 시장 선점이 있다. 대다수의 사람은 회화하면 서양화를 먼저 떠올린다. 교육도 이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여러분은 학창시절 서양화와 비교했을 때 한국화를 그려본 경험이 얼마나 있는가? 아마 상대적으로 매우 적을 것이다. 다양한 채색과 기법을 이용해 형태미를 추구한 서양화는 대중이 좀 더 쉽게 감상할 수 있다. 반면 한지나 나무 등을 사용해 상징적 의미를 표현해낸 한국화는 대중이 접근하기에 다소 딱딱한 느낌을 준다. 이런 이미지는 곧 한국화의 적은 수요와 직결된다.
 이러한 전통 한국화의 한계를 새로운 한국화로 극복하려는 이들도 있다. 성태훈 작가는 지난 5월 목판 위에 천, 옻칠을 통해 전에 없던 새로운 종류의 한국화인 그림 4 ‘날아라 닭’을 전시해 화제가 됐다. 그는 작품을 통해 현실에서는 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닭들의 날갯짓을 통해 소시민이 운명 같은 환경을 거칠게 제치고 올라가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언뜻 보면 동양화인지 서양화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 그러나 목판이라는 투박하고도 정겨운 재료와 닭의 정갈한 모양새를 통해 우리는 이 그림이 한국화란 것을 느낄 수 있다. 의미나 상징의 표현을 중시하는 한국화의 특성을 간직하면서도 본인만의 철학을 담아 옻칠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전에 없던 한국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대중들은 이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지난 5월까지 전시된 성 작가의 전시회는 많은 이들이 발 도장을 찍었다. 많은 예술인들 역시 그의 새로운 시도에 박수를 보냈다.

한국화, 자부심을 내려놓고 대중화를 향해라
 오 박사는 현재 전통 한국화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화가들의 보수적인 자세를 지적했다. 자부심이 강한 전통 한국화가들은 그림이 곧 자신의 영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중의 유행에 맞춰 자신들의 그림 스타일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에 오 박사는 “예술은 자기만족을 위한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작가의 생명력을 얻어 탄생한 작품은 대중에게 가서 감동을 주는 기능을 수행할 때 작품으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고 말해 한국화가 더욱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대중의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해야 함을 주장했다.
 한국화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 박사는 “한국화를 어려운 문화라 생각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갤러리나 카페 같은 곳에 가서 즐겼으면 좋겠다”면서 한국화를 가볍게 접할 것을 권했다. ‘날아라 닭’과 같이 신선하고 트렌디한 한국화도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건 우리가 한국화에 얼마나 관심을 갖느냐다. 주변에 한국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여러분이 처음에 본 작품의 제목은 최북이 그린 ‘토끼를 쫓는 매’다. 자식이 천연두로 위독한 상태가 되자 그 어미가 최북을 찾아와 매 그림 한 장을 그려달라고 방문 앞에서 읍소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매가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고 믿었다. 아낙은 이 그림이 자식의 천연두를 낫게 해 준다고 믿었던 것이다. 최북은 당대 최고의 대가 중 한 명이었지만, 가난한 아낙을 위해 탁주값 몇 푼만 받고 이 그림을 그려줬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화의 진정한 가치는 그 안에 내재된 의미에 있다. 예술계와 대중 모두의 관심과 노력 속에 그 가치가 꽃피길 바란다.

이승진 기자 wsy2578@hanyang.ac.kr
도움 및 그림1 출처: 오순화<동양예술철학> 박사
참고자료: 도서 조용진 저 「동양화 읽는 법」(2013, 집문당)
이미지 출처: 그림2 http://www.koreanart21.com/column/masterpiece/view?id=2912, 그림3 http://m.blog.daum.net/winsys777/1113?categoryId=25, 그림4 http://www.jma.go.kr/korean/SubPage.php?CID=bbs/board.php&bo_id=cmu02&page=6&wr_id=3300 그림5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50121183425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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