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서스가 보내는 살아있는 메시지
맬서스가 보내는 살아있는 메시지
  • 윤가은 기자
  • 승인 2016.11.19
  • 호수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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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세상, 살아남은 인류를 태우고 달리는 기차가 있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기차는 여러 칸으로 연결돼 있는데, 앞칸은 ‘머리칸’으로 상류층에게, 뒷칸은 ‘꼬리칸’으로 하류층에게 배정된다. 빈민굴을 연상시키는 꼬리칸은 지저분하고 어둡게 묘사된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응집해 살아간다. 머리칸은 꼬리칸과는 대비되어 정돈되고 다채로운 분위기로 묘사되며, 나이 상관없이 모여 사는 어수선한 꼬리칸과는 달리 사상 교육을 받는 아이들도 등장한다.

꼬리칸에 속한 주인공 커티스는 이런 체제에 반발하여 기차의 최전선으로 전진한다. 최고권위자인 윌포드가 있는 엔진으로 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커티스는 그동안 있어왔던 전쟁과 전염병이 사실은 인구 통제를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비극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윌포드로부터 듣게 된다. 식량과 공간 등 생존 상의 제약을 해결하기 위해 권력층은 하층 계급을 대상으로 인위적이면서도 적극적인 통제를 해 온 것이었다.


멜서스 이론의 핵심
윌포드의 저 무시무시한 말은 맬서스 이론에서 출발한다. 맬서스가 그의 저서 「인구론」에서 주장한 바는 이렇다. 인구 증가는 기하급수적으로 이뤄지는 반면 식량 증가는 산술급수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지구에서 생산되는 식량이 더 이상 인구를 충분히 먹여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모든 사람이 빈곤한 디스토피아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인구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인구를 억제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예방적 억제’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 억제’다. 전자는 태어나지 않은 인구를 예방하는 피임과 성생활 자제 등의 대책이라면, 후자는 전염병, 기아, 전쟁 등 살인을 통한 사후 대책이다. 그러나 맬서스는 예방적 억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여성의 순결을 중요시한 그에게 피임은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였다. 또한 그는 하층 계급이 성욕을 조절하지 못하기에 예방적 억제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전염병과 기아와 전쟁을 통한 적극적 억제뿐이었다.

따라서 그는 전염병이 창궐할 수 있도록 주거공간의 거리를 더욱 좁히고 사람들을 밀집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구가 감소하길 바랐으므로 전염병을 이겨내는 약을 개발하는 사람은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했다. 또한 청결을 유지할 수 없도록 “비위생적인 축축한 땅에다 집을 짓고 살도록 권유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빈민구제법을 포함한 그 어떤 복지도 반대했다. 자기 힘으로 생존할 수 없는 자는 생존의 가치가 없다는 논리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인구 증가를 억제해야만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기에 이토록 극단적인 이론을 탄생시킬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맬서스는 그의 무시무시한 이론과는 달리 유머러스하고 사교적인 사람이었다. 맬서스는 성직자가 되길 원했고 실제로도 성직자로 일했으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던 수재였다. 비록 어두웠던 초판 이후의 판에선 보다 신중한 변화를 요구하는 등 기존 주장만큼 부정적이지 않은 태도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맬서스는 “자체적으로 인구를 조절할 수 없는 인류의 결함이 인구를 감소시키는 최적의 수단이 된다”는 기본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지구의 식량 생산량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난 인구에겐 인구 통제의 능력이 없기에 기근과 전염병이 나서서 이들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맬서스의 실패
그러나 맬서스의 예측과는 달리 인구는 필요한 식량을 초과할 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았다.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한 건 사실이지만, 기술이 발전해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식량도 그만큼 증가했기에 생활수준이 훨씬 나아진 것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실질 GDP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엄청난 속도로 증가한 인구는 점차 제동이 걸려 현재 많은 나라에선 오히려 인구성장률 침체를 걱정하고 있다.

맬서스는 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검증되지 않은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예상했고,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이 일어나 식량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리라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가 살았던 18세기는 농업 생산량이 형편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농업혁명을 예측하지 못해 식량 생산량을 걱정한 것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는 미래를 이렇듯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생긴 본질적 이유는 시장의 ‘가격 신호’를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장 기본적인 사항인 수요와 공급 법칙이 무시됐다는 것이다. 특정 재화의 수요량이 증가하면 가격이 오르고, 이는 공급의 증가를 초래한다. 시장 원리에 따르면 이때 공급자들은 재화의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사회주의적 생산방식을 고수했던 중국 농업이 농산물의 비약적 생산을 일궈냈던 자본주의 시장의 생산방식으로 전환한 역사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맬서스는 식량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데서 그쳐 공급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공급을 늘릴 방법을 고민할 것이란 것까진 내다보지 못했다.


여전히 살아있는 맬서스
그러나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며 극심한 혹평을 받은 그의 이론은 활자 밖 현실에 존재하고 있었다. 생존의 치열한 경쟁을 다룬 맬서스의 이론에서 찰스 다윈은 ‘경쟁’을 발견했다. 제약의 환경에서 개체는 생존하기 위해 경쟁을 하고, 그중 가장 적응을 잘하는 개체만이 살아남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개체들을 다윈은 ‘자연선택’ 됐다고 주장했다. 이런 다윈의 이론을 왜곡해 벌어진 일이 제2차 세계 대전의 유대인 대학살이다.

당시 학자들은 다윈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들은 인종을 피부색으로 나눠 백인을 가장 우월하게 여겼으며, 다시 나라별로 백인 간 우열을 갈랐다. 그들에게 계급은 지적 우월 수준의 척도였다. 유대인과 이민자를 열등하게 생각한 히틀러는 이런 사상을 바탕으로 ‘인종 청소’를 강행했다. 히틀러가 그런 인종 청소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대인이 세상을 정복하려 하며 그로 인해 독일인이 생존에 위협을 느낀다는 그만의 해석이 있었다. 다윈에 영향을 끼친 맬서스의 이론은 인종 대학살의 잘못된 뼈대가 됐다. 이것은 일어난 지 100년도 채 되지 않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맬서스가 「인구론」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도 그의 사상과 부합하는 역사는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빈민 간 결혼을 금지하기도 했다. 반세기 전만 해도 중국이 가구 당 한 자녀만 낳자는 정책을 장려한 것을 보면, 가난은 가난을 낳을 뿐이라는 맬서스의 생각은 시대를 불문해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권력층이 하층 계급의 인구를 억제하는 데 쓰인 “생존과 관련된 제약 속에서 머릿수를 통제해야한다”는 논리는 지금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 뿌리 내리고 있다. 물론 맬서스 이론만큼 가시적이고 적나라하며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형태로 보이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살인하고 있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경계를 치고 접근을 막는 통제의 방식이 살인보다 인도적인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도, 냄새로 느껴지지도 않지만 서서히 숨통을 조여 오는 가스가 더 고통스러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에 만연해 있는 가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첫 번째는 브렉시트다. 시리아 난민 문제가 기폭제가 되어 영국의 EU 탈퇴가 순식간에 이뤄졌다. 탈퇴 전 영국은 난민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웠다. EU 회원국인 나라는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을 수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난민을 수용하는 데서 일어났던 게 아니다. 엄청난 난민이 몰려 들어오면서 영국은 난민에게 영국 자국민이 낸 세금으로 복지를 보장해줘야 했고, 또 일자리 문제로 영국 내 실업률이 높아질 것이란 우려도 있었던 것이다. 국가 자원의 제약 속에서 영국은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생명은 평등하며 위기 시 도움을 줘야 한다는 인도주의 정책을 거스르고 난민의 머릿수를 통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두 번째는 여전히 만연하고 있는 구조조정이다. 회사 위기 땐 가장 아래 사람들부터 잘려나간다. 우리나라만 해도 조선업이 하락세로 접어들어 침체 국면에 이르렀을 때 최전선에 나와 권리를 호소하던 사람들은 해고당한 이들이었다. 악화된 경영 환경 속에서 가장 먼저 행해지는 조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이다. 구조조정은 다름 아닌 ‘꼬리 자르기’고, 축소된 제약 환경에서 머릿수가 잘려나가는 일종의 인구 억제라 볼 수 있다.


맬서스가 남긴 메시지
기술의 발전과는 상관없이 제약은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는 지구라는 한정된 환경에서 살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격적인 것은, 지구에서 생산되는 식량이 실은 70억 인구가 매일을 배불리 먹어도 남을 만큼 충분히 생산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식량 문제에 관한 이 ‘제약’은 애초에 불필요한 걱정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맬서스가 주장한 “생존과 관련된 제약 속에서 머릿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분배의 문제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마션」에서는 화성 탐사를 떠난 일행 중 한 명이 화성에 홀로 남겨진다. 나머지 일행은 지구로 돌아오던 중에 죽은 줄 알았던 한 명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시는 우주 비행에 오르지 못할 걸 알면서도, 가족도 보지 못하고 무중력의 우주에서 또 다른 해를 보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지구와 교신을 끊고 NASA의 허락 없이 우주선의 방향을 바꾼다. 이에 NASA와 중국은 그들을 움직이게 한 유인(誘因)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엄청난 기회비용을 감수하면서 살아있는 한 명을 구하러 갈 수 있도록 우주선을 원조한다.

동료들이 시간을 포기하며, 또 지구에 남은 사람들이 비용을 감수하며 우주선을 화성으로 돌려보낸 동력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불특정 인간을 향한 사랑, 인류애가 아니었을까. 사람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포기한 것은 결국 사람을 궁극의 가치로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국열차」에서 권력층이 하류층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던 이유는 사람보다 더 귀중한, 지켜야할 다른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권력일 수도 있고, 돈이나 기득권일 수도 있겠다.

마르크스는 인간에게 물리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이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런 제약조차 실은 없어도 되는 것이었다면? 그런 환경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류애를 가지고, 가진 것을 나눈다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마션」의 동료와 시민처럼 말이다.


참고 자료: 도서 「인구론」 (토마스 맬서스, 동서문화사), 도서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김영사), 도서 「청춘의 독서」 (유시민, 웅진지식하우스)
“곡물 남는데 굶는 사람 왜 이리 많지?” (단비뉴스, 2012.11.03)
“맬서스 '인구론'은 아직도 유효한가” (프레시안, 2009.06.09.)
“히틀러, 다윈, 그리고 홀로코스트: 나치는 진화론을 어떻게 왜곡했나” (NewsPeppermint, 201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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