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에 ‘소리’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마법사가 되다
영상에 ‘소리’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마법사가 되다
  • 김도엽 기자
  • 승인 2016.10.29
  • 호수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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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원 음향감독

지난 5월에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또 오해영」의 남자 주인공인 에릭(박도경 역)의 직업은 ‘음향감독’, 이름만 들어도 무척 생소해 보이는 직업이다. 음향은 같은 영상도 전혀 다른 느낌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요소인 만큼 영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음향산업을 초창기부터 개척하고 발전시켜온 김석원<블루캡 사운드웍스> 음향감독(이하 김 감독). 「쉬리」(1999), 「도둑들」(2012), 「아가씨」(2016) 등 많은 작품에 참여한 한국 음향산업의 선두주자인 그를 만나 우리가 몰랐던 음향의 신비로움을 경험하고, 주목받지 못했던 음향산업을 개척한 그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음악을 사랑한 공학도, 김석원
김 감독은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음악적 재능 또한 탁월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음악’은 비주류에 속한 직업군이었고, 스스로도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음악은 취미로 하고, 장래가 유망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로 진학하게 됐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해서도 음악에 대한 아쉬움을 외면하지 못했던 그는 연합 음악 동아리에 들어갔고, 음악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게 됐다. 지금도 그는 “제 전공이 토목 계열인데 음향 쪽으로 오게 된 것도 동아리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라고 말할 만큼, 음악 동아리 활동은 그의 진로를 바꾸게 한 터닝포인트였다.

음향산업으로의 모험을 시작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음향의 세계로 뛰어든 것은 대학교 3학년 시절 광고 회사에서 하게 된 아르바이트 때문이었다. 그는 ‘서울 오디오’라는 광고 회사에서 CM송(광고 삽입음악)을 불러 녹음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당시 그가 본 회사는 음악을 하면서도 돈을 많이 버는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에 그는 음악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서울 오디오’에 입사하게 된다. “당시 음악을 통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회사가 없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안정적인 회사라고 생각했죠. 음악을 좋아해서 동아리 활동을 하며 회장도 하다 보니 운 좋게 좋은 회사에 취직까지 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뛰어들게 된 회사 생활은 순조롭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음향 산업에서 상대적으로 늦게 첫발을 뗀 그는 남들보다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대개 음향산업은 도제식(제자가 스승의 작업을 도와주는 보조자 노릇을 하며 기술을 배우는 방법)으로 기술을 배우기 때문에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판단한 그는 독학을 통해 기술을 습득해야 했다. 외국 서적을 직접 번역해서 보기까지 했다는 그는 당시의 피나는 노력을 회상했다.
그의 피나는 노력은 결국 빛을 봤다. 그의 노력과 재능을 눈여겨본 ‘서울 오디오’의 김도향 대표가 그의 미국 유학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준 것이다. 그 결과, 그는 당시 대한민국에 몇 없던 녹음실 설립과 운영을 주도하는 업적을 이루게 됐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녹음실을 쉽게 만들 수 없었어요. 경제적, 기술적 측면에서 여러 제약이 많았죠. 그런데 당시 김도향 사장님은 신선한 인물을 통한 혁신적인 운영으로 회사를 이끌어 갈 생각을 하셨어요. 그래서 저에게 직접 녹음실 설립과 운영을 맡기셨던 겁니다.”
이렇게 ‘서울 오디오’에서 많은 광고를 기획·제작하며 큰 성공을 거두게 된 김 감독은 자신만의 녹음실을 갖고 싶다는 꿈을 안고 당당히 나와 1991년에 ‘리드사운드’라는 광고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새로운 도전, 대한민국 영화음향의 대부가 된 밑거름
광고계에서 큰 성공을 거둬, 자신의 회사를 가지게 된 김 감독은 수많은 광고제작을 했지만 정작 본인이 생각해왔던 영화음향을 할 시간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영화음향만을 위한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블루캡 사운드웍스’이다. 광고계에서 이룬 많은 영광을 뒤로하고 그가 영화 시장에 발을 내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엔지니어로서의 성취감이었다.
광고나 영화 모두 음향을 만들기 위해서 웅장한 스피커를 이용해 밤을 새우며 노력하지만, 광고는 TV의 조그만 화면에 나오는 것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시청자들은 무관심하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영화 작업을 하게 됐는데, 사람들이 저를 감독님이라고 부르고 알아봐 주는 게 굉장히 뿌듯했어요. 광고하면서 느꼈던 굶주림이 해소되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영화음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것 같아요.”
그는 영화음향 분야에서도 굵직한 업적을 여럿 남겼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최초로 디지털 사운드를 도입한 것이다. 컴퓨터 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디지털 사운드를 도입하기 전까지는 아날로그 필름에 일일이 녹음된 음향을 넣어야 했고, 필름의 가격도 매우 비싸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디지털 사운드를 도입함으로써 이전보다 적은 비용을 투자하고도 양질의 음향을 생산할 수 있었고, 이는 관객들의 몰입을 한층 더 향상시켜주는 좋은 계기가 됐다. 그는 디지털 사운드를 도입할 수 있게 된 은인으로 김도향 사장을 꼽았다. “김도향 사장님은 제가 미국에서 새로운 기술을 공부할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주셨죠. 최첨단의 기술을 미국에서 직접 보며 ‘아, 한국에서도 충분히 디지털을 도입할 수 있겠다’라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어요.”

음향감독 김석원, 대한민국의 음향을 말하다
김 감독은 영화에서 음향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냐는 질문에 “생명력이죠”라며 한 마디로 답했다. “영상에서 소리가 없다면 생명력이 없어지는 것과 같아요. 단지 화면에 불과할 뿐이죠. 우리가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과 컴퓨터로 보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소리예요. 그만큼 소리는 영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국 영화산업에서 음향산업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다. 우선 다른 분야보다 적게 책정되는 예산 분배가 그중 하나였다. 또한 영화 제작사에서 요구하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강행군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음향 산업의 시스템을 붕괴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문제점의 근본적인 원인이 음향산업에 대한 인식 부족에 있다고 말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앞으로 영화음향 산업의 맏형이자 선배, 때로는 개척자로서 인프라 개선에 힘썼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다. “작업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은 게 제 꿈이에요. 훗날 후배들도 ‘그때 김석원이라는 선배님이 한국 영화음향에 크게 기여했대’라고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지금 제 꿈이자, 앞으로 기억되고 싶은 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상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더 높은 곳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며 한국의 영화음향을 진두지휘하는 김석원 음향감독.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친 그가 있기에, 한국 영화음향산업의 미래는 더 밝아 보인다.

그의 '항상 열심히'라는 문구는 '옛날 생각에 그리움만 갖지 말고 새롭게 닥치는 일에도 걱정 말고 계속 노력하며 살아가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항상 가장 최근에 만든 작품을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작품으로 꼽지만, 나중에 그 작품을 다시 보면 부족한 점이 또 보인다고 한다. 어쩌면 그는 매 순간 현재를 살아가며 발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진 김승선 기자 sunsune2@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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