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을 소유하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금을 소유하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윤가은 기자
  • 승인 2016.10.08
  • 호수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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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으로 본 인간 집착의 역사

“간절히 바라면 온 세상이 나서서 도와준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 나오는 말이다. 금을 향한 인간의 간절한 마음은 연금술의 열풍으로 이어졌다. 금을 사랑한 사람들은 금을 캐내고, 대가로 받고, 약탈하는 것도 모자라 직접 금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금의 역사는 곧 집착의 역사다.

금은 장식으로서 몸을 치장할 수 있게 했고, 필요한 물건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됐다. 뿐만 아니라 위기 시 갖고 있는 재산을 금으로 바꿈으로써 안정을 되찾게 해줬다. 한 전문가는 “만약 내일 아침에 금값이 100달러로 오른다면, 셋 중 하나일 겁니다. 금융계에 문제가 터졌거나, 전쟁이 발발했거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온 거죠. 전부 금을 통해 알 수 있어요”라고 했다. 도대체 금은 인간에게 무엇일까?  

 

Ⅰ. 과학적 측면에서 바라본 금

40억여 년 전, 마그마의 바다였던 지구에 행성들의 비가 쏟아졌다. 이때 철 덩어리가 지구 중심으로 내려앉으면서 다른 금속들까지 끌고 들어갔다. 이 때문에 지구의 중심이 철, 니켈 등의 금속들로 이뤄지게 된 것이다. 그중 금은 1%에 불과한데도 전 세계를 충분히 덮고도 남을 양이다.

지금 우리가 캘 수 있는 금은 지각이 형성된 후로 날아온 자잘한 운석들이 운반해 온, 지구 표면에 존재하는 것이다. 금은 공기나 물에 닿아도 본성이 변화하지 않는다. 산화가 잘 되지 않고, 무른 형질 덕택에 보석으로서의 가치가 뛰어났다. 산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보석이 여전한 광채를 유지한다는 것을, 무른 형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보석을 어려움 없이 다듬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석과 화폐로서의 기능 외엔 별 쓸모가 없던 금이 이런 형질 덕분에 최근엔 산업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컴퓨터의 CPU 같이 정밀한 회로에 금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금은 밀도가 높아 자산의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으로서의 기능도 해낸다.

 

Ⅱ.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사용됐던 금의 역사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 외에 어느 누구도 금을 가질 수 없었다. 금은 그들이 가진 절대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다. 지혜로운 왕으로 알려진 솔로몬은 성전, 방패, 옥좌와 잔을 모두 금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소수의 ‘선택 받은’ 이들에게만 집중됐던 금은 화폐로 통용되며 “금의 민주화”를 일궈내기도 했다. 금이 화폐로 유통되며 일반 대중의 손으로도 흘러들어가게 된 것이다.

금은 자주 사람의 눈을 멀게도 했다. 모세와 유태인은 전쟁을 벌여 금을 약탈해갔다. 스페인은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명분으로 잉카제국을 침략해 처참히 무너뜨린 뒤, 그들이 가진 모든 금을 싹쓸어왔다. 아랍인들 역시 금에 관해선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무역을 통해서도 금을 들여왔지만 페르시아, 시리아, 이집트 등 수많은 나라와의 전쟁과 그로부터의 약탈을 통해 많은 금을 얻을 수 있었다.

금화로 자신이 가진 권력을 널리 과시한 경우도 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는 당시 통용되던 주화의 단위를 자신의 이름에서 가져온 ‘다릭’으로 쓰고, 액면에는 자신의 모습을 새겨넣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필리포스 2세는 금화에 신의 형상을 그려넣었으나 놀랍게도 자신들의 모습과 똑같았다. 당시 금화가 무역을 통해 여러 지역에서 통용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신들의 형상이 담긴 금화로 권력을 과시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거둔 셈이다.

가까운 현대에 들어와서는 19세기에 발생했던 골드러시가 있다. 캘리포니아의 어느 개울에서 발견된 금을 시발점으로 전 세계적인 금 채굴 열풍을 일으켰던 골드러시로 세계는 크게 흔들렸다.

 

Ⅲ. 금본위제의 등장과 몰락

지금 우리는 법정불환지폐라는 화폐를 사용해 거래를 한다. 이런 체제 아래에서 천 원은 천 원보다 싸다. 천 원짜리 한 장을 만들려면 대략 육십 원이 들기 때문이다. 만 원은 더욱 심하다. 장당 칠십 원이다. 만 원어치의 밥을 먹을 때 우리는 사실 칠십 원짜리 종잇조각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종잇조각이 손을 떠날 때 우리는 아쉬워하며, 그 종잇조각을 받은 식당 주인은 흐뭇해한다. 왜 그럴까? 그 종잇조각은 그 자체론 몇 십 원에 불과하나 법적으로 만 원의 값어치를 하는 것으로 약속돼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나 제도적으로 가치가 부여된 화폐를 법정불환지폐라 부른다. 반대로 그 자체로 실제 값어치를 지니는 것은 상품화폐라 부르는데, 금과 은 따위다. 이처럼 금이 화폐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지폐와 교환될 수 있는 제도를 금본위제라 한다. 금본위제는 환율 제도로, 1온스의 금을 특정 달러 수준에 고정해놓는 것이다. 이때 금을 기준으로 자국화폐와 외화와의 교환비율을 결정한다.
19세기에 벌어진 골드러시로 금 공급량이 폭증했다. 이는 1819년의 영국을 필두로 전 세계적인 금본위제 도입을 가속화시켰다. 당시 유럽은 북미, 남미에서 캐온 금으로 공급이 넘쳐났다. 그래서 금값이 엄청 쌌다. 반면에 영국은 은이 부족했다. 은이 통용되던 중국과 무역을 많이 했던 영국에선 엄청난 양의 은이 유출됐다. 상대적으로 은이 금에 비해 적었던 영국은 금본위제를 채택했다.

금본위제는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그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수출이 증가해 국가 안으로 금이 많이 들어오면 딱 그만큼의 통화가 유통되는 것이다. 그러나 금 유입으로 국가 내 통화 공급량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이론적으로는 이런 자연스러운 인플레이션도 조정될 수 있었다. 통화량이 늘어 물가가 상승하면 국가 내 수요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수입품으로 향할 것이고, 따라서 수입이 늘면 금이 국외로 나감으로써 통화량이 줄고 균형을 되찾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이론에 불과하다는 데 있었다. 도시마 이쓰오는 그의 저서 「황금」을 통해서 “‘국내 물가 수준’이나 ‘국내 통화 공급량’의 증감으로 경제가 균형을 이룬다는 생각도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이야기일 뿐, 실제 경제에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주장했다. 설령 자연스레 균형이 맞춰지는 과정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때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짐작할 수 없어 무작정 균형에 도달하기만을 기다리자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은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세계적으로 통용됐으나 전쟁 때 금 보유량을 초과해가면서 화폐를 발행한 많은 국가들 탓에 금본위제는 크게 흔들렸다. 이후 세계 대공황을 거치며 금본위제는 위기를 맞았지만 전쟁으로 부강해진 미국은 다시금 금 가격을 달러에 고정시킴으로써 금본위제의 부활을 꿈꿨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시 금 보유고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발행한 국채와 화폐로 미국은 곧 달러와 교환해줄 금이 부족해졌다. 채권과 달러의 소유자가 그것을 금과 교환해나가기 시작하자 미국 내 금이 모두 빠져나가버린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1971년 미국 대통령 닉슨은 달러를 금으로 바꾸지 못하도록 금 태환을 중지시켰고 이로써 달러 중심 금본위제는 세계 역사에서 퇴장하게 됐다.

금본위제 시대가 막을 내린 배경엔 토마스 그레샴이 금 등의 상품화폐에 대해 비판한 것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그는 “악화(bad money)가 양화(good money)를 몰아낸다”고 했다. 금을 직접 넣어 만드는 금화의 경우, 만드는 이의 입장에선 순도 100%의 금 하나를 만드는 것보단 그보다 덜 넣어 더 많은 금화를 생산해내는 것이 이득이다. 금화 표면에 적힌 가치는 실제 순도와는 상관없이 명목상으로는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종이화폐가 아닌 화폐 자체에 가치가 포함돼 있는 경우,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는 질이 떨어질 것이고 그 양도 대량일 것이라는 것이 그레샴이 주장한 ‘그레샴의 법칙‘의 내용이다.

또한 금본위제가 각 국가의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쓰오는 “금본위제가 비록 통화의 남발을 막을진 몰라도 금의 양이 세계적인 경제성장을 따라가기엔 너무 부족”하며, 균형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피해를 완화하려는 조치를 취하면 안 되기 때문에 “어떠한 탄력적인 정책도 할 수 없어 비현실적이다”라고 주장했다.

 

Ⅳ. 여전한 안전자산으로서의 금

금본위제는 끝났다. 그러나 ‘금본위제’가 끝난 것이지 금 자체에 종말이 온 것은 아니다. 여전히 사회가 요동치면 금값이 오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금값은 두 배로 뛰었다. 화폐로서 기능하던 금의 시대는 갔는데도 여전히 자산의 수호자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엔 ‘안전자산’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안전자산인 금은 그 자체로 안전한 자산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안전할 뿐이다. 2008년 미국에서 터진 금융위기 때 달러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일본의 엔화로 자금을 이동시켰다. 엔화가 절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이라 인식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나마 피해가 덜할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금은 인플레이션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물가가 인상되면 금값도 함께 상승하기 때문에 가치가 상대적으로 보존되는 것이다. 또한 현금화가 다른 실물자산에 비해 쉽기 때문에 금융 위기 때마다 갈 곳 없는 여러 자금이 금으로 향한다.

과거의 금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지금은 안전자산으로의 의존으로 드러난다. 국가별 금 보유고도 이를 알려주는 좋은 지표다. 세계금위원회(WGC)가 2015년 발표한 세계 국가별 금 보유량에 따르면 1위는 미국 연방준비제도(8133.5T), 2위는 독일(3381.0T)이고 대한민국의 한국은행은 34위로 104.4T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도 위험을 완화시키기 위해 외환보유고 중 달러를 팔고 금을 사들이고 있는 추세다. 외환보유고의 큰 비율을 차지하는 달러의 가치가 하락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현재 그리스와 스페인의 경우 금의 유출을 막으려하고 있으며, 유럽의 중앙은행은 금으로 외화보유고의 15%를 채우려 노력하고 있다.

 

Ⅴ. 인간이 금을 ‘소유’하기 위해선

인간이 지구의 껍질에서 반짝이는 금을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21세기인 지금까지 우리는 역사적으로 금에 의지해왔다. 피터 L. 번스타인은 “모두 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금은 또한 그들 모두를 소유했다”고 말했다. 그는 핀다로스의 말을 인용하며 “인간의 정신은 이 최고의 소유물에게 먹혀버린다”고 했다.

이 외로운 금속인 금에겐 사실상 주인이 없었다. 금의 주인은 끊임없이 바뀌어왔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발적으로, 때로는 비자발적으로 그래왔다. 끔찍하지만 어쩌면 번스타인의 말대로 그동안 금이 우리를 소유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예술의 영감이 되기도, 잔인한 전쟁의 목적이 되기도 했던 이 사연 많은 금은, 우리가 지닌 칼이나 불이나 과학과도 같은 것일까? 모두 문명을 위해 쓸 수도, 문명을 파괴하는 데 쓸 수도 있다. 물질의 세계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세계는 그저 가만히 있는데,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흔들릴 뿐이다.

금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 과거에도, 지금도 같은 모습으로. 가만히 있는 금에 집착하고 또 영감을 얻어 예술로 만드는 것은 인간 뿐이다.

 

참고 자료: 도서 「금, 인간의 영혼을 소유하다」 (피터 L. 번스타인 지음, 김승욱 옮김)
도서 「황금」 (도시마 이쓰오 지음, 김정환 옮김, 강호원 해제)
이미지 출처: http://www.starlings.co.kr/page/page_view?page_idx=3062
http://www.hankyung.com/pdsdata
http://www.white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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