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석에서 보석이 되기까지
원석에서 보석이 되기까지
  • 한대신문
  • 승인 2016.10.08
  • 호수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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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얼리 디자이너 예명지

예명지<쥬얼리브랜드 ‘예명지’> 디자이너(이하 예 디자이너)는 지난달 8일, 런던에서 세계적인 영국 왕실 디자이너 조셀린 버튼과 함께 런던 써니아트 갤러리 개관전을 성황리에 마쳤다. 독자적인 쥬얼리 기법으로 쥬얼리 브랜드 ‘예명지’를 런칭했고, 이후 화려한 수상경력을 갖추며 쥬얼리 디자이너 1세대로 이름을 알린 예 디자이너. 국내 쥬얼리 디자이너로서 독보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현재 한양대학교에서 겸임교수를 맡아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최근 그녀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새로운 컬렉션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며,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쥬얼리 디자이너로 성장하고 있다. 여전히 자기 자신을 갈고닦는 보석 디자이너 예명지를 만나 지금의 그녀가 있기까지, 그녀의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쥬얼리 디자이너를 꿈꾸다
예 디자이너는 고등학교 졸업 후 한양대학교 실내환경디자인과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에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며, 사진 찍는 것에 빠져있을 뿐 그녀는 진로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없었다. 그러던 3학년 겨울,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간 파리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몽테뉴 거리에서 유서 깊은 명품 쥬얼리 매장들을 보게 된 것이다. 전통 장신구 연구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접해온 장신구가 쥬얼리의 전부였던 그녀에게 이는 신선한 자극이자 충격이었다. 그녀는 쥬얼리의 새로운 매력에 매료돼 쥬얼리 디자이너라는 꿈을 갖게 된다.
당시 한국은 쥬얼리 브랜드의 개념이 정립되기 전이었고, 디자이너라는 개념도 생소했을 시기였다. 쥬얼리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관 역시 많지 않았다. 이에 그녀는 일본 유학을 결심한다. 확고한 목표가 생기자, 그녀는 빠르게 그 목표에만 몰두했다. 미술학원에 다니고 부족한 학점을 올리며 밤마다 일본어도 공부했다. 그렇게 떠난 유학은 쥬얼리에 관한 기술적인 공부와 더불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3년의 유학 시절 동안, 사람을 많이 안 만났어요. 보통 그러면 외로울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반대로 그걸 즐겼어요. 제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고민과 사색을 할 수 있는 날이 또 올지 의문일 정도로 저 자신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한국에 돌아온 그녀는 홍익대 귀금속디자인대학원에 진학하고, 그렇게 그녀의 20대는 디자인 공부로 가득 찼다.

원석에서 보석이 되기까지
선적인 조형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최초로 금속을 망사형태로 표현한 '입체 망사기법'을 이용해 자신만의 쥬얼리를 개발했다. 한국적인 느낌이 드러나는 선과 세련된 기법을 접목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그녀만의 작품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그녀의 이름을 건 쥬얼리 브랜드 ‘예명지’를 런칭하게 된다.
컴퓨터에 익숙지 않았던 그녀가 캐드(CAD) 프로그램으로 디자인하기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그녀의 독창적인 쥬얼리는 2000년 한국 밀레니엄상품(KMP)으로 삼성, LG와 나란히 선정되기도 했다.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에 따른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이를 통해 그녀의 독자적인 강점을 갖게 된 것이다. 이후 그녀는 다양한 공모전과 국제 대회에서 수상하며 자신을 알리는 데 몰두한다. 크고 작은 도전들은 또 다른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었고 이후 다양한 회사와 협업 작업을 하는 등 디자이너로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녀는 화려한 경력을 쌓으며 디자이너로서의 탄탄한 입지를 다져나갔다.

도전의 여왕, 예명지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고 화려한 경력을 쌓기까지 그녀가 도전했던 공모전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실패와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그중 대상을 예상했던 대회에서 입선에 그치자, 울며 한강을 찾았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디자인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마저 했다던 그녀는 돌이켜보니 모든 도전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대회에서 떨어진 다음에 그 대회 작품을 보는 자세랑 그냥 그 대회 수상작을 보는 거랑은 천지 차이예요.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생각해요.” 실패를 두려워하고 좌절하기보단 그것을 항상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 전화위복의 자세로 임하는 것이 아마 그녀의 가장 큰 강점인 듯했다.
또한, 그녀는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듯, 도전하기 전에 자신을 알고 개성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도전은 남들과 경쟁하는 게 아니에요. 자신이 진정으로 개성 있어지면 어떤 도전과 마주해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있어서 도전은 결국 자신을 채워가는 것이었다.
런던 써니아트 갤러리에서 영국 왕실 디자이너 고슬린 버튼과 함께 있는 예 디자이너.
우주의 생명을 전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광물은 지구탄생과 함께 생겨났고, 이 중 아름답고 귀한 것을 우리는 보석이라고 한다. 예 디자이너의 작품이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보석을 이런 매력적인 스토리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자연적으로 보석들이 품고 있는 신비로운 색과 그 결정을 통해 그녀는 우주와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꼈고, 그것을 이번 컬렉션 작품에 그대로 담아냈다. “쥬얼리라는 영역을 넘어, 제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생명의 신비함을 느끼고 살아 있는 기쁨을 느꼈으면 해요.” 그녀는 우주의 시작인 빅뱅을 표현한 목걸이를 시작으로 대륙과 태양, 은하 등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또한 물과 산소와 함께 생성된 광물에서부터, 진주와 산호와 같은 생명체에서 나오는 광물까지 우주와 생명의 역사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이런 방대하고 흥미로운 스토리가 해외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계속해서 그녀를 새로운 기회로 이끌고 있다.

생명의 근원인 물을 표현한 예 디자이너의 작품
끊임없이 두드린 그녀의 현재와 꿈
이미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인정받고 있는 그녀는 여전히 크고 작은 도전을 하고 있다. “쉼 없이 달리다 보니 때로는 ‘내 능력 밖이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신기하게도 하루만 지나면 도전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다시 생겨요. 최근에는 ‘앞으로 내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하는 고민도 들더라고요. 이제는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기보단 제 주변과 자신도 챙기려고 해요. 국내활동과 해외활동을 병행하며, 일 외적인 것을 챙길 수 있는 지금이 되기까지 20년이 걸렸네요.”
쥬얼리로 많은 이야기를 했고,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 작가가 되기 위해 더 부지런해져야겠다는 예 디자이너. 빛나는 보석 같은 지금의 그녀가 있기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채워가며 도전을 해왔다. 흙 속에서 진주를 찾듯, 실패와 어려움 속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는 그녀에게서 우리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참된 도전의 의미에 대해 배워본다.

그녀는 쥬얼리 분야에서 많은 도전을 하기로 유명하다. 자신만의 독특함을 무기로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는 예 명지 디자이너. 그녀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다섯 글자는 ‘도전의 여왕’이다.

 사진 김도엽 기자 j52590@hanyang.ac.kr

사진 제공: 예명지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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