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입석에서 시작된 ‘진짜’ 여행
[중국은 지금] 입석에서 시작된 ‘진짜’ 여행
  • 정예림 기자
  • 승인 2016.09.24
  • 호수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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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반가운 명절인 추석이 있었다. 옆 나라 중국에도 추석과 비슷한 명절이 있는데 바로 중추절이다. 중추절은 춘절, 청명절, 단오절과 함께 중국 4대 명절 중 하나이기에 중국에도 중추절을 위한 연휴가 있었다. 기자는 기자에게 주어진 4일간의 연휴를 이용해 상하이로 기차여행을 떠났다.

중추절, 국경절 기간의 기차표는 예약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를 예전부터 들어왔다. 그래서 일찍이 기차표 예매와 호텔 예약을 계획했다. 하지만 출발 한 달 전의 준비는 너무 늦었던 걸까. 중국 기차에는 침대 칸, 좌석 칸 등 다양한 선택권이 있는데 까오티에(高铁, 빠른 기차)의 표는 대부분 매진이었고 일반 기차의 좌석은 입석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15시간을 입석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 상상되지 않았지만 일단 당돌하게 입석표를 샀다.
그렇게 계획한지 한 달이 지나고 중추절 연휴 첫날, 저녁 기차를 타고 상하이로 향했다. 기차에 오르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4명 혹은 6명이 마주 보는 구조로 돼 있는 좌석 칸이었다. 그 사이에는 작은 테이블이 하나 놓여있었고 이를 중심으로 모두가 오랜 친구인 것처럼 친근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또 입석 승객들은 접이식 의자를 챙겨와 통로에 앉아가기도 했는데 이는 한국의 기차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기에 눈에 띄었다.

이런 차이점에 대해 친구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던 찰나에 한 중국인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한국 드라마를 봐서 한국어를 조금 아는데 혹시 한국인이냐는 물음이었다. 그렇다고 하자 무척 반가워하며 자리를 당겨 기자와 기자의 친구가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줬다. 미안한 마음에 사양했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그들의 모습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중국인 친구 4명을 사귀게 됐는데 4명은 모두 여행을 가는 중이었다. 국경절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비교적 한산한 중추절에 여행을 계획했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들은 중추절 여행 전문가답게 중추절에 상하이에서 가보기 좋은 곳을 추천해줬고 대략적이었던 우리의 여행 계획을 꼼꼼히 채워줬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조금씩 하차했고 그만큼 자리에도 여유가 생겨 편히 앉아 대화를 나누며 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한국 드라마, 중국 여행지 등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쪽잠을 자며 기차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잠에서 깨고 보니 밖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고, 조용하던 기차 안은 서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다시 활기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사람들이 보였고 기차에서는 조식도 판매됐다. 아침이 왔음을 알리는 포근한 풍경이었다.
사실 기자는 상하이로 출발하기 전날, 매진이던 까오티에 표가 몇 장 생긴 것을 발견했었다. 그리고는 고민했다. 6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까오티에를 타는 것이 현명한 선택임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을 마친 지금은, 일반 기차를 타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중요한 것은 여행 자체이지 목적지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몸이 편한 침대 칸에 올라 잠을 자며 시간을 보냈다면, 혹은 훨씬 빨리 목적지에 닿을 수 있는 까오티에를 탔다면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는 따뜻함과 정을 일반 기차 입석에서 15시간 동안 마주함으로써 느낄 수 있었고 더욱 행복한 여행이 됐다.

▲ 지난 14일 중국 4대 명절 중 하나인 중추절을 맞이해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 오르고 있다.
글·사진 정예림 기자 flxmf741@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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