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로 바라본 성담론
비아그라로 바라본 성담론
  • 박다함 기자
  • 승인 2016.09.10
  • 호수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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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설명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맞혀보자. 파란색, 별명은 마법의 알약, 1초에 9정씩 소비, 남자다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답은 비아그라다. 1998년 출시 이후 비아그라는 지금까지 18억 정 이상이 판매됐다. 출시 연도에만 매출액 700억 원을 달성하며 단일 의약품 매출 신기록까지 갈아치웠다. 이 작은 알약은 단순한 상품적 가치를 넘어 경제적, 사회·문화적으로 거대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이번 호에서는 간략하게나마 비아그라에 담긴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을 살펴볼 수 있도록 준비했다. 나아가 비아그라가 갖는 성담론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자신이 생각하는 남성성은 무엇인지도 생각해보자.

비아그라의 경제적 파급력
비아그라라는 이름은 단순히 상품명을 넘어 발기부전치료제라는 하나의 보통명사로 자리 잡았다. 어느 매체는 비아그라가 전 세계적으로 코카콜라만큼의 인지도를 지닌다고까지 했다. 우리나라에서 비아그라의 경제적 규모는 2016년 현재 4,000억 원대다. 제약업계는 4,000억 원 중 1,000억 원은 합법적인 유통·판매로 이뤄진다고 추정한다. 합법적인 유통·판매에는 제네릭(복제약품)이 한 몫을 한다. 2012년 화이저 사의 비아그라 특허가 종료되면서 각종 제네릭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109개가 출시됐고 대표적인 예로 한미약품 사의 제네릭 팔팔은 2014년 기준 매출액이 247억 원을 기록했다.
비아그라는 재밌게도 뒷거래로 더 많이 판매된다. 제약업계는 비아그라의 불법복제 유통·판매액이 3,000억 원 정도라고 추정한다. 뒷거래로 판매되는 만큼 가짜도 많다. 비아그라는 최근 3년간 적발된 위조 상품 중 1위였다. 관세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가 1위(정품가격으로 환산 시 2,076억 원), 시계 브랜드인 롤렉스가 2위(정품가격 1,629억 원), 가방 브랜드인 루이뷔통이 3위(정품가격 1,445억 원)를 기록해 명품보다 더 많이 복제되는 ‘명예(?)’를 차지했다.

비아그라의 사회적 측면
비아그라가 시장에 출시됐을 때 전 세계 남성은 환호했다. 미국의 한 포르노 영화감독은 비아그라를 “남성에게 시간, 장소를 불문하고 기립할 수 있는 축복을 선사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이런 여세를 몰아 비아그라는 상업적 성공을 단숨에 이뤘다. 채수홍<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비아그라를 “피임약과 함께 인류의 성문화에 단기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약품”이라 정의했다. 피임약이 여성의 몸을 통제할 수단을 제공했다면 비아그라는 남성의 몸을 통제할 새로운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성에 대한 관념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비아그라의 상업적 성공은 발기부전에 대한 대중 인식까지 바꿨다. 발기부전에 대해 높아진 대중의 관심은 언론 기사 노출 횟수에서 드러난다. 단적인 예로 1993년 국내종합일간지에서 사용된 ‘발기부전’이라는 용어는 10회에 그쳤지만, 비아그라의 출시 이후인 1999년에는 330여 건 이상의 발기부전 기사가 실렸다. 박성열<의대 비뇨기과> 교수는 “비뇨기과를 방문하는 환자 수나 발기부전에 대한 환자의 인식도를 볼 때,  발기부전에 대한 인식이 비아그라 출시 후 확실히 변했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비아그라의 상업적 성공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 외에 부정적 시선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 콜게이트대학의 로우 교수는 “비아그라를 둘러싸고 정상적 남성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비아그라 성공과 성담론에 대한 비판
비아그라의 상업적 성공과 비아그라가 만드는 새로운 성담론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비아그라의 성공은 제약회사, 의사, 미디어, 정치인 등의 결합된 이해관계와 적절한 상품화 전략에 힘입은 것이었다는 입장이 있다. 로우 교수는 “노화나 신체적 쇠약 같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간주되던 발기부전을 정상/비정상의 이분법으로 강조하면서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재구성했다”고 말한다. 일상적인 불편함(Common Illness)으로 여겨지던 발기부전이 치료받아야 할 질병으로 둔갑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윤을 얻고자하는 여러 주체들의 숨은 자본논리가 섞여 있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또한 “비아그라를 통해 의학기술이 변화하고 이에 상품화 과정이 결합되면서 성과 삶의 관계가 단순화되고 고정된 이미지를 통해 해석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비아그라의 성공을 단순히 ‘질환으로 재구성된 발기부전 개념’과 ‘고정된 성 이미지 확산’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과장과 무리가 있다. 비아그라의 상업적 성공은 외부에 의해 주도됐다기보다는 내부의 사용자에게서 일어났다. 주 사용자인 남성이 비아그라의 매력을 워낙 크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채 교수는 “비아그라를 복용이 쉽고 덜 인공적인 방식으로 발기유도를 가능하게 하고, 은밀하게 숨겨 왔던 발기부전이라는 고통을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보조수단으로서 이해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했다.

둘째로 비아그라의 성공이 남성 중심, 특히 성기/삽입을 중심으로 한 성 관념, 즉 발기능력과 남성성을 동일시하는 생각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다음 문장을 읽고 어떤 느낌인지 생각해보자. △성관계는 남성이 삽입을 해야 이뤄진다 △남성이 성관계를 주도해야 한다 △남성은 여성에게 성적 만족감을 줘야한다 △남성은 삽입하는 성관계를 원한다 △성관계 능력이야말로 남자다움 그 자체다.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음 그렇지’라는 생각을 했다면 여러분도 남성성을 고정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입장은 바로 이런 시각을 대변한다. 이들은 비아그라가 음경의 기능에만 한정된 남성성을 재생산한다고 주장한다. 정신분석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비아그라에 대해 “‘너는 성관계를 즐겨야 한다. 너에게는 더 이상 성관계를 갖지 않을 변명거리가 없다. 만약 그래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의 결함이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이 남성성을 대변하는가? ‘남성이 남근 형상을 회복하려는 것은 남성적 질서를 회복하려는 것’이라고 말한 자크 라캉의 주장처럼 어쩌면 남성성은 이런 맥락에서만 이해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성관계 능력을 남성성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많은 오류가 있으며 어떤 것이 ‘남성, 여성다운 거다’라고 구분하는 것은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의학적인 관점에서 생물학적 차이 이외에 어떤 것이 남성성이라고 정의내릴 순 없고 오히려 인간성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말했다. 관점에 따라 사물이 달리 보인다는 말처럼 비아그라를 성기/삽입 중심의 성 관념으로 확대 해석하고 남성중심의 성 관념을 공고히 한다고 보는 것은 단편적인 추론에 불과하다. 때문에 비아그라를 남성성과 남성적 자아를 회복하는 보조수단으로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셋째로 비아그라의 성공과 성담론이 남성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여성의 시각과 입장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 있다. 이 주장에는 남성과 여성의 시각과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비아그라의 효과에 대한 남녀의 시각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일반적으로 한국의 남성은 비아그라를 통한 성관계가 가능하다/불가능하다 식의 성공여부에만 집중하는 반면, 여성은 비아그라를 부부간의 성관계에 집중할 수 있는 보조수단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남편의 자존감을 다치게 할까봐 남편이 겪고 있는 발기부전을 먼저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속만 타들어가는 아내, 비아그라를 통해 회복된 남편의 자신감에 만족해하는 아내의 모습은 어쩌면 남성중심의 사고 구조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시각차이가 존재할 뿐 함부로 여성의 시각과 입장이 고려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건강한 남성성은 자연스러운 성적 기능을 발휘함으로써 유지된다’, ‘비아그라는 훼손된 남성성을 인공적으로 복원하는 보조적 수단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남녀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닌다. 또 실제로 부부가 비뇨기과에 함께 방문해 치료를 받기도 한다. 발기부전에 대처하는 부부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된 남성성에 대한 인식, 상호 의존적인 관계는 이를 반증한다. 여성은 남성과는 다른 시각을 가지면서도 비아그라의 성공과 성담론의 실천에 전략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여성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비아그라에 대한 성급한 판단이다.

남성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
지금까지 이 알약이 만든 경제적 측면, 사회적 성담론에 대해 얘기해봤다. 비아그라 개발 후 남성의 성이 많은 변화를 겪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비아그라가 주는 생리적 작용·효과에만 집중해왔다.
그러나 비아그라는 남성성에 관해서도 생각해 볼 계기를 던진다. 무엇이 남자다움일까.  여성과의 생물학적 차이만으로 남성다움을 정의 내릴 수는 없다.  경제적 능력 말고도 경청할 줄 아는 능력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눈물 흘리는 것, 자신의 외모를 가꾸며 기뻐하는 것도 남성다움일 수 있다.  바느질을 하고 분홍색을 좋아하는 건 남자답지 못하다고 단정내리고 ‘힘, 강함, 주도적임’ 등의 고정된 이미지로 남성성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하진 않은가? 우리는 미디어가 전달하는 초콜릿 복근, 짐승남과 같은 고정된 남성성에 너무나 익숙해진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익숙한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다른 관점에서 남성성을 바라보는 것을 어떨까 고민해보자.

도움: 박성열<의대 비뇨기과> 교수
     채수홍<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참고 자료: 채수홍 『발기부전 환자와   비아그라를 통해 본 한국 남성의 남성성』,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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