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내 인권침해, 당신은 안전한가?
대학 내 인권침해, 당신은 안전한가?
  • 이태성 기자
  • 승인 2016.09.10
  • 호수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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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는 여러 ‘똥군기’ 사건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작년 4월, A대학의 학생들이 SNS에서 나눈 대화가 인터넷상에서 이목을 끌었다. 대화의 내용은 새벽에는 선배의 SNS에 ‘좋아요’를 누르면 안 된다는 것이었고, 이를 향해 비난이 쏟아졌다. 또 지난 3월, B대학 페이스북 ‘대나무숲’ 페이지에 한 사진이 공개됐다. 선배로 보이는 한 학생이 후배들의 머리 위로 막걸리를 붓고 있었고 이 사건 또한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 해당 학과에 해명을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우리 학교 인권침해 실태조사
본지에서는 지난 5월, 1440호 학내보도면을 통해 ERICA캠퍼스 생활스포츠학부에서 발생한 똥군기 논란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현재, 우리 학교 학생들이 군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조사해봤다. 우리 학교 양 캠퍼스 50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학교에서 군기를 경험하거나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76%가 ‘아니오’라고 응답해 ‘예’라고 응답한 학생의 3배를 뛰어넘는 수치를 기록했다(<표 1> 참고). 이를 통해 우리 학교는 군기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나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군기의 대처 방법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군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문제를 개선하고자 노력한다’라는 응답이 37%로 가장 많았고, ‘경찰에 신고한다’라는 응답이 21.8%, ‘군기를 받아들이지 않지만 문제를 개선하고자 노력하지는 않는다’라는 응답이 20.5%로 뒤를 이었다. 반면 ‘군기를 받아들인다’라는 응답은 11%에 불과했다(<표 2> 참고).
대학 내 군기문화에 대한 인식 부분에서는 응답자 중 80.1%가 ‘없애야 한다’고 답했고, 14.6%가 ‘잘 모르겠다’고 답했으며 4.9%가 ‘필요하다’고 답했다(<표 3> 참고). 종합해보면, 우리 학교 대다수 학생은 대학 내 군기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으며 없애야 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그래프 참고)

































대학 내 ‘똥군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군기(軍紀)를 군대의 기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해석하면, ‘군대 내에서 지켜지는 규율과 법칙’을 이르는 말이다. 위에서 명령하면 아래에서는 복종한다는 뜻의 상명하복으로 대표되는 군기는 군대문화, 군사문화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이 군대의 규칙이 간혹 대학 내에서 변질된 모습으로 목격되는데, 이것이 바로 똥군기이다. 과거에는 똥군기도 군기와 마찬가지로 군대에서 사용되는 단어였다. 하지만 작년 3월, TV 프로그램 ‘SNL 코리아’가 한 사립대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패러디하면서 똥군기라는 용어를 코너명으로 사용했고 똥군기는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를 포함하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대학 내의 똥군기는 △단체기합 △음주 강요 △폭언·폭행 등 다양한 규제와 폭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문제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군대문화가 원인이라는 견해가 있다. 징병제로 인해 대부분의 남성은 대학 시절 군대에 다녀오는데, 이때 배운 집단주의 등의 군대문화를 대학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일부 군필자들에 의해 대학 내 똥군기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학에 전파된 똥군기는 여성과 미필자에게까지 전해졌고 이후 자생력을 얻어 대학에 뿌리 깊게 박혔다고 분석한다. 이 주장의 핵심은 똥군기의 가해자가 군필이든 미필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 시작은 군대문화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대학 내 똥군기의 원인을 사회의 갑을관계에서 찾기도 한다. 관료제 사회의 특성상 상급자가 있으면 하급자가 있고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복종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권력을 악용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 하거나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상급자에 의해 똥군기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도의 K대학에서 발생한 ‘인분 교수 가혹 행위’ 사건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갑을관계로 악용한 상급자에 의해 발생한 일이었다. 이 사건은 가혹 행위 사실을 알게 된 주변인들의 도움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는데, 신고 이후 상급자로부터 받게 될 불이익을 걱정한 피해자가 가혹 행위 사실을 숨기고 있어 일찍 알려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유교문화가 변질돼 똥군기가 생겨났다는 의견도 있다. 유교문화의 기본적 도덕 가치 중 ‘장유유서’라는 것이 있는데, 그 본래 의미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사회적 순서가 있다’는 뜻으로 어른에 대한 존중을 말한다. 「동몽선습」에 따르면 예의를 갖춰야 하는 ‘어른’은 자신보다 열 살이 많은 사람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는 현대에 와서 연장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잘못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선배가 명령하면 후배는 군말 없이 복종하는 똥군기 문화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유교의 본래 가치는 질문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질문을 통한 담론 형성을 지향했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상급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조와 복종은 유교문화가 아닌 권위주의의 극치일 뿐이다.

변화해야 하는 대학
대학 내 똥군기 문제가 최근 조명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그런 행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심했다면 더 심했지 결코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똥군기도 일종의 집단문화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80년대를 전후해 사회운동을 이끌었던 당시의 대학생들은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서 공동체 의식 형성을 중요시했다. 그로 인해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행하는 폭력적 인권침해도 똥군기라 칭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집단주의라는 이념 아래 정당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면서 이는 더 이상 문화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됐고 억압의 상징이 됐다. 개인화된 생활환경에서 자라난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와 자율이기 때문에 집단주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여겨졌고, 권위주의적 행동은 ‘똥군기’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대학의 본질 측면에서도 똥군기는 근절돼야 한다. 대학의 본질은 바로 다양한 학문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병수<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운영팀> 사무관은 대학에서 군기가 근절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양성이 가장 존중받아야 하는 대학에서 군기 때문에 다양성을 제한당한다면 창의와 혁신은 불가능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박 사무관은 “똥군기는 요즘의 군대에서도 처벌받으니 학교에서 인권침해를 겪게 된다면 학교의 상담센터나 경찰 혹은 국가인권위원회의 도움을 받으라”고 덧붙였다.
똥군기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진다는 이야기는 곧 똥군기의 가해자가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근본적으로 인권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박 사무관은 “초중고교 학생들의 인권교육은 교육청에서 담당하며 최근에는 기업에서도 자발적으로 인권교육을 실시한다. 하지만 대학은 인권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대학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인권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군기라는 표현은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식하는 데 방해요인이 될 수 있다. 군기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권침해는 중대한 범죄이기에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며 대학생들의 인식 개선을 촉구했다.
언젠간 사회의 구성원이 될 우리가 대학 내의 인권침해를 끊어낸다면 사회 전반에 팽배한 각종 인권문제 또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의 구성원 모두가 대학 내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해야만 더 나은 대학문화를 만들 수 있다.


도움 박병수<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운영팀>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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