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신청, 단순히 시스템의 문제인가?
수강신청, 단순히 시스템의 문제인가?
  • 이재하 기자
  • 승인 2016.09.10
  • 호수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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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 이어져…

새 학기가 시작할 무렵에는 수강신청을 위한 치열한 풍경이 펼쳐진다. 컴퓨터 사양이 좋은 PC방을 찾아다니는 학생, 신청 직전 서버 시간을 확인하며 버튼을 누를 타이밍을 잡으려는 학생도 많다. 이는 우리 학교의 수강신청이 선착순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수강신청에 실패하면 인원 증설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특히 전공핵심이나 인기 교양과 같은 과목의 수강신청은 성공하기가 더욱 어렵다.
한편 비인기 강의에서도 또 다른 형태의 ‘치열함’이 나타난다. 듣고자 하는 강의가 폐강을 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준 인원을 못 넘겨 폐강이 되는 경우에는 수강신청을 다시 하거나 아예 학점 자체를 못 듣게 되는 것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인기 강의 몇 개에 학생들이 몰리는 등 여러 원인 때문에 수강하고자 하는 학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폐지되는 강의는 상당히 많다.
이렇듯 선착순 방식은 공정성과 형평성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개개인의 정보 환경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 △비교육적인 강의 매매나 불법적인 매크로*의 사용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 △수강신청 기간에 자칫 일이라도 생겨 시기를 놓치면 엄청난 손해를 본다는 점 등의 변수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학생이 원하는 강의를 못 듣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런 경향은 학생들에게 다중 전공으로 인기 있는 학과에서 심화된다.

수강신청 대안에 대한 고찰
선착순 방식에 염증을 느껴 새로운 방식을 도입한 학교도 있다. 대표적으로 연세대의 경우, 올해부터 ‘수강신청 마일리지제도’를 도입했다. ‘마일리지 제도’란 학생 개인에게 학기 별로 일정량의 마일리지를 제공하고, 학생은 본인이 희망하는 정도에 따라 과목별로 마일리지를 배분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즉 신청 순서와 상관없이 과목별로 배분한 마일리지에 따라 강의 신청의 당락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는 강의 매매를 금지하고 강의에 대한 학생의 선호도를 조사해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권영애<연세대 경영학과 15> 양은 “수강신청 당일 일찍 일어나 서버 시간을 보며 긴장하지 않아도 돼 마일리지제도에 만족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인하대의 경우 ‘우선 수강신청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수강신청 한 달 전에 먼저 신청하고, 신청 인원이 정원을 초과하지 않으면 신청자가 자동으로 전원 등록되는 것이다. 강의 정원보다 신청자가 더 많은 강의의 경우, 선수강신청이 취소되고 다시 선착순으로 신청해야 하긴 하지만, 이 제도 역시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인하대학교 학생 A씨는 “입학했을 당시의 선착순 수강신청 제도보다 확실히 좋은 제도인 것 같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처럼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선착순 방식의 단점을 보완하려 한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한 사례라고 보긴 힘들다. 정준구<교무처 학사팀> 차장은 “다른 대학에서 도입한 제도가 선착순 방식을 일부 보완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강의 수용 인원은 제한돼있다”며 “이 또한 강의 신청에 있어 일부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는 것을 전제한 것이나 다름없는 제도”라고 말했다. 즉 선착순 방식이 오랫동안 유지돼 수많은 단점들이 노출됐을 뿐,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시스템을 변경하는 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 학교 역시 형평성에 대한 논의와 학내 불만은 끊이지 않고 있다. 권 양은 “예전보단 불만이 확실히 줄어들었지만, 형평성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공통교양 과목을 신청할 때 특정 단과대의 학생들이 유리해질 수 있다는 점 △동일한 마일리지로 신청했을 경우 선정기준의 모호성 △마일리지를 쓰지 않고 수강 변경 기간에 신청해 듣는 편법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또한 A씨도 “단순히 수강신청에 성공하기 위해 듣고 싶은 강의가 아닌, 신청 인원이 작은 강의를 선수강 신청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수강신청, 해답은 없다
그렇다면 수강신청 문제의 본질과 해결책은 무엇일까? 단순히 생각하면 학교가 학생들의 수요를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반영하는 방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기 강의의 인원수를 늘리거나 분반을 하면, 결국 폐강되는 강의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학생들의 수요만을 고려하는 것은 대학 교육의 다양성을 해치게 된다. 수요를 예측하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정 차장은 “전년도 인기 강의가 올해는 폐강 위기에 몰려있다”며 “시간표가 겹치는 것이 하나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즉 수요를 조사하기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존재해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총학생회장 오규민<인문대 사학과 12> 군도 역시 수강신청 시스템을 바꾼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학점이 취업이나 진학에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어 특정 강의 몇 개에 지원이 몰려 수강신청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학교 측에서는 학점 취득이 쉬운 강의라는 장점을 넘어설 수 있는 다양하고 유익한 강의를 늘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수강신청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신청 방식에만 국한시킬 수는 없다. 학생들의 수요 뿐만 아니라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 △사회적 수요와 교육 정책 △학교와 교·강사간의 이해관계 △학교의 예산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 차장은 “현재의 제도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더 나은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굳이 제도를 변경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 학교 당국은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선 학생들의 민원을 접수해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는 중이다. 또한 △대기순번제 도입 △빅데이터 활용 △타 대학의 성공사례 벤치마킹 등을 활용해 더 나은 수강신청 제도를 만들기 위한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매크로: 명령어를 지정해 자동 동작하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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