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길로의 끊임없는 도전
새로운 길로의 끊임없는 도전
  • 김도엽 기자
  • 승인 2016.09.10
  • 호수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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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고학찬 사장
PD, 라디오 진행자, 작가, 웨이터, 바텐더, 양말장수, 경영인…. 이 모든 게 한 사람의 직업이었다면 믿어지겠는가? 이 모든 직업을 경험한 장본인이 있다. 바로 고학찬<예술의전당> 사장(이하 고 사장)이다. 고 사장은 항상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의 인생이야기를 들으러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전당을 들어서자, 생각했던 엄숙한 분위기와는 달리 아이들이 뛰어놀고, 직원들은 시민들을 위한 행사 준비에 분주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마치 쉼터 같은 친숙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인터뷰를 위해 임원실로 찾아온 기자들을 따뜻한 미소로 환영해준 그는 후배들과 마치 만담을 나누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청년, ‘1호’ PD를 꿈꾸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꿨던 고 사장은 사회적으로 안정이 보장된 많은 학과를 버리고, 1966년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공부를 곧잘 하던 그가 연극영화과를 진학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인식은 썩 좋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무슨 과에 들어갔냐고 물으셔서 ‘영화과를 갔습니다’ 했더니 영어과인 줄 아시더라고요. 그만큼 그 당시 ‘연극영화학’이라는 과는 아주 생소했어요.” 그 당시 그는 제대로 된 극장 하나 없던 자신의 고향 제주도에 내려가 친구들과 연극 공연을 할 정도로 열정 넘치는 연극영화학도였다. 그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연극영화과를 진학했다는 사실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PD라는 직업을 갖게 된다. 당시 한국영화는 태동기였고, 이런 상황에서 곧바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감독이 되는 길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눈에 띈 것이 있었는데, 바로 방송국의 PD 모집공고였다. PD가 영화감독과 유사한 직업이라 생각한 그는 PD 시험을 보고 동양방송(TBC)에 입사했다.
남들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걷게 된 덕에 ‘연극영화과 출신, 제주도 출신 PD 1호’라는 타이틀이 생겼지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사회에 나가보니 저를 이끌어줄 ‘선배’라는 존재가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그런데 저에게는 같은 과를 나오거나, 같은 고향 출신이었던 선배가 회사에 한 사람도 없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저는 조금 외롭게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는 그런 외로움을 통해 오히려 성장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은 제 영역에서 입지를 굳히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끝까지 외로울 뿐이죠. 그렇다 보니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치열한 마음으로 살았어요.”

미국 이민, 어려움을 넘어 한인들의 소식통이 되다
방송국 PD로 승승장구하던 고 사장은 당시 ‘언론통폐합’이라는 난관을 겪는다. 그가 일하던 동양방송이 KBS로 흡수통합된 것이다. 그는 친정부 방송사였던 KBS에서 일해야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결국, 방송사를 그만두고 더 넓은 세상을 공부하고자 미국 이민을 결심하게 된다.
미국 생활 중, 고 사장은 당시 영어도 모른 채 미국에 이민 온 한인들을 돕기 위해 한국어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게 된다. 한인사회에 선례가 없던 한국어 라디오 방송이고, 아무런 기반 없이 시작한 만큼 그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제가 사는 집에서 방송했어요. 밖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담요로 유리창을 막고 방송을 했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죠.”
그의 도전은 미국 한인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했던 이민 1세대 한인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는 소식통이자, 한인들끼리의 애환을 털어놓는 소통창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고 사장은 그 당시를 회상하며, 한인 라디오 방송이 ‘한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줬던 정말 필요한 방송이었기 때문에 내 인생 최고의 보람이었다’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 고 사장이 예술의전당 행사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다.
공연예술인으로, 벽을 넘어 멈추지 않는 그의 도전
방송계에 평생을 바칠 것 같았던 고 사장이 60대라는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었다는 사실은 기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가 방송을 그만두고 향한 곳은, 대학생 시절 그의 마음을 뺏었던 공연예술 분야였다. 비록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식지 않은 그의 열정은 다시 한 번 도전의 길로 향했다.
그렇게 해서 공연예술 분야에 뛰어들게 된 그는, 특히 연극 분야에 경종을 울리는 새로운 시도를 갈구했다. 그러한 혁신의 출발은 소극장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극 불모지에 가까운 강남에 소극장 ‘윤당아트홀’을 설립하게 된다. 무모해 보이는 그의 도전에 주변의 많은 사람이 우려했다. “주변사람들은 제 계획에 ‘잘 사는 강남 사람들이 큰 극장에서 보지, 작은 극장에서 관람하겠냐’고 혀를 찼죠.” 하지만 강남 사람들만을 위한 차별화된 전략을 통해 첫해부터 흑자라는 큰 성과를 거뒀다. 또 한 번의 도전을 해낸 것이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윤당아트홀 관장 3년차에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임명됐다.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취임했을 때도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대부분 고위 공무원 출신이 차지하는 자리에 소극장 출신의 고 사장이 취임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제가 소극장을 시작할 때도 ‘방송하던 사람이 왜 소극장을 시작해?’라고 했고, 소극장을 운영하다가 예술의전당으로 오니까 ‘소극장에 있던 사람이 왜 큰 극장으로 와?’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죠. 저는 항상 가는 곳마다 일종의 벽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벽을 깨기 위해 남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을 강구했죠. 그런 노력들이 제 영역에서 인정받게 되는 결과를 만든 것 같아요.”
그가 예술의전당에서 가장 변화시키고자 했던 것은 ‘문턱’이었다. 문턱을 낮추려면 클래식 문화의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공연을 영상화해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상영하기도 하고, 사장의 위치임에도 예술의전당에서 주최하는 동요, 가곡 행사의 사회를 직접 보기도 했다. “제가 전문 사회자는 아니지만, ‘동요를 살리자. 가곡을 살리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직접 무대에 서곤 합니다”라는 그의 모습에서 그 열정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예술의전당 장소 자체를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아이스링크를 설치하기도 했다.
‘문턱’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로 예술의전당 방문객 수는 고 사장 취임 전보다 대폭 상승했다. 또한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3월, 그는 최초로 예술의전당 사장을 연임하게 됐다.

▲ 고 사장은 사장의 위치에서 행사의 사회를 직접 보기도 했다.
세상을 바꾼 왕따 고학찬
고 사장은 자신이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저는 남들이 뚫어놓은 길이 있음에도 새로운 길을 한 번 뚫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에요”라며 새로운 분야의 도전과 그 분야의 ‘왕따’를 자처한다고 말했다. 그런 그는 도전을 꺼리고 안정을 추구하는 청춘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젊은이의 특권은 ‘젊기 때문에 실수해도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특권이 있을 때, 새로운 길을 개척해보는 거예요”라며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세상을 길고 넓게 보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조언했다. 고 사장은 과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할까.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그는 “누가 나를 기억해 준다는 게 고마운 일인데?”라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곧바로 그는 “저는 호기심이 많다 보니까 남들이 생각 못 하는 것을 잘 생각해내죠. 그래서 저는 죽을 때까지 세상에 참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기억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답했다.
포장되지 않은 거친 자갈길, 진흙탕길, 아니 아예 뚫리지 않은 길을 자신만의 신념으로 묵묵히 걸어왔던 그의 도전정신은 안정만을 중요하게 생각해온 우리 사회에서 높이 평가돼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 ‘비긴 어게인’. ‘내 인생은 항상 다시 시작’이라며 고학찬 사장이 늘 외치고 다니는 말이다. 항상 ‘무’에서 시작해 ‘유’를 창조해내는 도전정신을 가진 그에게 이 한 마디야말로 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글 김도엽 기자 j52590@hanyang.ac.kr

사진 김승선 기자 sunsune2@hanyang.ac.kr

사진 제공: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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