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아날로그 음악 예찬
[교수칼럼] 아날로그 음악 예찬
  • 오재원 <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
  • 승인 2016.09.04
  • 호수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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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원<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
음악을 사랑한다. 자연의 소리를 사랑한다. 자작나무 숲속의 나뭇잎 사이 햇살 내려오는 소리, 초저녁 동네어귀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 처마 밑 비오는 소리, 한밤 장독대에 눈 내리는 소리, 쌕쌕거리는 아이의 잠자는 소리, 이 자연이 연주하는 모든 소리를 나는 사랑한다. 너무 경이로워서 아무도 창조해낼 수 없는 자연의 소리야 말로 진정한 음악이다.
이러한 자연의 소리를 닮고 싶어 인간은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옛사람들은 이런 자연의 소리를 좀 더 가까이,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길 원해서 악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좋은 음악을 듣는 즐거움은 음악을 연주하는 즐거움 못지않다.
어릴 때부터 나는 음악이 참 좋았다. 어릴 때 우리 집에는 나무로 만든 가구처럼 이상하게 생긴 전축이 있었는데 그 옆 칸에는 몇 장의 LP음반이 꽂혀 있었다. 방과 후나 주말에 그 음반을 꺼내 전축에 올려 바늘을 올려놓고 재킷을 보면서 고풍스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너무도 포근하고 아늑한 아름다움에 감싸여 마치 멀리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LP 재킷을 보면서 낡은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 그 시간은 너무도 황홀하였다. 눈을 감고 마치 내가 연주하는 것처럼 손을 흔들어 대기도 하고 리듬을 흥얼거리기도 하면서 바이올린협주곡을 듣노라면 그 흐느끼는 듯한 격정에 괜히 울컥해지기도 하고 가슴이 벅차오는 감동으로 전율을 느끼기도 하였다.
요즘 CD, MP3, 스마트폰, 메모리 등 다양한 음의 매체가 있어 많은 양의 음악을 저장할 수도 있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손쉽게 찾아 들어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러한 제품을 애용한다. 그러나 나는 이 편리한 제품들을 클래식음악을 들을 때만큼은 정말 사용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CD에서 나오는 음악들을 듣는 것은 마치 훌륭한 요리사가 유기농의 좋은 재료로 만든 최고의 요리를 일회용 플라스틱접시에 담아 먹는 느낌과도 같다. MP3나 메모리에 저장해 놓은 음악을 듣는 것은 훌륭한 요리를 냉장고용 보관용기에 담아 보관했다가 급하게 꺼내 놓고 먹는 기분이어서 여기서 나오는 명곡들을 듣고 있으면 짜증이 날 때가 있다. 클래식 음악은 이런 인스턴트식품처럼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순수 자연의 유기농 재료로 최고의 요리사가 정갈하게 만든 음식을 우아한 식탁에 놓인 맛깔스런 접시 위에 얹어 음미하듯, 자기만의 귀한 시간에 귀한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으로 음악을 접한다면 그 음악이 주는 감동은 기대 이상일 것이다.
시간과 여건이 허락한다면 좋은 연주자들의 연주회를 직접 가서 들을 수 있으면 그야말로 우아한 프랑스 음식, 상큼한 이탈리아 음식을 그 나라 본토에서 즐기는 기분에 비유할 있을 정도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연주회에서 직접 훌륭한 연주를 듣는 것만은 못하지만 레코드음악에도 장점은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거장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오래전 모노로 녹음된 파블로 카잘스의 바흐 무반주 첼로소나타, 바릴리 현악사중주단의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빌헬름 바크하우스가 들려주는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등등, 그 이름도 찬란한 옛 대가들의 연주는 비록 빛바랜 오래된 흑백사진 같지만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는 마치 가을 저녁하늘 구름사이를 지나는 달빛처럼 은은하게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이러한 감동은 요즘처럼 디지털방식으로 녹음된 음반에서는 좀처럼 느끼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아날로그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창틀이 낡은 오래된 서점에서 먼지 쌓이고 색 바랜 낡은 중고 책을 뒤적이듯 아직도 그 옛날의 LP 음반들을 찾아 즐겨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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